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46회] 간첩 또는 밀사 황태성 의혹 사건

2019.03.25

군정 기간에 일어난 대표적 의혹사건의 하나는 황태성사건이다. 


황태성은 1906년 경북 상주 출생으로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고 김천으로 옮겨 정착하면서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김천 청년동맹 집행위원과 신간회 김천지회 간부를 지내고, 조선공산당에 참여했다가 일제에 검거돼 옥고를 치렀다. 이런 과정에서 박정희의 셋째형 박상희와 친교하면서 노선을 같이 하였다. 


박정희는 젊은 시절 형의 친구인 황태성을 따랐고, 그는 박정희를 좋아했다. 해방 후 남로당이 부활하자 황태성은 경북 조직부장을 맡아 활동 중 1946년 대구 10.1항쟁 때에는 주동자로 지목되자 검거를 피해 월북했다. 해주인쇄소 총무국장과 상업성 산업관리국장 등을 거쳐 무역성 부장과 함께 노동당 중앙위원을 지냈다. 


5ㆍ16 직후 노동당 부위원장인 이효순(대남사업 담당)을 만나 박정희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남파시켜 주면 박정희와 만나 남북협력 문제를 협의하겠다”고 건의해 당중앙위원회의 승낙을 받고 8월 29일 평양을 출발, 임진강을 건너 휴전선으로 넘어왔다. 출발 전 김일성과도 만났다고 한다.


황태성과 박정희


박정희의 셋째형이자 김종필의 장인인 박상희의 절친 황태성은 여러 인맥을 통해 김종필ㆍ박정희와 접근하려다 중앙정보부에 체포되었다. 그는 남파 간첩이 아닌 밀사라고 주장하며 김종필과 박정희의 면담을 요구했다. 김종필의 증언.


황태성이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이북에서 내려왔다는 보고에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얼굴은 내내 굳어 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던 박 의장이 물었다. 


“그래. 어떻게 할 작정이야?”


나는 힘주어 대답했다.


“조사할 거 조사하고 나서 될 수 있는대로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두고두고 화근거리가 됩니다.”


“아…. 어떻게.”


“법적 절차는 다 밟습니다. 재판을 해야 하니까 시간이 조금 걸릴 겁니다. 제가 알아서 조치할 테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 말을 듣고서야 박 의장 얼굴에 화색이 돌아오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말이 없었다. 혼자 마음속에서 주고받고 하면서 고민을 하는 듯 했다. 어려서부터 “형님, 형님”하며 황태성을 따라다녔는데, 그 흉중에 물결이 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박 의장은 다른 말 없이 “그래, 잘 좀 취조해봐”라고 말했다.


황태성의 검거는 얼마 후 미 CIA에 정보가 들어갔다. 박정희가 전력의 문제로 미국측으로부터 사상적인 의혹을 받고 있어서 크게 당혹스러웠을 때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서울지국장 피어 드 실바가 김종필을 찾아와 황태성의 신병을 넘겨 줄 것을 요구하여 황태성은 미국 측으로 넘겨졌다. 


한국 중앙정보부가 황태성을 간첩 혐의로 군법회의에 넘긴 건 1961년 12월 1일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총살형으로 형이 집행되었다. 5ㆍ16 직후에 남파된 그가 거액의 공작금을 가져왔고, 이 돈이 공화당의 창당자금으로 사용되고 일부는 KBS 설립의 기금으로 활용되었다는 설이 나돌았다. 또한 1963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의 이원조직에 황태성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야당에서 제기했다. 


황태성사건의 진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김형욱의 증언.


두 가지의 정보가 서로 상치되고 있다. 


제1정보는 김종필이 직접 황태성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남북비밀 협상에 대한 일반원칙에 합의하는 일방 황태성의 좌익조직 이론에 감복한 김종필이 황태성의 자문을 받아 공화당을 사전 조직했다는 설이다. 황태성은 심지어 공화당 비밀 요원들의 밀봉교육을 담당했다는 설도 있다. 


제2정보는 김종필이 후환을 두려워하여 황태성을 직접 만나지 않고 수사관을 파견하여 황태성을 심문하였으나 황태성이 김종필을 직접 만나지 않고는 얘기할 수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김종필과 얼굴인상이 흡사한 치안국 정보과 박문병 경감을 김종필로 가장시켜 반도호텔 735호실에서 황태성과 대면하여 황태성의 대남공작임무를 파악했다는 설이다.


제1정보에서 황태성이 과연 공화당요원의 훈련을 담당했는가의 여부는 공화당 비밀훈련장소였던 ‘춘추장’의 훈련실 구조가 강의를 받는 사람이 강사의 얼굴을 볼 수 없도록 장치되어 있었으므로 아무도 황태성을 볼 수가 없었고 비밀훈련을 주도했던 윤천주ㆍ김성희 등이 전혀 모르는 얘기라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으므로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또 제2정보에 있어서도 등장하는 수사관과 치안국 박 경감의 면접사실은 확인하였으나 제2정보의 정확성이 제1정보의 가능성 자체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김종필과 황태성은 위에서 열거한 두 가지 또는 그 첫째 방법으로 접촉하였으며 그 자세한 전말은 오직 당사자인 김종필과 황태성만이 알고 있다. 적어도 이상의 정보에서 분명한 것은 황태성이 즉각 방첩기관에 구속되어 유치장에 수감되지 않았고 상당한 기간 동안 반도호텔에서 유숙하며 거들먹거렸으며 따라서 김종필, 박정희가 황태성을 직접 접촉하지는 않았다고 가정하더라도 그를 상당히 예우했던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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