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5월을 불과 이틀 남기고
2023년6월을 향해 질주하고자!
마음 먹고서 첫 번째 추모하는
24세의 아쉬움만 남긴 채 떠난
앞선 절친이었던 교우의 외아들.
어느 누구보다 애틋한 심정을
부여 안고 임하다보니 혼미할
정도로 지치고 지쳤던 시간들
아마도 지금껏 행하였던 활동
중에서도 가장 힘들지 않았나?
벌써 추모 10년 바로 눈앞에!
쉽게 찾아 갈 수 없는 곳에서
10년을 맞게 됨이 또 다시
아련해 오는 것이 뭉클함들로
아롱져 지는 것 같기만 하였다.
2007년3월7[수]일♥첫방문한 이래
수도 없이 찾고 찾아 갔었던 묘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참전중에 전사한
젊은 청춘들을 찾아 가기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남가주내의 대표적 국립묘지.
앞서 별세한 절친 교우의 화장재를
자그마한 장미동산에 뿌려 주는 날
(2011년4월23[토]일)
처음 마주했었던 외아들이었는데~
그로부터 2년하고 몇 개월을 군문에
충실할 것으로 여겼던 송종욱중위는
사회의 친구 결혼식에 참석한 후에는
뒤풀이로 찾아간 장소에서 어이없게
싸움판의 표적들이 되어 희생자로서
남게 되었을 때, 모친께서 어려운
판단끝에 장기 기증함으로서 국립
묘지에 안장될 수 있도록 행하였다.
안장될 관앞에는 송중위의 묘지 번호가
많은 조문객들이 뜨거운 햇살에도
아랑곳 없이 스스럼없이 도열해주고
하관식 장소에는 직계 가족들과 또
육군사관학교 동기생들만이 참관!
할 수 있었을 뿐, 더이상은 안되나?
한참을 먼발치에서 조문객들이 묘지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린 다음에야
근접한 거리까지 조금씩 가까이로
다가가니 어느 인부(그들도 재향)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서 그동안 각각의 국립묘지에서
행했던 하관식 과정들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 보람찼었으며
맨 땅에 해딩하듯이 불도저는
인정사정없이 흙을 메꾸기 분주했고
이렇게 하관을 마치면 대략 2~3주 이내
각자의 비석(들)이 올려 진다고 하였고
故송종욱 육군중위의 부친 추모 3주기
(2014년4월16[수]일)에 맞춰 찾아가
아들의 비석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Section 53A의 많은 비석들 사이로
이등병에서 장성급까지도 똑같이
▶편안히♥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