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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아이제나흐(바하 생가 & 박물관)

2020.03.17

이번에는 독일의 아이제나흐(Eisenach)로 갑니다.
이 도시 에서는 '음악의 아버지'인 바하가 태어났습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하(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3월 21일 - 1750년 7월 28일)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며, 개신교(루터교) 교회 음악가입니다.



바하의 동상이 서 있는 언덕에서 아이제나흐 도시를 내려다 봅니다. 아이제나흐는 바하에 앞서 
루터교를 창시한 위대한 종교 개혁가인 '마르틴 루터'의 역사가 묻어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태어나서 10살까지 산 어린 바하는 자신이 태어난 
집 위에 있는 이 언덕에서 어린 시절 참 많이도 뛰어 놀았을겁니다.



헨델과 같은해인 1685년, 한달 정도 후에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태어난 바하는 한사람은 
'음악의 어머니'로 다른 한사람은 '음악의 아버지'로 바로크 시대 음악의 꽂을 피우고 간 위대한 음악가 입니다.

또 헨델과 유사한 점이 두 사람 인생의 삶속에 같이 공유하는데 두사람은 동일 의사에게 눈 수술을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결과는 완전 실패로 둘 다 시력을 잃어버리는 끔찍한 일이 발생 하였습니다. 그 의사의 이름은 존 테일러(John Taylor) 입니다.



바하의 생가와 함께 붙어 있는 박물관으로 들어가서 그의 위대한 음악 발자취를 보기로 하겠습니다.


Image result for 바흐 생가 사진 1907

바하 협회에서는 1906년에 바하의 생가를 사들여 1907년 5월 27일에 뮤지엄으로 오픈했습니다.




1944년,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폭격으로 심하게 파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복원하여 1947년 3월에 새로 오픈 하였고 
1973년에 새디자인으로 재단장하여 현재 모습으로 되었습니다.



무인 우주선 보이저호에 실은 외계인에게 보내는 지구의 각종 정보와 메시지를 담은 LP 디스크가 있습니다. 


그 음반의 이름은 '지구의 소리'(The Sounds of Earth)입니다. 총 27개의 음악이 수록 되어 있는데 
그 중 첫번째 음악이 바하의 곡 입니다. 4분 40초 길이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2번 F장조 BWV. 1047중 1악장' 으로
1967년 뮌헨 바하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였고 전 세계에서 바하 음악 해석에 가장 탁월한 '칼 리히터'가 지휘를 한 음반 입니다. 
(참고용 동영상 맨 아래 있습니다.) 



현대 음악의 뿌리는 바하에게 있기에 바하를 '음악의 아버지' 라 부르고 더 나아가서 
'모든 음악은 바하로 부터 시작된다.' 라고 후세 사람들은 말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클래식 음악이 없어진다고 해도 바하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 
집만 남아 있으면 클래식 음악은 완전히 복원 될수 있다고 합니다.



후대 음악가인 악성이라는 별명을 가진 '베토벤'은 말하기를 "그의 이름은 '바하'(Bach)가 아니라 '바다'가 되어야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Bach는 독일어로 시냇물이라는 뜻)




바하를 설명할때 꼭 집고 넘어 가야 하는 음악적 용어로 두개의 키워드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편에서도 언급을 한 평균율(Well Temperament)이고, 다른 하나는 대위법(Counterpoint)입니다.

대위법은 두개 이상의 독립적인 선율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작곡 기술입니다. 
작곡의 가장 고난도 기술은 푸가(Fugue) 기법 입니다.

바하가 1750년 하늘나라로 가기전까지 작곡한 것은 푸가의 예술(The Art of Fugue)입니다. 
'푸가의 기법' 이라고도 합니다.

14곡의 푸가와 4곡의 카논을 쌓아 올렸습니다. (카논은 돌림 노래 일종을 말함)
곡 진행이 80분쯤 흐른 후 삼중 푸가 도중에 갑자기 곡은 중단 됩니다.  
더 이상 작곡을 할수 없는 상태 임을 알수 있습니다.




바하가 어떤 상태에서 펜을 놓았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거인이 고목 처럼 쓰러지는 모습이 상상되어 잠시 고개를 숙입니다.

"저는 부지런히 노력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나처럼 노력하면 누구라도 이만큼은 할수 있을겁니다."

바하가 자신의 신념을 전하는 말에서 자신감과 신앙심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바하는 명문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 났지만 불행히도 10세때 고아가 됩니다.

바하의 아버지는 그 당시에 아이제나흐 시음악장 이었습니다. 가까운 친인척 중에는 
음악가 아닌 사람이 별로 없었고 바하라는 성을 가진 당대 음악가는 20명이 훨씬 넘습니다.

그러나 고아가 된 이후 그의 음악 인생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마침 내가 바하 뮤지엄에 들어갔을 때엔 바하 음악을
그 시대 악기로 연주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파이프 오르간은 뒤에서 한사람이 따로 발로 밟으며 공기를 안으로 불어 넣어 주어야 합니다.

(내가 어렸을때 학교나 교회 풍금이 그랬습니다.)



바로크 시대 고악기로 설명과 연주를 들려주어 유익한 시간을 즐겼습니다.



방문객들은 아주 진지하게 연주를 감상합니다.

(아래 부분에 실황 동영상 세개를 준비 했습니다.)



전시 되어 있는 그 당시 현악기입니다.

전편에서도 설명을 하였지만 현악기는 순정율 악기로써 연주자가 
줄을 조이거나 풀어서 음높이 조율을 자신이 쉽게 바로 그 자리에서 할수 있습니다.




올드 스타일 파이프 오르간입니다.



그러나 건반 악기류는 음정을 높이거나 낮추어 바꾸고 싶을때 조율을 
바로 할수 없기 때문에 바하는 그 당시 무척 고민을 하였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균율을 일반화 해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평균율에 관한 설명은 전편에서 했으니 생략 하도록 하겠습니다.

평균율의 음률 체계는 바하가 처음부터 고안해 낸 것은 아니고 1500년대 말 
중국 명나라의 왕족인 '주재육' 이라는 사람이 고안해 내어 서양에 전파한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 이론을 실제로 작곡에 처음 응용하여 활용한 사람은 바로 바하입니다. 
그래서 조바꿈을 바로 바로 쉽게 적용 할수 있도록 이론을 체계화 하였습니다.




바하는 이 평균율을 사용해서 장조와 단조의 24조성으로 24곡의 전주곡과 푸가를 작곡하여 1722년에 첫번째 책을 내놓았고 
1742년에는 다시 두번째 책을 만들어 모두 48곡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이 후세에 전해지게 됩니다.



고대 피타고라스 음률로 시작된 음률은 순정률이 있고 바하의 작품들이 후대 음악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쳐서 현대의 기본 음률 체계가 평균율로 바뀌는 계기가 마련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대의 화성악은 바하의 작품에서 찾아내어 작곡의 원리를 
정리하고 계속해서 화성 이론을 발전 시켰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바하는 파이프 오르간에 관해서 대가이고 악기중에서 최고의 악기로 여겨서 
당대 오르간의 대가인 북스테후데를 만나러 젊은 시절에 472Km를 걸어서 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런 열정과 노력이 '음악의 아버지'이며 '작곡가의 태양'
(Sun of Composers)이란 명칭으로 후대 음악가에게 칭송을 받게 됩니다.



바하 박물관에는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들어와서 놀다가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렇게 여기서 놀다 보면 애들은 전혀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수도 있을겁니다.



연주와 설명회 참관을 마치고 박물관 내부를 돌아봅니다.



독일어와 영어로 되어 있어서 나는 영어로 살펴봅니다.



라이프치히 바하 박물관은 내부 촬영을 금하지만 여기선 사진 촬영이 가능합니다.



바하의 첫번째 부인입니다.

마리아 바바라 바하(Maria Barbara Bach)는 바하와 육촌 남매 사이입니다. 
7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3명만 살았고 결혼 14년 후에 아내와 사별합니다.



두번째 부인입니다.

안나 막달레나 빌케(Anna Magdalena Bach)는 무려 16살 연하로 당시 20살로 재능있는 
소프라노로써 악보를 그릴줄 알았으며 대위법과 작곡도 조예가 있어서 바하의 창작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자녀는 13명을 낳아서 총 20명의 자녀를 바하는 두었습니다.



그 당시 사용한 물품




바하는 아이제나흐에 있는 '성 게오르그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교회에서 사촌형인 요한 크리스토프 바하는 오르간 연주자로 일을 했습니다.



9세에 바하는 어머니를 여의고 10세때엔 아버지 마저 세상을 떠나서 소년 고아가 되었습니다.

 

고아가 된 소년 바하는 큰형이 사는 오르드루프에 가서 그 집에서 얹혀 살게됩니다.



다행히 큰형도 음악가라서 오르간과 작곡을 동생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형이 가진 악보를 동생에게 전혀 보여주지 않고 악보 근처에도 못가게해서 
소년 바하는 매일밤 몰래 가서 달빛 아래서 형이 가진 악보를 몽땅 베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형도 못하는 음악을 감히 동생이 어른보다 더 잘하는 모습을 보기가 싫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큰형에게 바하는 음악적으로 그리 큰 도움은 얻지 못하였어도 당시 바하는 
6년제인 초.중등학교에서 공부를 할수 있었던 것은 큰형의 덕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후 바하가 15살 되는 해에 다니던 학교 음악 선생님의 추천으로 친구 한명과 같이 
'뤼네부르크'에 있는 '성 미하일' 학교에 장학생으로 갑니다. 

그때부터 바하는 비록 많은 돈은 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경제적인 자립을 하게 됩니다.



'성 미하일' 학교에선 처음에 바하가 남자 소프라노를 했지만 변성기를 맞아 노래를 못하게 되자 
합창단 반주자로 일을 하고 소규모 관현악단까지 맡아서 하였고 후에 변성기를 지나고는 
합창단에서 비중있는 리더 역할을 하였습니다.



바하가 뤼네부르크에 있는 동안 오르간 선생님인 '게오르그 뵘' 으로 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선생님이 일하던 성 요한 교회에서 대형 파이프 오르간을 실제로 만질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수 있었습니다.



또한 선생님 주위에 게오르크 뵘의 스승인 '요한 라이켄' 으로 부터는 어깨너머로 작곡과 연주 기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후 여러 도시를 거친 바하는 라이프치히로 1723년에 가서 27년 간을 그 곳에서 사역하다 1750년에 세상을 떠납니다.



바하의 실제 얼굴 모습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대 과학을 이용해서,



우리가 이렇게 알고 있는 바하의 실제 모습 얼굴을 만들어봅니다.



바하의 얼굴 옆모습은 이렇게 생겼고,


바하의 얼굴 앞 모습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키는 180센티 정도로 체구가 크고 얼굴 선은 이렇게 굵은 편 입니다.





이런 자료를 정리 해 놓아서 보는 사람의 흥미를 둗웁니다.



현대 과학의 힘이 대단함을 느낄수 있습니다.




음악인을 위한 교과서인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입니다.



바하의 음악을 잘 들을수 있도록 최상의 시설을 갖추어 놓았습니다.
  



바하는 오르간을 특별히 사랑한 음악가 입니다.



하프가 멋지게 놓여 있어서 특별히 눈이 갑니다.



바하 박물관은 이런식으로 생겼습니다.



여기엔 기프트 샵도 물론 있습니다.



뒷 정원에서는 간단한 음료를 마실수 있습니다.



여기는 바하 박물관 앞 광장입니다.

단체로 온 관광객을 실은 대형 버스가 보입니다.



바하의 생가를 나와서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겨 갑니다.



아이제나흐에는 루터에 관한 역사도 볼수 있습니다.



루터의 역사는 다음에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하는 아이제나흐에서 태어나서 라이프치히서 그의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이번 독일 여행을 통해서 나는 바하의 일생에서 처음과 마지막 장소를 볼수 있어서 참으로 가슴이 벅찹니다.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음악 영혼을 몽땅 쏟아 부은 '성 토마스 교회'를 다시 한번 더 나의 가슴에 새기고 가겠습니다.



'음악의 아버지'인 당신을 실제로 여기서 만난 나는 정말로 행복하고 무한히 감사합니다.








아래에 네개의 동영상을 올립니다. 

처음 세개는 여기서 실제로 그 시대 악기로 직접 시범 연주한 것이고,
마지막 동영상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2번 F장조 BWV. 1047중 1악장: 입니다.



시범 연주 하나,





시범 연주 둘,




시범 연주 셋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2번 F장조 BWV. 1047중 1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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