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July 13, 2025)
천당과 지옥은 과연 있는가?
사람은 오래 살아야 백년 남짓 살다 죽게 되니, 죽고 난 후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사람들 중에는 죽으면 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죽고 나면 천당과 지옥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원래 유태교에는 천당과 지옥의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유태교에서는 하나님만 영원하시고, 인간은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유한한 존재라고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인생은 풀과 같고, 인생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아서,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고 했다.
천당과 지옥이라는 개념은 이란의 종교인 조로아스트교에서 생겨나, 유태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극단적인 이슬람교도들은 기독교인들과 유태인들을 죽이면, 천당에 가서 칠십명의 처녀들을 아내로 얻어 행복하게 산다는 말을 믿는다는 말도 들어 보았다. 힌두교와 불교에서는 지옥에 빠진 사람도 윤회의 과정을 통해 해탈한 열반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마산에서 보수적인 성결교회를 다녔는데, 그때 나는 우리 교회에 나오는 사람만 구원받아 천국에 가며, 우리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사람들은, 교인들의 가족이라도, 불신자이기 때문에, 이들을 전도하여 지옥불에서 구원 시켜야 한다는 설교를 듣고 자랐다.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우리 큰 형님과 나는 좀 더 큰 교단인 감리교회의 목사가 되었지만, 나와 큰 형님의 신앙관은 똑 같지가 않다. 한번은 큰 형님이 섬기던 경북 울진의 시골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형님 교회 건물의 외벽에 이런 간판이 붙여져 있었다: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나는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하는 말의 깊은 뜻은 공감하면서도, 이 말이 자칫하면 미신적인 신앙으로 잘못 인도하는 위험성도 있겠다는 노파심이 생겼다.
신학자, Paul Tillich,이 말한 바, “종교의 진리는 일반적인 말로 표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징어를 통해 표현될 수 밖에 없다”고 했듯이, 천국과 지옥이란 상징적인 용어를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되고, 신화적인 용어를 탈신화화 (demythologization, Entmythologiesierung)하여, 현대인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재해석하여, 현대인들이 신앙생활의 고상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할 것이다.
천당과 지옥이라는 신화적인 개념은 단순한 이원론적인 개념이라 .비평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것을 거부 한다. 예를 들면, 미국의 해학가인 Mark Twain은, “기후가 좋은 곳을 원하면 천당으로 가고, 친구들이 많은 곳을 원하면 지옥으로 가라”는 우스개 말로 신화적인 개념인 천당과 지옥을 비웃었고, 앨더스 헉슬리는, “인류가 도덕적인 발전을 하려면, 상주고, 겁주어 인류를 통제하려는, 전통적인 천당과 지옥의 개념으로는 안되고, 새로운 도덕체계를 계발해야 한다”고 했다.
Ralph Waldo Emerson은, “To be great is to be misunderstood.” (위대한 생각을 갖는 사람은 보통 사람들로 부터 오해를 받는다)고 했다. 보통의 기독교인들이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 명제를 의심없이 굳게 믿고 있을 때, 위대한 선각자인 변선환 교수는,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용감히 말했다가 교권주의자들의 칼날을 받고, 감리교단에서 축출당하여 쓸쓸히 죽었다.
변선환 교수의 제자이던 이현주 목사가, “변선생님이 너무 세게 나가서 화를 당하셨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을 껄.”하며 여운을 부드럽게 남갔다면, 봉변을 피할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운 우스개 소리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기독교인만 천당에 간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류의 반이상을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 불태우는 하나님은 하나님 자격이 없다고 본다. 천당이 있다면, 착한 기독인, 착한 불교인, 착한 무신론자들이 공존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도 천당에 간다”는 말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죽고 나서도 하나님 처럼 영원히 살고 싶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끝 없는 희구나 욕심이 아닐까? 인간은 과연 영원히 살 가치가 있을까? 사랑의 하나님만 영원히 살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스의 작가 니코스 카쟌챠키스는 묘비에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도 않고, 아무 것도 무섭지 않다. 나는 자유다. (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라는 말을 남겼다.
하버드 신학대학원을 나와 목회를 삼년간 했던, 미국의 사상가 Ralph Waldo Emerson은 무식한 교계 지도자들의 횡포에 환멸을 느껴 목회를 떠나며, “진정한 목회는 목회를 떠날 때 가능하다”고 말한 것 처럼, 나도 생존경쟁식 목회와 미신수준의 교계분위기에 환멸을 느껴 한국교회를 떠나 왔다.
이런 삐딱선을 타고 있는 나한테, 지금은 감독이 된 무식한 목사가 나한테, “야, 조정래, 너 천국 가고 싶지 않냐?”고 하며 시비를 거는 댓글을 내 페이스북에 남긴 것을 보고, 미국에서 외로운 이민자의 생활을 하고 있지만, 역시 답답한 한국 교회를 잘 떠나 왔구나, 이런 비전통적인 생각을 가진 나같은 목사도 품어 주는 미국인 교인들이 고맙게 느껴 졌다.
예수께서는, “천당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못 하리니, 천당은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셨고, 불교에서는 “화를 내는 그 마음이 지옥이고, 화를 풀고, 화목함을 도모하는 그 마음이 천당”이라고 했다. 밀턴은 “내 마음에 따라, 천국이 지옥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천국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한다.
작가 Richard Bach는, “미워하는 마음이 곧 지옥” 이라고 했고, 성경은 “사랑하는 마음이 곧 천당”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은 “하늘의 뜻이 이 땅위에서 이루어 지기”를 기도하셨다. 죽은 후에 갈 천당에 대해 신경 쓰지 말고,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인 정의, 평등, 평화를 구현하는데 신경 좀 쓰라는 말씀일 것이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천당은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만 가는 곳”이라 믿고 있지만, 예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고,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 간다”고 하셨다.
주의 뜻이란 무엇일까? 선지자 미가에 의하면, “정의를 행하며, 친절을 사랑하며,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Do justice, love kindness and walk humbly with your God),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나는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지옥이 있다고 믿지도 않고, 금 면류관을 쓰고 황금 보석으로 만들어진 천국에서 영원히 살고 싶지도 않다. 하나님만 영원하시고, 나는 죽어 없어 져도 좋다. 나는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