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隨筆]
간이 최립 시조 작품감상
간이(簡易) 최립(崔岦, 1539~1612)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문인중의 한사람으로, 학자로서 그리고 외교문서작성의 제1인자로 솝꼽혔던 유능한 외교관으로서도 명성이 드높았으며 뛰어난 시조 작품들을 후세에 남겼습니다. 그는 특히 학문과 자연과 함께 벗하는 삶, 충절, 그리고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많이 지었습니다.
최립 시조의 문학적 특징들을 크게 무리지어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1. 자연 친화적 태도: 자연을 사랑하고 그것을 벗삼아 사는 삶을 찬미.
2. 은둔과 학문의 이상: 속세를 떠나 조용한 곳에서 학문을 연구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김.
3. 인생무상의 사상: 자연은 영원하지만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는 인식 확신.
4. 충절과 선비 정신: 현실에서 물러서더라도 올바른 삶을 추구하려는 선비적 태도 견지.
최립은 1,500여편에 이르는 다양한 한시와 상당한 시조 작품을 후세에 남겼다고 알려져있으나, 그의 시조 작품 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최립의 문집인 간이집(簡易集)에 일부 시조가 수록되어 있으며, 후대의 시조 선집들에도 그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전해오고 있습니다. 최립은 시조뿐만 아니라 한시와 문장(散文)에 더욱 능했던 르네상스적인 다재다능한 인물로 그가 이룩한 다양한 업적들이 최근 새롭게 평가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온전하게 전하는 그의 시조는 10여 수 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시조로는 ‘강호한정가(江湖閑情歌)’와 ‘누항사(陋巷詞)’ 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최립(崔岦)이 작시한 시조의 총 수는 정확한 수량이 문헌마다 조금씩 다르게 소개되어 전해오는데, 현재 전해지는 시조 중 대표적인 10여 수를 뽑아 여기 여러분이 감상하실 수 있도록 소개합니다.
1. 「강호한정가(江湖閑情歌)」
강호에 봄이 드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
흥에 겨워 창을 잡고 일장가를 희롱하니
시비 아니할 이 누구리오, 물 아래 낚시 옛 버릇인가 하노라.
이 시조는 자연을 벗삼아 살아가는 즐거움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강호(江湖)’는 자연 속에서의 은거 생활을 뜻하며, 봄이 찾아오자 시인의 흥이 절로 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창을 잡고 일장가를 희롱하니’라는 구절은 자연 속에서 창을 부르며 즐거운 마음을 표현하는 대목입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물 아래 낚시 옛 버릇인가 하노라’라고 한 것은, 낚시를 즐기며 자연 속에서 소박한 삶을 사는 선비의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는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은둔과 자연 속의 삶’을 반영하는 내용입니다.
2. 「누항사(陋巷詞)」
염계(濂溪) 노래를 듣고 옥당(玉堂)에 홀로 앉아
속세에 물든 마음 맑은 물에 씻으려 하니
조촐한 내 초당에도 가을 달이 밝아라.
이 작품은 속세의 번잡함을 떠나 조용한 학문과 자연 속에서의 삶을 추구하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염계(濂溪)’는 주자학을 정립한 송나라의 유학자인 주돈이(周敦頤)를 뜻하며, 그의 청렴한 삶과 학문을 본받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옥당(玉堂)’은 학문의 전당이나 고요한 거처를 의미하며, 학문과 사색에 집중하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가을 달이 밝아라’라고 표현한 것은, 고즈넉한 공간에서 학문에 몰두하는 삶을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자연 속에서의 청정한 삶을 동경하는 조선 시대 사대부의 이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3. 「차운(次韻)」
천심(天心)이 어떠하야 만고풍상을 견디고도
산은 푸르고 물은 맑아 예 같음을 보이느냐.
인생도 자연과 같이 변함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이 시조는 자연의 영원성과 인간 삶의 유한성을 대비하는 내용입니다. ‘천심(天心)’은 하늘의 뜻, 즉 자연의 이치를 의미하며,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산과 물은 변함없이 존재하는데, 인간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인생도 자연과 같이 변함이 없었으면 좋으련만’이라고 한 것은 인간의 덧없음을 한탄하는 동시에, 변하지 않는 자연의 본질에서 이상적인 삶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입니다.
4. 「한거(閑居)」
바람은 건듯 불고 꽃은 조로 피는구나.
술이 아니면 흥을 더할 것 없건마는
취해 아니하랴 하건마는 자연이 깨우치네.
자연 속에서 홀로 지내며 느끼는 평온한 정취를 묘사한 시조입니다. ‘바람은 건듯 불고 꽃은 조로 피는구나’라는 표현은 자연의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술을 통해 흥을 돋우고 싶지만, 결국 자연 속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조선 사대부들의 이상적 삶을 반영한 것입니다.
5. 「춘일한흥(春日閑興)」
봄날에 새싹이 돋아나니 시름도 가시도다.
한 잔 술로 근심 씻고 나니
흥이 절로 이는구나.
봄의 생동감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봄의 따뜻함과 자연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근심이 사라지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술을 통해 일상의 번뇌를 잊으려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는 단순한 유흥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태도를 반영합니다.
6. 「도연명에 기대어(擬陶淵明)」
황량한 이 내 집에 한 잔 술이 있거니와
국화는 저절로 피어 향기를 더하도다.
달빛 아래 시름도 흩어지네.
중국의 은둔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소박한 삶 속에서 만족을 찾으려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한 잔 술’과 ‘국화’는 도연명의 대표적인 이미지이며, 이를 통해 세속의 번거로움을 잊고 자연 속에서의 고요한 삶을 즐기고자 합니다.
7. 「답설(踏雪)」
눈 덮인 길을 걸어가니 발자취가 남는구나.
오는 길을 되돌아보니
어느덧 지워졌네.
눈 덮인 길을 걸으며 삶의 무상함을 깨닫는 작품입니다. ‘발자취가 남는다’는 것은 인간이 남기는 흔적을 의미하며, ‘지워졌네’라는 표현은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합니다. 이는 불교적인 무상(無常) 사상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보겠습니다.
8. 「한거자탄(閑居自歎)」
나무는 옛 빛 그대로 있는데 사람만 변해 가네.
달은 예나 지금이나 밝건마는
내 나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네.
자연은 영원하지만 인간은 세월 속에서 변해 간다는 철학적인 내용입니다. ‘나무는 옛 빛 그대로 있는데’라는 구절은 자연의 불변성을 강조하며, ‘내 나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네’는 인간의 유한성을 한탄하는 부분입니다. 이는 최립이 자연을 통해 인생을 깊게 통찰하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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