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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꼬마

2021.01.11

일요일 아침이다.

8살 꼬마는 아침을 먹은둥 마는둥 항상 하는데로 아침나절 집을 나섰다.

특별하게 정해놓고 나가는건 아니고 항상 나가 보는거다.

집에 여동생이 있지만 같이 놀기엔 두살 아래라 마땅하게 같이 놀게없다.

아버지는 가게를 한다고 광주로 가서 있으니까 어쩌다 볼수 밖에 없고 엄마는 

아침나절이면 화장을 하고 한복을 입거나 양장을 하고 나간다.

아마 목포에서 하는 또 다른 가게에 나가는것 같다.

그리고 외할아버지하고 같이 사는데 8살 꼬마가 할아버지하고 놀기는 지금 세상하고는 달랐다.

요즘 할아버지는 손주하고 놀고 싶어 안달이지만 그때는 같이 노는건 체면에 힘들었을거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시는데 선생님이 체통없이 손주하고 어디에서 놀겠나.

요즘같이 놀이터도 공원도 없던 시절인데.

그리고 이모, 고등학교 졸업하고 같이 사는데 엄마 같았다.

엄마가 집에 없으니 챙겨주는건 항상 이모가 해줬다.

잠 잘때는 문간엔 이모 그 옆에 여동생 그리고 꼬마 제일 안 쪽엔 할아버지가 주무셨다.

꼬마는 오줌을 잘 쌌다.

낮에 정신 없이 놀다가 저녁이면 쓰러져 잤는데 엄마나 아버지가 자기전에 오줌을 뉘면

되는데 항상 12시가 다 되서 들어 오니까 자기전에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할아버지 옆에서 자는데 실수 안할려고 조심했다.

할아버진 꼭 새벽에 깨셔서 담배를 한대 피우셨다.

당연 한걸로 알았지만 지금 같으면 좁은 방에서 피우는건 상상도 못할건데 

새벽 두시쯤 일어나셔서 꼭 피우셨다.

자다가 깨었던건 숨 쉬기가 힘들었던것 같다.

그리고 꼬마 집은 하숙을 쳤다. 방이 아주 많았다. 열개정도 되니까 하숙집 하기엔 충분했다.

경찰아저씨도 있었고 학교 선생님도 있었다. 저녁을 먹을땐 다 같이 마루에 앉아서 먹었다.

어느 날 아침에 하숙하던 한 사람이 할아버지를 아주 급하게 불렀다.

장 선생님, 장 선생님...

케네디가 죽었답니다. 케네디가.

그 사람이 신문을 들고 뛰어오던 모습이 무슨 일인가 하고 신기했다.

집을 나온 꼬마는 특별하게 정해진 곳을 가는게 아니고 여기저기 기웃 거렸다.

죽동에 있던 집은 길이 내리막이었다.

집 대문도 나오면 꼬마걸음으로 열 댓걸음을 걸어야 길로 나왔다.

바로 아래에 있던 집은 초가집이었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거지들이 모여 살았다.

여러명이 모여 살았는데 동냥해온 밥을 나눠 먹는것도 보고 아직 어린데 담배 피우는것도 봤다.

말을 걸어오면 같이 이야기도 했지만 이상하고 아주 끈끈한 냄새들이 났다.

한동안 살았는데 어느 날 다 사라져 버렸다.

목포역에 가까운 곳으로 오니까 또래 애가 사는 집이 보여 이름을 불러봤다.

그리곤 들어가 같이 잠깐 노는데 쫒겨 나왔다.

형인지 삼촌인지 노는게 보기 싫은지 공부하라고 하니까 나올수 밖에 없었다.

나와보니 특별히 갈데도 없었는데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래서 목포역쪽으로 걸어갔다.

오늘이 오시는 날이 아닌걸 알았지만 괜시리 가 봤다. 

오시는 날은 역으로 가서 한참씩 기달렸다.

지금처럼 정확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때라 오후에 오신다면 대충가서 마냥 기달렸다.

기차가 도착하면 아버지가 다 멈추지도 않은 기차에서 뛰어 내리는 모습이 멋 있었다.

몇년후 광주에 사시는 친할머니에게 갔을때 그 모습을 흉내 내려고 기차가 멈추기도 전에

뛰어 내리다 넘어졌다. 할머니가 보시더니 그럴려면 다시는 기차타고 오지 말라고 하셨다.

역에서 사람들이 웅성 거리는게 기차가 도착 했는지 떠나는지 하는것 같았다.

키가 작은 꼬마는 개찰할때 기차표를 묻지 않아 개찰구를 쉽게 통과한다는걸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오실때 마중을 나가면 어른은 역안으로 들어가는 입장표를 사서 들어갔는데

꼬만 그냥 묻어 들어갔다.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 거리는걸 보다가 같이 밀려 들어가듯이 개찰구를 지났다.

그리고 기차를 보니 광주라고 써 있었다.

순간 아버지가 계시는 곳이 광주라는 생각이 나 가보자는 생각에 기차를 탔다.  

광주라는데가 어딘줄도 모르고 가본적도 없는데 무작정 탔다.

목포역은 종착역이라서 그런지 항상 기차들이 많이 서 있었다.

애 들하고 가끔 그 기차들 사이에서 놀았다.

차 뒤하고 앞으로 나온 꼬리처럼 생긴걸 붙잡고 이쪽 저쪽에 서서 여보세요 통화도 해보고 

문이 열렸으면 들어가 앉아 보기도 했는데 의자엔 시금 털털한 냄새가 고약했다.

역 한쪽에는 땅을 깊게 파서 콘크리트를 하고 그 위에 기차를 세워 

아래를 올려보고 고치는 곳이 있었는데

기차 속이 궁금해 계단으로 내가보면 그곳엔 항상 사람들이 똥을 싸놨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곳 저곳에 싸놔서 땅 아래로 냄새가 고여 아주 심했다.

다 커서도 목포를 떠 오르면 그 냄새, 그 똥들을 못 잊고 가끔 꿈도 꿨다. 

기차를 타고 안에서 기웃기웃 거리는데 기차가 출발했다.

꼬마는 달리기 시작한 기차에서 내릴수는 없고 

아직도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기차 밖으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가 들렸다.

목포역에서는 기차가 도착하거나 떠날때는 그 노래를 꼭 틀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조용해지니 그때서야 기차를 탔다는 생각에 걱정이 시작 됐다.

시간이 얼마 지나  첫번째 역에 섰다.

그 역에 섰는데 망설이다가 내리지를 않았다.

아직 어디를 간다는것 보다 그때까지도 아버지가 있는 광주만 생각했다.

기차가 다시 출발하고 조금 지나니까 차표검사를 시작했다.

꼬마는 그때서야 겁이나기 시작 했다.

표도 없고 가는데가 어딘지도 모른다는걸 깨달은거다.

표검사하는 사람이 오니까 꼬마는 다음칸으로 또 다음칸으로 갔다.

그러는 사이에 또 역에 도착했다.

몽탄이라는 곳인데 사람들이 이고 지고 내리기에 더 이상 가는건 안된다는 생각에 따라 내렸다.

내리고 기차는 떠났는데 역이라는데가 특별이 막힌데가 없으니까 내린곳에 막연히 서 있다가

사람들이 다 떠나고 나서 꼬마도 역사옆으로 난 길 아닌 길로 나왔다.

걱정이다. 

이제서야 무슨짓을 했는지 알게 되고 밖으로 나오니 보이는것 논 밭 뿐이고 건물도 없다.

목포역은 나오면 가게도 있고 놀던 길이라 어디로 향하던 집을 찾아 가지만 

여긴 딱히 보이는 집도 없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도 이리저리 사라지니 꼬마는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였다.

역에서 나와서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를 결정 해야 하는데

그래도 운이 좋았는지 그냥 느낌으로 했는지 기차가 왔던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포장도 안된 길은 차라도 한대 지나가면 뿌연 먼지에 길이 좁아 논두렁으로 피해야 했다.

낮의 시골길은 한가했다. 사람도 안보이고 가끔 아주 가끔 차가 한대씩 지나갈 뿐이다.

한참을 걸어가니 소 달구지를 끌고가는 아저씨가 보였다.

달구지에 뒤에 앉아 같이가는 또래 꼬마도 있었다.

아저씨가 꼬마를 보더니 동네 애 같지 않으니까 묻는다. 어디 가냐고.

쪼그만 놈이 걸어가는데 목포를 간단다. 아저씨가 기가 막힌다듯이 쳐다보면서

여기서 목포까지 몇 십리인데 걸어냐고 묻는데 꼬마는 대답을 못 했다.

한참을 걸어가다 헤어지면서 아저씨가 가는길을 일러줬다.

이 길로 계속 가면 역이 나오는데 거기서 기차를 타라고.

점심때도 훨씬 지났지만 배 고프다는 생각은 못하고

집으로 가야지 하는 생각에 열심히 걸었다. 

꼬마 걸음으로 한참을 걸으니 역이 나왔다.

역에서 또 살짝 들어가서 타야 하는데 요령을 부려 일부러 멀리 있었다.

한참 후에 목포라고 써진 기차가 왔다.

그런데 타는 사람이 별로 없고 내리는 사람도 없었다.

다행인건 기차가 바로 출발하지를 않고 한참을 서 있었다. 

다른 기차가 오니까 출발했다. 기차가 서 있으니까 주위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기회를 보다 탔다.

다음역이 목포역이라 사람들이 일어서서 보따리를 들고 문쪽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문 옆으로 비켜 섰는데 사람들이 내리는데 신경을 써서 그런지 관심도 없다.

기차가 출발하고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배도 고프고 무슨짓을 했는가 생각하니 영화에서 길을 잃고 고아가 되는 애들 생각이 났다.

어린꼬마였지만 영화를 좋아해서 동시상영하는 극장을 자주 갔다.

기도 아저씨에게 5원만 주면 들여 보내줬다.

마지막 영화까지 보면 밤 11시가 넘어 집에 갈때도 가끔 있었다.

가로등도 없는 길을 밤 늦게 다닌건 위험하지만 

그 시절 목포는 저녁이면 시내에 박쥐가 날아 다녔다.

목포역에 도착해서 사람들이 나가는데 이젠 겁도 나고해서 기차 뒤로 돌아가 놀던 곳으로 나왔다.

역에서 집에까지 걸어가는데 집에 가면 혼 날 걱정에 다리도 후들 거리고 

안 들키고 들어갈 궁리를 했다.

그런데 막상 집에 들어가니 아무도 관심이 없다. 

밖에서 놀다 왔겠지 하는지 꼬마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건 아무도 모르니 당연히 관심이 없다. 

일부러 무용담으로 말하기엔 아직 어렸다. 

아직 해가 떨어지기 전이라 어디서 놀다 왔냐고 물어 보지도 않았다.

광주까지 가볼걸 너무 빨리 들어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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