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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싱거운 착각.

2021.04.12


기름에 찌든 냄새가 시궁 창가에서 나는 냄새와 혼합이 된 것 같았다.

왜 그런지 큰 역이나 작은 역이나 역에서 나는 냄새는 비슷하다.

여수행 열차는 자정을 넘긴 한시에 들어온다고 해서 몇 시간을 역에서 있어야 하는데

냄새가 너무 진해 입맛을 다시면 맛을 느낄 것 같다.

이제 8시가 조금 넘었으니 의자에 앉아 한숨을 자고 싶어도 냄새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

그런데 여기저기 퍼질러 누워 자는 사람들이 있다.

입은 옷을 보니까 한 여름인데도 긴 옷들을 입고 있다.

길고 짧고 색은 원래가 무슨 색이었는 알수는 없지만 거의 다 거무스러운게

색은 아니고 세상 풍파에 아무 색이나 그저 박힌 것 같다.

호남선을 끼고 있는 서대전역은 통금도 없는 것 같다.

몇 시간 후면 통금인데  편하게 누워있는 저 사람들이 어딜 가겠나.

나도 12시가 넘으면 검문을 당할까 봐 열차표를 다시 확인하고 바지 주머니에 넣다가

다시 꺼내보고 뒷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잠갔다.

몇 분을 버티다가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들어 오기를 여러 번 반복하니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만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니까  흘깃흘깃 쳐다본다.

밤늦게 들어오는 기차가 목포 하고 여수로 가는 게 있나 본데

두 열차 시간이 12시가 넘어 미리 와서 기다리는 것 같다.

한 시간 두 시간 지나고 나니까 그것도 힘들어 배낭은 벗어두고 주위를 왔다 갔다 하는데

11시가 다 됐는데 웬 아가씨가 조그만 여자애 손을 잡고 들어온다.

여기저기 둘러보는 게 어디를 가는 것 같지는 않은데 사람들을 유심히 보는 것 같다.

그러다 나하고 눈이 마주쳤는데 살핏 웃는다.

그리곤 알 수 없는 눈빛을 하는데 21살 총각이 모른 척 하기엔 너무 노골적이다.

머리는 짧지 않게 뒤로 묶은 것 같이 보이고 옷은 청바지 비슷한 걸 입었다. 

그리곤 나갔는데 조금 후에 옆으로 난 문, 내가 있는 쪽으로 가까운 문으로 다시 들어온다.

이럴 때는 한마디 해야 하나! 아니면 기다려야 하나 하고 있는데

말을 너무 쉽게 걸어온다.

어디 가냐고 묻는다. 개미 소리로 여수라고 하는데 그러면 아직 멀었네 한다.

10년 지기처럼 말을 놓고 하는데 나는 바보처럼 존대를 했다.

아직 시간 있는데 밖에 있지 왜 안에서 있냐고 묻는데 대답을 할 수가 없다.

한다는 말이 모르는 동네라서 하고 말꼬리를 감추니까

역 안을 무엇을 찾듯이 다시 둘러보더니 그럼 자길 따라오란다.

혹시 이 여자 여관에서 호객하는 그런 여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조그만 여자애를 데리고 있는 게 그런 건 아닐 거라고 혼자서 좋은 쪽으로 정하고 따라나섰다.

시간은 이미 11시가 넘었는데 어딜 간다는 건지 궁금하고 너무 지루했던 차라 

일단 따라가 보자 하고 나섰다.

나가니까 별로 말은 안 하고 앞장서서 간다.

밖으로 나와  길가에 길게 나있는 도랑을 따라가다

골목길로 들어가는 것 같더니 어느 집 앞에서 애를 들여보낸다.

애가 별 말도 없이 그냥 들어간다. 나는 보지도 않고 여자만 한번 보더니 들어가 버린다.

애가 문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나에게 배는 안 고프냐고 묻는다.

이 시간에 배 고프면 어디 가서 멀 먹겠냐고 하니까 또 따라오란다.

골목을 벗어나니까 차들이 다니는 큰길이 나오는데 보이는 구멍가게로 들어간다. 

주인하고 잘 아는지 서로 먼가 대화를 하면서 나 보고 먹고 싶은 것 집으란다.

냄비도 보이고 주전자도 보이는 게 라면이나 술도 한잔 할 수 있게 보였다.

나는 괜찮다고 하니까 여자가 돈을 내면서 아무거나 집으라고 해서 과자를 하나 집었다.

나가서 잠깐 걷는데 이 여자가 나한테 멀 원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보는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하고 스스럼없이 대하는 게  한참 아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몇 걸음 안 가서 여인숙이라고 간판이 붙은 집 앞을 지나는데 문 앞에서 멈칫하는 것 같았다.

나를 쳐다 보기에 여기 들어가자고? 하고 물어봤더니

어두운 길에서 쳐다보는 눈 빛이 변했다고 해야 하나.

여수 간다면서? 하고 물어보는데 그냥 있었으면 무슨 말을 했을 것 같았는데

내가 대답을 해버렸다. 응 하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잠깐 쳐다보더니 다시 걷는다.

나는 뒤따라 걷기만 해야지 아니면 길도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 걸었다.

역이 보였다.

아무 말도 없이 걷더니 나 더러 조금 있으면 통금이니까 역에 있어야 한단다.

그리고 자기는 옆 길로 간다

순간 당황했다.

이게 머야?

왜 나를 데리고 나와서 걷다가 자기는 돌아가는 거지.

우리 그럼 여기서 그냥 가는 거야?

그럼 가야지 여수 안 갈 거야?

다시 묻는데 대답을 못 했다. 이제는 안 간다고 할 수도 간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랬더니 웃으면서 잘 가고 인연 있으면 또 만나 한다.

이게 먼 한여름 밤의 드라마인가 아니면 내가 심심한 사람에게 홀렸나.

멍하니 걸어가는 키가 늘씬한 여자 뒷모습을 보는데 서운 했다.

이름도 모르고 연락처도 안 물어봤는데

나더러 또 만나자면 밤기차 타고 와서 여기서 기다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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