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목: 자기심리학의 역사와 이론(Kohut)
주제: 앨런 시걸의 코헛에 대한 비판과 결론
지도 교수: 신현근 박사
내용: 발제문
발제자: 이은숙 연구원
주교재:
Siegel, A. M. (1996). Heinz Kohut and the psychology of the self. New York: Routledge.
하인즈 코헛과 자기 심리학/ 앨런 시걸 지음; 권명수 옮김. 서울: 한국심리치료연구소.
비판과 결론
*하인즈 코헛의 작업을 비판할 때 염두에 두어여 할 사실은 그의 작업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미완성의 작업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사상처럼 코헛의 상상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그의 때 이른 죽음으로 그런 발전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어지고 말았다.
*코헛의 특정 사상을 고려하는 연구자는 그가 언제 특정사상을 논했는지? 그의 논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와 같은 질문을 물어야 한다. 또한 연구자는 코헛의 논리의 약점을 말로 쉽게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 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한다. 이런 반응은 논쟁을 중단시키며 이론을 화석화하고 사상의 추가적 발전을 중단시킨다.
*나는 코헛이 프로이트가 그러했듯이,,영속적 가치를 지닌 개념들을 발달시켰다고 믿는다. 프로이트의 역동적 무의식이라는 개념은 인류를 위한 영구적인 공헌에 해당된다. 무의식에 대한 서술과 관련된 어원적 논의와 상관없이, 마음속에 있는 미지의 정서적 세력이 지닌 영향력은 항상 현존하고 있으며 부인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코헛의 개념 중 몇몇은 비록 아직은 역서의 시험을 받지 못했지만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코헛의 공헌들
1)공감을 정신분석학적 영역을 정의하는 도구로서 묘사했다. 정신분석학적 영역을 오직 성찰과 공감이란 도구를 통해서만 연구할 수 있는 안간 내면의 성찰과 공감이란 도구를 통해서만 연구할 수 있는 인간 내면의 삶에 관한 과학으로 정의하였고, 코헛은 (환자의 내면의 삶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는 도구인)공감만을 사용하여 새로운 가설과 개념의 정립을 시도했다.
2)첫 번째 가설은 자기애를 퇴행적 병리로서 간주하는 판단적 태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했다. 코헛은 자기애가 발달하면서 그 구성물이 변화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초기 구성물(이상화된 부모원상, 과대 자기로 구성된)로 시작해서 종국에는 이상과 포부를 확립하는 후기 구성물로 발달해간다고 보았다.
3)코헛은 성인 환자와의 분석 경험을 통해 자기애의 초기 형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러한 욕구들은 이상화에 대한 욕구, 대상으로부터 인정받고 가치 있게 여겨지며 반영 받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쌍둥이처럼 다른 사람과 동일하게 느끼고픈 욕구들을 포함한다. 코헛은 이런 욕구들이 아이의 발달, 생존, 활력에 본질적으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34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발달하는 자기에게 이런 중요한 심리적 기능을 제공하는 대상들은 자기의 일부로서 경험된다고 주장한다. 대상들이 자기의 일부로서 경험되기 때문에, 그는 이런 대상을 자기대상으로, 이런 욕구를 자기대상 욕구로 불렀다. 그는 또한 자기대상 욕구가 강렬하게 드러나는 경험을 자기대상 전이라고 불렀다.
4)코헛이 공감적 침잠을 분석에서 자료를 수집하는 방법으로 정의 한 것, 자기애를 정상적인 발달의 건강한 측면으로 묘사한 것, 자기대상 욕구가 전 생애를 통해 지속된다는 믿음, 자기대상 전이의 개념 등은 정신분석학가 인류에게 항구적인 공헌으로 남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코헛의 작업에 대한 나의 첫 비평
1)코헛의 글쓰기 스타일, 그의 글을 읽기가 어렵다. 그의 초기 저술들은 더욱 그렇다. 그의 문장은 아주 심한 독일어식 표현에 속한다. 코헛의 글을 읽는 것은 뒤얽힌 그의 문장들의 불일치를 견뎌야 하며, 마침내 그 고통에 상응하는 보상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참고 견뎌내야만 한다.
2)코헛은 유창한 연설가였고 일관되게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컸지만 그의 저작들은 그의 연설과 달리 차이가 있었다. 그의 저술방식은 그가 제안하는 내용에 대한 불안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코헛의 잠재적 비판을 염두에 두고서 고심을 하며, 너무 신중한 방식으로 자신의 요점을 진술하려다보니 그 글은 매우 읽기가 어려운 글이 되고 말았다.
3)코헛은 그의 이론과 고전적 이론이 제공하는 중심적인 설명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의 사상이 정신분석학의 지위를 위협한다는 것을 의식한 그는 프로이트의 사상을 대치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확장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상을 제시하기 위해서 엄청난 고통을 감수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의 용기가 증가한 것과, 동료 집단의 지원, 질병과 임박한 죽음 등이 결국 정신분석학계에 대한 코헛의 모호한 태도를 바꾸는데 도움을 주었다. 흥미롭게도 그가 전문가로서의 삶에서 겪었던 투쟁이 그의 작업가설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가 자신의 새로운 사상으로 인해 주류에 속한 정신분석학 동료들로부터 비난받고, 버림을 받는 것에 대한 그의 불안은 지지적이고 공감적이며 긍정적 환경에 대한 욕구가 결코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그이 견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코헛의 주장과 사상적 불안
*코헛은 ‘자기의 회복’ (1977)에서 자기심리학을 고전적인 욕동 방어 심리학 또는 정신기구 심리학과 구별했다. 그는 결함 있는 자기가 대부분의 정신 병리의 핵심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코헛은 정신분석의 가장 심층적 작업은 본능적 욕동 사이의 갈등을 드러내기보다는 결함 있는 자기와 관련된 근저의 우울을 밝히고 극복하는데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랫동안 오이디푸스적 정신병리의 핵심에 존재한다고 믿어왔던 공격성과 성욕은, 사실상 자기의 붕괴로 인해 나타나는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의 자기는 자기대상 환경의 부적절한 초기 반응으로 인해 약화된 자기라고 하였다. 고전적 분석가가 성욕과 공격성을 일차적 욕동이라고 간주했던 것과는 달리, 코헛은 그것들을 파편화된 자기의 이차적 표현이라고 간주했다. 즉 간절한 애정이 깨어져 성욕이 나타나고, 자기 주장성이 균열되어 공격성과 파괴적 적의로 나타난다.
*불행하게도 코헛이 ‘자기의 회복(1977)’에서, ‘욕동 요소’를 애정과 자기 주장성이 붕괴된 산물로서 언급했을 때, 거기에는 혼동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혼동은 그가 자신의 심리학에서 욕동 개념에 대한 정의를 배제함으로써 초래된 것이었다. 근 s 욕동을 생물학적 원리가 심리학의 영역을 침범한 것으로 보았고, 공감이나 내면적 성찰에 소용이 없고, 심리학의 일부가 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코헛은 분석학계의 비난을 염려한 나머지 다음과 같은 모호한 진술을 했다. ‘우리는 고전적 이론의중심에 위치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진실을 꼭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이론의 보편적인 적용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고전적 이론에 자기-심리학적 차원을 첨거하는 것은 고전적 이론이 지닌 위대한 설명적 능력을 존경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오히려 그것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다’(1977, 227쪽)라고 서술하였다.
*코헛의 불안은 그가 죽기 얼마 전까지 그를 따라다녔던 것 같다. 그의 유고작 자기의 치료(1984)에서 조차 고전적 이론 중심에 있는 오이디푸스 개념이 진정한 의미에서 심리적 개념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면서도 그 점에 대해 확고한 입장을 밝히지 못했다. 그는 당시에 자신의 주장을 펼쳤지만-공감을 통해 수집된 자료들이 심리학적 접근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과. 그것은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정신병리를 포함한 인간의 내적 삶을 탐구할 수 있는 유일하게 유용한 방법이다-확고한 입장을 밝히지는 못했다.
*코헛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지자 더 강해졌고, ‘욕동 개념은 심리학적 체계에 속하지 않는다’ 라고 ‘성찰, 공감 그리고 정신 건강의 반원(1981 b)’이라는 글에서 모호한 그의 입장을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기심리학은 고전적 분석학이 신봉해온 인간에 대한 왜곡된 견해로부터 해방되었다.
그것은 자기심리학의 성찰과 공감이 심리적 영역에 대한 유일한 관찰 도구라는 사실을
수용함으로써, 생물학 또는 심리생물학의 입장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심리학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에서 반영되고 있다”
*최종적으로, 그가 1981년 10월 8일 죽기 3일 전에 행한 연설 “공감에 대해”에서 코헛은 명확하게 선언했다.
“저는 제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심리생물학이나 또는 생물심리학 또는 그런 종류의
다른 어떤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불행히도 이런 시도가 행해졌고,
그 결과 인간 이해에 있어서 가장 심각한 왜곡이 발생했는데, 그것은 바로 욕동
개념의 도입입니다. 정신분석학은 이것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코헛은 외부로부터 오는 강한 압력으로 인해 자신의 사상과 고전적 이론을 통합하도록 밀어 부쳤다. 그는 이런 압력에 대해 사상을 발전시키는데 전념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대응했다. 많은 시간을 요하는 이론적 통합작업은 그의 동료들과 학생들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심각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코헛의 방법론적 문제
*코헛은 정신분석학의 영역을 오직 공감과 내면적 성찰을 통헤 수집된 자료만으로 제한하였다. 이런 규정은 정신분석학을 다른 학문적 원리의 침범으로부터 보호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다른 영역으로부터 고립을 야기했고, 다른 영역에서 빌려올 수 있는 가치있는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
(중략)
*‘코헛의 작업’이 정신역동적 심리치료에 어떤 유익을 가져왔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면담실의 새로운 분위기에서 발견될 수 있다. 왜냐면 그곳이 코헛의 통찰과 개념화가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코헛은 결함있는 자기가 환자가를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자기에 귀를 기울였고, 생존을 위한 그것의 투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