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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역술인(?) 이철용

2020.05.30



 역술인(?) 이철용


 특이한 이력의 역술인 중 이철용 이라는 이가 있다. 이씨는 태어난지 6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 가셨고 어머니 외에는 이렇다할 친 인척도 없었는데 어릴때 왼쪽 다리가 결핵균에 감염되어 절름발이가 되었다. 똥구멍 찢어질 정도로 가난속에 자라며 어린시절 시장통을 전전하며 리어카를 밀어 주거나 구걸하며 겨우 연명하는 세월을 보냈다. 도둑질을 하다 잡혀 소년원을 다녀 오기도 했고 학교는 초등학교 2학년 다니다 말았다. 친구들이 절름발이 흉내를 내며 ‘찐따’ ‘뿌빠빠룰라’ 하는 식으로 부르자 흉기로 친구들을 찌르기도 해서 어릴때부터 ‘독종’ 으로 소문났고 왕따가 되어 학교를 다닐수도 없었다. 열살무렵 에는 19살 동네 청년이 절름발이 흉내를 내자 집에 뛰어 들어가 부억칼 을 들고 나와 동네청년 등을 질러 파출소에 잡혀간 일도 있었다.

머리가 굵어서는 청량리 588에서 창녀 기둥서방 생활을 하며 엊혀 살기도 했다. 그러던중 친구들과 함께 금은방을 털었고 발각되어 도주중 검거되어 꽤나 긴 교도소 생활도 했다. 그후 빈민구제 사업을 하던 한 목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에게 감화 되어 빈민구제 운동을 하게 된다. 이씨가 우연히 유명하게 된것은 1978년3월 ‘여의도 부활절 예배 사건’ 으로 지명수배 되어 도주중일 때다. 잡혀 죽으면 자식들 에게 남겨줄 것이 하나도 없겠다는 생각에 어려서 부터 겪었던 자신과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대학노트에 편지 형식으로 써내려 갔고 병역법 위반으로 도주중 이던 대학생 들이 이씨와 인연이 되서 그들이 이씨의 노트를 정리해 출판사로 보냈고 이를 우연히 보게된 표절 문학의 대가 황석영씨가 자신이 쓴것처럼 자신의 이름으로 ‘어둠의 자식들’ 이란 제목으로 출판해 버렸다. 

이게 크게히트 해서 예상외로 많이 팔렸고 원 저자인 이씨를 출판사 에서 찾아가 “한편 더 써달라” 고 요청해 ‘꼬방동네 사람들’ 이란 제목의 소설을 이씨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게 된다. 20대 때에 큰 패싸움을 하여 지명수배가 되자 강원도 정선에 숨어서 공사판, 탄광 노동자로 지냈을때 노동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74년 지금은 고인 (故人) 이된 허병석 목사님을 운명적으로 만나서 그에게 감화 되어 빈민 운동을 함께하게 된다. 동대문 근방에서 구두닦기를 하던 아이들 100여명을 모아 은성학원 이란 야학을 열었는데 간첩이라는 소문이 나서 1975년도에 서대문 대공 분실에 끌려가 지독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이런저런 일로 고초를 겪으며 지내다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문익환 목사와 이문영 고려대 교수가 강력 추천하여 DJ의 평민당에 입당 당시 도봉 을, 구에서 평민당 소속으로 출마 하게된다. 바닥 인생에서 일약 국회 의원이 된 그는 장애인과 노인 복지에 힘을써 이와 관련되 여러법을 통과 시켰는데 장애인 고용 촉진법이 그중 대표적이다. 

 국정 감사가 열렸을때 전두환 청문회장 에서 전두환 에게 “살인마” 라고 소리 쳤는데 청문회가 끝나고 DJ 가 이씨에게 왜 그랬냐고 노발대발 했는바, 이씨가 안경을 벗어 탁자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 놓으며 DJ 를 노려보면서 “살인마 에게 살인마 라고 했는데 뭐가 잘못된 겁니까?” 라고 큰 소리로 대들어 주변을 아연실색 하게 했는바, 다음선거 때 역시나 공천을 받지 못했다. ( DJ가 화를 냈던 것은 아마도 어떤 정치적 수순이 있는데 이를 모르는 이씨가 차질을 빗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이후 몇번이나 무소속 으로 출마 했지만 역부족 이였고 이때 벌어놓은 돈 다, 까먹고 빚까지 지게된다. 

 이후, 생활고를 벗으려 포르노 소설도 써 보았고 야한 D등급 에로영화 까지 손대어 보았으나 모두 실패하고 만다. 이씨는 70년도에 빈민운동을 할때 부터 사주팔자에 관심이 많아 몇번이나 공부를 해 보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자신이 장애인이 될 팔자인지 알수가 없었다 한다. 그러던중 국회의원이 되었고 인맥을 동원해 사주 데이터를 1만명 이상 연구해서 사주보는 문리가 터졌다고 한다. 오랜 방황을 거친뒤 먹고살기 위해 통 (通) 이라는 철학원 간판을 내걸고 철학원 영업을 시작 했는데 전직 국회의원이 철학원을 open 한다 하니까 언론 에서도 흥미를 갖고 찾아와 취재 해갔고 신문과 잡지 여러곳에 소개가 되었다. 호구지책을 위해 전직 국회의원 이 이른바 ‘쪽팔리는것 참고’ 철학원을 open 했는데 의외의 관심을 받아 유명인사가 되어 버렸다. 예전 정치를 같이하던 정치인들과 경제인들 심지어 스님과 목사님들 까지 찾아와 이씨에게 상담을 의뢰하곤 했다 한다. 

 교회장로 이기도한 그에게 한 기자가 “교회 장로인데 점집 차렸다고 목사님들이 싫어하지 않았나요?” 라고묻자 “사주는 통계학 이고 행동과학일 뿐입니다” 라고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씨가 아무리 역술을 나름 공부 했다고는 하나 필자와 같은 전문 역술인이 보기에는 팔자를 해석 하는게 너무유치한 수준 이였다. 방송에 나와 00년도 우리나라 국운 운운하며 떠드는 것을보고 실소를 짓기도 했다. “오래 버티지 못할 겁니다” 라는 당시 필자의 진단은 어긋나지 않았다. 실력이 없으니 슬슬 한가해 지고 파리만 날리게 되자 이씨는 또한번 엉뚱한 일을 벌린다. 이씨는 요즘 서울 통의동 사무실에서 기타와 노래연습에 열중인데 그의꿈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마을 어르신들을 모아 공연을 하며 건강문제를 주로 다룰것 이라고 하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아마도 예전에 써커스도 하고 무술 시연도 펼치며 약을팔던 약장수에 관심이 있는듯 했다. 아무튼 평생 의외의 삶을 살아온 이철용씨에게 앞으로 유랑가수 로서 잘될것을 기원한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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