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제임스 성경은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 1494-1536)[8]이 성경을 번역하다 화형을 당한 이후 영국의 제임스 1세가 그의 유업을 이어받아 자신이 임명한 학자들에게 지시해, 에라스무스에 의하여 번역된 TR(텍스투스 리셉투스, 표준원문) 헬라어 번역 사본[9]을 기반으로 중역하여 다시 번역하고 출판된 성경이다.[10] 제임스 1세가 임명한 당대 최고의 학자 47명이 1604년부터 세 곳에서 6개 집단으로 나뉘어 작업한 끝에 탄생했다. 번역에는 히브리어·아람어·희랍어로 된 성경 원본이 사용됐지만 학자들은 불가타 성경(405년에 완역된 라틴어 성경)과 기존의 영어·스페인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독일어 성경들도 참조했다. 번역한 성경으로, 종교개혁의 여파 가운데, 국왕의 명령으로 당시에 존재했던 사본들과 번역본들을 수집하여 비교 및 수정하고 번역하여 편찬한 것이다.
여기에도 사정이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 보편화된 제네바 성경은 이름대로 장 칼뱅이 다스리는 제네바 공화국에 망명한 영국 청교도들이 만든 번역판으로, 출애굽기 1장의 파라오의 왕명에 저항한 히브리 산파들의 행동[11]을 정당한 것으로 풀이하여 국왕에 맞서는 저항권을 인정하는 등, 왕권 강화에 걸림돌이 되는 부분이 많았거니와 각주나 난외주가 너무 많았다. 제네바 성경은 잘 번역되었긴 했지만 성공회 주교들은 이들의 역본을 사용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기에, 따로 비숍 성경을 내놓았으나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카톨릭과 청교도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 정권의 안정을 제일 목표로 추구한 제임스왕은 청교도들에게 보편적 상식으로 자리잡은 칼빈의 저항권 사상이 확산되는 것을 매우 심하게 경계했다. 청교도 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고서 1603년 왕위에 오른 제임스왕에게, 정치적 기반세력인 청교도들이 종교개혁에 대한 그들의 강력한 열망과 기대를 담은 천인청원으로 제임스왕을 강하게 압박하자 제임스왕은 과격한 종교개혁을 요구하는 청교도들을 심각한 정치적 위협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좀더 나중에 가서 1605년 카톨릭 신자 가이포크스의 의사당 테러모의 사건으로 청교도들의 종교개혁에 대한 요구가 정점에 달하자, 청교도 출신이었던 제임스 1세는 토사구팽을 실행하여 자신의 지지기반이었던 청교도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메이플라워호의 출항으로 대표되는 청교도들의 본격적인 망명이 시작되고, 신대륙에서는 미국을 건국하는 발판이 준비되기 시작한다.
1604년, 청교도 측에 속한 레이놀즈가 왕에게 모든 교회가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역본을 번역하자고 제안을 하였고, 1603년에 일어난 천인청원을 계기로, 저항권 교리를 전제한 채 확실한 종교개혁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청교도 세력을 왕권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확신한 제임스왕은, 청교도들의 저항권에 대한 교리적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저항권 사상을 대중에게까지 확산시키고 있는 제네바 성경을 눈에 가시로 여기던 차에 이를 흔쾌히 수락하였다. 그리하여 청교도 측과 성공회 측 모두 연합해서 번역을 주도하게 하였다. 즉 킹 제임스 성경의 출판은 후에 있을 제임스 국왕의 대대적인 청교도 박해에 대한 전주곡으로 볼 수 있다.
본디 영국은 헨리 8세 이래 종교적으로는 성공회라는 독자적 노선을 걸었으나, 성공회가 어디까지나 신학적 개혁주의의 철저한 추구보다는 교황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하고자 만든 교파이니 만큼, 가톨릭과 청교도 등 다른 종파들의 성격들도 어느 정도 섞였다. 번역진도 가톨릭 성향 고교회파와 청교도 성향 저교회파가 모두 망라되었다. 그래서 본 성경을 제작할 때도 서로 다른 종파들의 의견을 상당히 반영하여 모든 종파들로부터 그럭저럭 인정받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제임스 1세는 조지 뷰캐넌이라는 칼빈주의 신학자 아래서 공부해왔기 때문에 신학적 논쟁에 참여할 만한 머리가 있었다. 그리고 제임스 1세 본인도 강경 칼뱅주의 교회보다는 주교제 기반의 온건 칼뱅주의 교회(성공회 39개 신조를 참조할 것)를 지향하던 사람이라 청교도들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교권주의의 성향도 있었다. 다만 이것도 이들이 왕권에 대항하지 못하도록 온건한 개혁을 위해 조치했던 일이기에, 사실상 지혜로운 대처라고 영국 역사가들은 말한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국왕이 제작을 지원해 제작이 원활하게 진행된 관계로 보급이 원활했고, 나중에 대영제국이 전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두면서 그 경로로 본 성경까지 같이 퍼졌다. 그러다 보니 영어권 개신교 신자들에게 널리 퍼졌고 영어로 번역된 성경 중 가장 성공한 번역본이 되었다. 당시엔 군주제에 관한 성경 해석의 문제(왕당파 vs 공화파)가 청교도와 성공회 사이에서 일어나 영국 사회를 어지럽게 하였는데 킹 제임스 성경은 당시 성공회 주류와 비주류인 청교도 사이의 갈등을 봉합했다. 또 엘리트 귀족 계층과 민중을 모두 만족하게 한 성공적인 텍스트다.
킹 제임스 성경은 3개 그룹으로 나뉘어 번역 작업을 하였다. 히브리어 마소라 사본과 구 라틴역 성경, 그 외 기존하던 영역 사본 등을 바탕으로 번역하였다.
• 웨스트민스터 그룹: 창세기~열왕기하, 로마서~유다서 번역
• 케임브리지 그룹: 역대기상~아가서 및 구약 외경 번역
• 옥스퍼드 그룹: 이사야~말라기, 사복음서, 사도행전, 요한의 묵시록 번역
오탈자 및 교정 작업 및 점검은 토마스 빌슨과 마일즈 스미스에 의해서 진행되었으며, 왕에게 보내는 헌정서는 밴크롭트가 작성하였다. 마침내 1611년에 번역이 완료되었고, 1612년 로마체로 인쇄되어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 1611년에 출간된 역본은 기독교와 문학계의 고전이 되었다. 그러나 이 성경이 고전으로 완전히 인정받고 영어권의 언어 인프라를 형성하는 데 약 80년이 소요되었다.
킹 제임스 성경이 영어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대중들의 일상 영어 속으로 킹 제임스 성경의 표현이 침투해 들어갔기에 영어권 대중의 언어와 문화를 형성하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흡사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모두 공유하는 일종의 DNA처럼 '영어권 세계의 공통규범'이 되었다.'''[12] 그 이후 계속 교정 작업이 있었으며 크게 1629년, 1638년, 1762년, 1769년에 4차례 교정을 걸쳤다. 실제로는 중간중간에도 자잘한 교정 작업은 있었다는 말도 있으며, 1769년판 이후로도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 측에서 아주 사소한 교정을 몇 차례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소한 수정은 구두점, 대문자 처리에 관한 차이점 정도이다. 수정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으나, ESV 성경처럼 2016년판을 찍을 때[13] 다른 원어 본문을 사용해 수정하는 사례를 생각하면 킹제임스 성경의 수정은 오히려 철자 교정에 가깝기에 아무것도 아니다.
현재 영어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버전은 1762년판[14], 또는 1769년판[15]이나[16], 1611년판도 일부 사용된다고 한다.[17] 또한 1611년판과 1769년판 모두 저작권(판권) 문제가 영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는 퍼블릭 도메인으로, 누구든지 자유롭게 인용, 복제, 출판이 가능하다.[18][19] 그러나 영국에서는 Crown Copyright가 걸린 관계로 아무나 킹 제임스 성경을 인쇄/출판 및 판매할 수 없다. 옥스퍼드 대학교 출판부와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가 영국 왕실을 대신하여 저작권 계약을 대행하고[20], King's Printer(현재는 케임브리지대 출판부로 지정)가 어느 출판사인가에 상관없이 독자적인 출판권을 가졌다고 한다.
1769년판과 1611년판의 차이점은 1769년판이 1611년판보다 특히 철자 면에서 현대 영어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21] 그리고 1611년판, 1762, 1769년판 간의 차이는 문법, 철자의 차이가 주를 이루고, 내용적 차이는 별로 없다. 그래서 오늘날 발행되는 대부분의 킹 제임스 성경책들은 1762년판 또는 1769년판 텍스트를 따른다. 1769년판은 기본적으로 철자는 현대 영어와 별반 차이가 없으나 public과 같은 일부 단어에서 차이(publick)가 있긴 있고, 일부 인명과 지명의 철자가 일부 현대 번역본과도 차이가 있다. 시중에 나와있는 1611년판 텍스트 판본들 중에 1611년 초판을 그대로 스캔 떠서 찍은 영인본은 흔하지 않고, 초판의 흑자체 글씨체를 로만(Roman) 세리프(Serif) 서체로 바꾼 복각판들이 대부분이다. 흑자체가 현대인에게는 가독성이 극악한 글꼴이라, 로만 세리프체로 복각판을 간행하는 것은 현대인 독자를 위한 당연한 선택이다. 여러모로 고딕체는 읽기 고달프다.
1900년대에 이르러 킹 제임스 성경은 영어권 개신교계의 고전으로서 자리를 확고히 굳혔다. 북아메리카의 몇몇 개신교 그룹은 킹 제임스 성경을 영어 성경의 결정판으로 여겨 다른 역본을 허용하지 않았다. 킹 제임스 성경의 본문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처럼 고전으로서 위엄과 신성함을 갖추었기 때문에 본문을 개정할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1982년 KJV를 현대 영어식으로 바꾼 NKJV도 나왔다. KJV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지만 고어체 때문에 오리지널 KJV을 꺼리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성경이다. 오늘날에도 킹 제임스 성경의 위상은 매우 높다. 킹 제임스 성경 이후에도 NIV, NRSV, NAB, NLT, ESV 등 많은 성경 번역본이 나왔지만 KJV의 위상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킹 제임스 성경 특유의 문체를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