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June 21, 2025)
나보다 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은 세상에 많다
불교에서 마음의 세가지 독이 있다는 가르침을 배웠다. 마음에 있는 세가지 독은 곧, 탐,진,치(貪瞋癡)라고 해서,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욕, 화내는 마음, 그리고 어리석은 마음이라는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성경 (전도서 7:9)에서도 “화는 바보들의 마음에 있는 것” (Anger resides in the heart of fools.)이라고 했다. 은퇴한 미국인 의사가 “화라는 영어단어 anger에다 d하나만 보태면, 위험이라는 단어인 danger가 되니, 화를 내는 것은 건강을 해치는 위험한 짓이라”고 했다.
오래 전에 어떤 여자 목사로 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고 화가 풀리지 않아 이십년이 지낸 지금도 내 마음속에 화가 나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일에 대해 글을 써 보았는데, 화가 가시기는 커녕, 아물던 상처를 건드려 덧 난듯이, 화가 더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것 같았다.
친구 목사에게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하여 화가 난다”고 했더니, “목사님 격에 맞지 않게 왜 그러시냐? 목사님을 모욕한 당사자는 까 먹고 있는데, 목사님만 거기에 묶여 귀한 세월을 화를 품고 사시냐?”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이 세상에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나 뿐이겠는가? 나보다 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이스라엘의 포탄을 맞고 가족을 잃고 집을 잃고 부상을 당한 무고한 팔레스타인 사람들, 러시아의 침입을 받아 땅을 빼앗기고, 전쟁의 공포속에서 사는 우크라이나 사람들, 담배를 피지 않았는데 폐암에 걸린 사람들, 돈을 빌려 줬다가 받지 못한 사람들,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린 피해자들, 인종차별 당하는 사람들, 지체 부자유자들, 뺑소니 차에 치여 죽은 사람들과 가족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가? 그 분들은 내가 사소한 문제로 화를 품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뜨거운 꼴을 못 보았구나.”하며 혀를 찰 것 같다.
나는 대학 다닐 때 감리교 목사이던 이현주 목사님의 책을 즐겨 읽었다. 그 분의 책을 읽으며, “한국말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 분은 아버님이 폐결핵으로 돌아 가시고, 어머니와 형님, 동생들과 어렵게 살았는데, 장남이던 형님이 가족을 돕느라, 공사장에 일하러 갔다가 사고를 당해 스무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목사님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고, 장남마저 사고로 죽는 바람에 절망과 슬픔에 빠져 위로 받기를 거부하고 있었는데, 이때 먼 친척 아주머니가 찾아와 어머니에게, “이 사람아, 자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되지. 자네는 아들을 하나를 잃었지만, 나는 아이들 넷을 잃었어. 나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자네도 살아야지. 다른 자식들을 생각해서라도 살 생각을 해”라고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 이 목사님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불러 놓고, “이제 부터는 너희들은 내 자식이 아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자식들이다. 나는 너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대할 것이니 그리 알아라”고 했다. 남편과 장남을 잃은 과부는 하나님을 믿고 자녀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대한 결과, 이현주 목사는 감리교의 걸출한 사상가요 문필가가 되었고, 동생 이덕주 목사는 한국교회사 교수가 되었고, 그리고 딸은 장공 김재준 교수의 며느리가 되었다고 한다.
남들이 나를 무시하고 업신여겨 억울하고 화가 날 때에는 내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무시당하고 학대당하고, 억울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음을 깨닫고, 사소한 일에 울그락 푸르락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하리라 생각한다.
공자님이,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멀리서 벗이 찾아와 주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 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면, 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라고 했는데, 남이 나를 알아 주지 않고, 무시한다고 모욕을 느끼고 화를 내는 것을 보니, 나는 군자되기는 멀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