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는 고종황제!

매국노는 이완용이라고 그렇게 손가락질 해 대며 을사조약을 '을사늑약'이라 했다.  그리고는 일본을 그토록 저주하며 '독도는 우리땅' '동해.일본해 병기 표기'에 매달리며 "2세에게 동해의 바른 역사를 주입 시켜야 한다"며  미주 한인 언론에 6개월 이상 하루도 빠짐없이  1면에 대문 짝 큰 글자로 똥칠하며 라디오 방송으로 온 세상 떠나갈 듯 소리 소리 쳐 질렸다. '이평선생' 할 수 없이 '동참 한다' 하니 하루아침에 그 큰 행사를 무산 시켜 버리는 무서운 횡포를 자행하며 정의, 도덕, 윤리 이따위  것들을  깡그리 말살해버리는 거룩한 일들을 쳐 질러 대더니  '3.1일을 유관순의 날로 지정하여 매년 그녀의 곧은 애국 심을 전세계에 전도 하자' 며 또 한번  그토록 난리 쳤다. 그러나 그런 횡포 짓거리로도 속이 차지 않았는지  '위안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위안부 앞세워 위안부의 인권을 착취 해 대며  '일본이 박탈한  위안부의 인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광고로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썩은 냄새 진동하는 여자의 똥 가랑이를 전 세계에 쳐 까발리며 쳐 다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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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12월 11일자 ‘주한일본공사관기록’.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을사조약 체결을 위해 황제 고종을 포함한 대한제국 고위층에 거액의 뇌물을 뿌렸다는 기록이다.  1905년 12월 11일자 ‘주한일본공사관기록’. 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을사조약 체결을 위해 황제 고종을 포함한 대한제국 고위층에 거액의 뇌물을 뿌렸다는 기록이다. /국사편찬위


황제가 받은 접대비 2만원

‘내탕금(황실 자금)이 부족하다는 점을 이용해 심상훈을 통하여 황제 수중으로 2만원을 납입했습니다.’


을사조약 체결 1주일 전인 1905년 11월 11일 주한일본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는 일본 외무성 기밀 제119호에 의거해 기밀비 10만원을 집행했다.(‘주한일본공사관기록’ 24권 22. 보호조약 1~3 (195)'임시 기밀비 지불 잔액 반납의 건', 1905년 12월 11일) 다음은 이에 대한 일본공사관 기록 전문이다. 이 자료는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공개돼 있다.


‘지난달 4일 자 기밀 제119호로 보호권 확립에 관한 조약체결 등을 위하여 무엇인가 비용을 필요로 하겠기에 기밀비 10만원을 송부하여 위의 목적에 지출하라는 훈시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신협약 체결 전에 있어서는 당장 이토 대사 내한에 즈음해 궁중 내탕금이 궁핍 상태라는 것을 탐지했기 때문에 대사 접대용 비용에 충당하는 명의 아래 금 2만원을 심상훈(沈相薰)을 거쳐서 황제 수중에 납입하고 금 3000원은 폐하 좌우에 있는 시종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구완희(具完喜)에게, 금 3000원은 법부대신 이하영(李夏榮)에게 급여한 외에 나머지 2만원은 모두 조인 후 이완용, 이근택, 이지용 등으로 하여금 선후책으로서 그 부하를 위무시킬 필요상 지급할 것을 조치했습니다. 또한 참정 박제순 기타 한두 대신에게 같은 목적으로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었기에 그 견적 1만5000원을 공제하고 잔액금 3만9000원은 반납 조치하였사오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문서에는 지출된 금액을 계산한 메모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기밀119호에 의해 기밀비 10만원'

'기밀119호에 의해 기밀비 10만원'

'2만원을 황제의 수중에 납입'

'2만원을 황제의 수중에 납입'

'무기명예금증서로 심상훈을 통하여 궁중으로'

'무기명예금증서로 심상훈을 통하여 궁중으로'

구완희 3000원 이하영 3000원

이지용 5000원 이근택 5000원

이완용 1만원 박제순 외 두 대신 1만5000원

계 6만1000원 차액 3만9000원

구완희 3000원 이하영 3000원 이지용 5000원 이근택 5000원 이완용 1만원 박제순 외 두 대신 1만5000원 계 6만1000원 차액 3만9000원


한마디로, 조약 체결 1주일 전에 황제 고종이 일본 공사로부터 2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명분은 이토 히로부미 접대비이고, 이유는 ‘내탕금 궁핍 상태’였다. 조약 상대방의 궁박함을 이용한 증뢰(贈賂)요, 태조고황제가 비바람 맞으며 힘들게 마련한 나라를 판, 명백한 수뢰(受賂)다.]


"을사조약 직전 고종은 일본서 뇌물 2만원(25억원)을 받았다" 입력 2020.10.21 03:00  뉴스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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