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포명령은 없었다! 2


7080 당시, ‘군사독재 물러가라’는 등의 시위가 거의 매일 매일 일어났다. 깨지고 다친 학생-시민들 부지기수이고 그중 몇몇은 사망한 사람들도 있다. 전투경찰에 맞서 피나는 투쟁을 한 시민들 학생들 이분들은 민주화 운동하지 않은 사람인가? 어쩌면 이런 분들이야 말로 민주화의 초석이 되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특수 무장공비 소탕 작전에 참여한 군인들은 민주화가 되지 못하나? 6.25 참전 용사들은 왜 민주화 일원에 들어가지 못하나? “민주(民主)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말이고 “민주화란 그 주권을 찾아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민주, 민주화 이런 말은 대단히 광범하여  대한민국에서 법의 질서를 지키는 국민들은 모두다 민주시민-국민이요 '집권자의 왜곡을 지적 하는 그 자체가 민주화'인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5.18만 민주화라 칭하며 각종 혜택을 누리게 한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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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관련 아티클 > 


https://study21.org/518/video/515.htm

이 비디오는 본래 조총련이 촬영하였으며 북한에서 실시간 방송되었던 비디오의 한 장면이다(문제의 장면은 광주사태 후 조총련이 5.15 서울역 시위 도중의 순경 압사 장면과 짜집기한 것이라고 함). 그리고 한국에서도 5.18 기념행사 때마다, 혹은 광주민주화운동 다큐멘터리로 방송사들이 푸른 눈 독일인 기자가 촬영한 비디오라고 말하며 보여주는 비디오의 한 장면이다. 그런데 어찌 방송사들이 이토록 시청자들을 속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독일인(기자가 아니라, 동네 케이블 업체 근무자로 일본에서 조총련을 만났던 인물) 입국일은 5월 26일이요, 그 독일인 이름으로 방송사들이 보여주는 광주사태 장면은 주로 5월 19일 장면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5월 26일 오후에 입국하여 5월 19일 현장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그가 촬영한 것이 아니라, 조총련이 폭동 선동을 목적으로 촬영한 비디오들을 그는 전달받았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방송사들이 조총련의 이름을 숨기고 독일인 기자 이름을 팔아먹고 있으니 이 얼마나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행위인가!


 한국에서는 5월 18일에는 그 누구도 광주사태가 일어난 줄을 몰랐다. 심지어 광주시민들조차 그때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광주사람 정웅소장이 광주향토사단 2개 공수대대에 시위진압 명령을 내리는 그순간부터 조총련은 영상 촬영하고 사진을 찍었으며 7시에 북한은 광주폭동이 일어났다고 방송하고, 그때부터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실시간 광주사태 생중계 방송을 하였다. 한국 기자들은 광주 세무소와 MBC 방송국 등이 붙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때야 비로서 달려오기 시작하였는데, 조총련은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촬영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북한 특수부대와 조총련은 광주폭동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은 군경과 민간 사이에 무장 유혈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조총련이 5월 26일 독일인 기자를 데리고 온 데에도 그들의 대남선전 전략이 있었을 것이다.


 김대중의 비등록 정당(일명 국민연합) 사무총장 윤상원이 이끄는 폭도들이 광주 시민으로 하여금 한국 방송을 듣지 못하고 북한 방송 청취만 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광주 MBC 방송국에 방화한 시간은 5월 19일 15:30 이었다. 군인들이 제일 먼저 달려와 불을 끄며 인명구조 작업을 하였으며, 이어 순경 4명이 인명 구조를 도우려 달려오자 폭도들의 버스가 달려와 깔아죽인다.


 불타는 건물 인명 구조를 위해 달려온 순경들을 학살한 폭도는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추켜 세우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화재 건물 안의 광주시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폭도 버스에 깔려 순직한 순경들은 죄인 취급하는 운동권 방송도 교활하거니와, 폭도들이 순경들을 버스로 깔아죽이는 장면마저 민주화운동으로 미화하는 독일인 나레이터도 너무 무식하다. 


 5월 26일 김대중의 비등록 정당(일명 국민연합) 사무총장 윤상원이 자신을 전남대생이라고 신분을 숙이고 외국 기자회견을 하여 전두환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세계를 속였다. 당시 쿠데타 세력은 김대중이었으며, 윤상원 본인은 무장봉기를 준비해 오고 있었음에도 사실과 정반대로 외국기자 인터뷰를 하였다. 김대중의 국민연합은 5월 22일 전국의 도청 소재지를 무력 점령하고 최규하 대통령 정부를 전복한 다음 김대중이 새 내각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윤상원은 광주에서 먼저 폭동을 일으키면 서울 운동권도 폭동을 일으킬 것으로 계산했었으니 쿠테타는 김대중과 윤상원 본인이 일으킨 것었다. 그럼에도, 김대중 일당은 그때도 전세계를 속이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가지 특기할 것은 위의 동영상은 5월 15일 오후 한시반 경 남대문에서 유시민 시위대가 순경을 깔아죽이는 장면이요, 정확히 4일 후 같은 시간에 광주 MBC 방송국 화재 현장에서 똑같은 사고가 연출되었다. 단지 차이가 있었다면 유시민 시위대의 버스 사고 때는 순경 한 명만 즉사하였던데 비해 광주사태 때는 순경 4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그런데, 조총련은 광주사태 선동자료로서(그리고 김정일에게 바쳐지는 자료로서) 5월 15일 유시민 시위대가 순경을 깔아죽이는 장면을 광주사태 장면인 것처럼 끼어넣기 편집을 하였다. 


 우리가 보는 대로 한국의 버스 기사는 저런 식으로 운전하지 않는다. 시민버스를 탈취하여 기사를 강제로 하차시키고 질주하여 급회전하면서 순경들이 피할 겨를이 없도록 압사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5월 15일의 서울역 집회 때도 5월 19일의 광주사태 때도 북한군 특수부대원과 (일본인 기자 신분의) 조총련이 함께 행동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5월 15일 남대문 앞에서의 순경 압사 사건은 도주 버스를 잡지 못했지만 5월 19일 광주사태 때는 버스가 가로수를 들이받고 멈추었다. 그 장면을 노동시인 박노해는 이렇게 기록한다:


<<이때 광천 교통 소속 버스 한 대가 군 저지선을 돌파하여 경찰 4명을 깔아뭉갠 후 가로수를 들이받았다. 군인들이 재빨리 차를 부수고 사람들을 끄집어냈다. 시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화약 연기 너머로 개처럼 찢겨 죽어 가는 그들을 우우 ―비명을 지르며 지켜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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