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도 살인이다
필자에게 상담 시 “원치 않는 아기를 임신 했는데 지워야 할까요?”라던가 “아기를 지금 낳아 키울 형편이 아닌데 지워야 할까요?”라고 묻는 이들이 가끔 있다. 이런 소리에 필자는 늘 펄쩍 뛰며 “태아도 사람입니다! 살인을 해도 되는가를 묻는 겁니다!”라고 하며 늘 적극 말린다. 작금의 성 개방풍조로 인해 사람들이 낙태를 너무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피치 못할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어쩔 수 없이 낙태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스스로의 성적인 욕망을 조절하지 못해 생겨난 아기인데도 별다른 양심의 가책도 없이 아기를 지워 버리는 일이 너무도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하늘의 뜻에 의해 찾아오는 인연을 거부하고 단지 나 자신의 편리를 위해 ‘나’에게 의탁된 생명을 지워버리는 것은 큰 죄악을 범하는 짓이다. 태아도 엄연한 의탁된 사람이다. 그 생명을 끊는 낙태의 결과는 생각 이상으로 무겁다. 이와 관련된 사연을 두 가지 들어보겠다. (이것은 정말 틀림없는 실화이다.)
충남 서산시 해미면에 남편을 일찍 여의고 두 딸과 아들 하나를 키우며 사는 과부가 있었다. 모아 놓은 돈도 없고 물려받은 논‧밭도 없었던 과부는 세 자녀를 키우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해야 했고 우연히 인연이 닿아 해미면 소재지의 한 산부인과에서 청소부로 일하게 되었다. 모두가 꺼려하는 산부인과 청소부 일이지만 다른 곳 보다는 임금을 조금 더 받을 수 있어 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일하게 되었다. 조그만 산부인과였는데 그 지역 사람들 보다는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낙태수술을 받으러 주로 왔다. 사람들의 이목 때문인 것 같았다. 낙태수술은 하루 10여건에 이르렀고 저녁마다 과부는 그 핏덩이들을 치워야 했다. 징그럽고 싫은 일이였지만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었다. 다만 징그럽다는 생각만 했을 뿐 특별한 생각이 없이 그 일을 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과부의 눈앞에 핏덩이가 아니라 사람의 형체를 온전히 갖추고 있는 태아가 쓰레기통에 던져져 있었다.
평소에 치우던 핏덩이들과는 달리 온전한 사람형태의 태아 모습에 충격을 받은 과부는 그 태아를 다른 핏덩이들처럼 다룰 수가 없어 자기 돈으로 하얀 천을 구입하여 그 태아를 돌돌 말아 싼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주변의 산기슭에 정성껏 묻어 주었다. 그날 밤 과부는 꿈을 꾸었는데 발가벗은 아기 수 십 명이 찾아와서 매달려 울면서 호소를 한다. “아줌마, 나도 그렇게 해줘! 나도 버리지 말고 천에 싸서 묻어줘!” 밤새도록 발가벗은 아이들에게 시달리다 깨어난 과부는 핏덩이들을 버리는 산부인과 청소부일이 인간으로서는 할 짓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날자로 산부인과 청소 일을 그만두고 말았다 한다.
또 하나의 이야기다. 예전 우리나라에 수도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지금의 울산시 중구 우정동 북쪽 마을에 마을 공동의 큰 우물이 있었다. 이 마을에는 당시 48세의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의 막내 시누이가 시집도 가기 전 일찍 죽고 말았다. 죽은 지 몇 년 만에 꿈속에 막내시누이가 나타나 반가운 얼굴로 “언니야! 나하고 같지 살자 언니야! 꼭 그렇게 하자!”라고 했다. 이 꿈을 꾼 지 얼마 안 되어 여인은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여인은 이 일로 큰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나이 50이 다 되어 아기를 낳아야 하다니...’ 동네 사람들에게 창피스럽기도 하고 이 나이에 아이를 키울 생각을 하니 자신도 없고 해서 이런저런 걱정에 집안 어른들과 의논을 하게 되었다. “너의 고충은 알겠지만 꿈이 심상치 않으니 힘들어도 아이를 지워버리지 말고 낳아서 키우도록 하려므나!” 어른들은 이렇게 충고했고 친구들에게 의논하니 “니 나이가 몇 살인데 창피하지도 않냐? 나이 오십이 다 되 며느리에 손자까지 있는데 무슨 그 나이에 아기냐?”라고 하며 낙태할 것을 권유했다.
여인은 한 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나이에 낙태수술이 힘들었던지 회복이 쉽지 않아 줄 곧 누워 있다가 일주일가량 지났을 무렵 몸이 조금 나아져서 물을 길기위해 새벽녘에 동네 우물로 갔다. 그 우물은 평소 때는 뚜껑을 닫아 두었다가 물을 퍼 올릴 때만 뚜껑을 열도록 되어있었다. 여인이 물을 길기위해 우물 뚜껑을 여느 순간 머리를 산발하고 피를 뚝뚝 흘리는 모습의 시누이가 우물 속에서 솟아올랐다. 그리고 당장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분노에 찬 음성으로 “요년! 내가 그렇게 같이 살자고 부탁을 했는데도 나를 죽여! 이 나쁜 년!” 여인은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여인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집안에서는 감당하지 못할 재앙이 연이어 터졌다. 불자였던 여인은 아침‧저녁으로 울산 해남사 법당에 가서 참회를 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렇게 3년간 정성을 보이자 그제서 몸의 병도 나았고 집안의 풍파도 가라앉았다 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낙태가 가장 많이 행해지는 세계1위의 국가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다. 오래전 한 연구 기관이 조사 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한해 행해지는 낙태의 건수가 150만 건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월등히 많은 미국이 150만 건, 일본이 50만 건, 프랑스가 17만 건, 스웨덴 3만 건에 비하면 동양 귀퉁이의 반도 반쪽에서 자행되고 있는 생명살상의 참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낙태 또는 임신중절은 인위적인 유산행위를 말한다. 임신의 지속이 산모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거나 강간 또는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일 경우 행해지는 유산행위를 치료적 유산이라 하고 산모의 편리에 의해 시행되는 유산행위를 선택적 유산이라 한다. 우리나라 형법상 선택적 유산행위는 엄연한 불법이지만 사문화 된지 오래다.
태아는 엄연한 사람이다. 인간의 생명은 잉태된 그때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 출산 시부터 사람인 것은 아니다. 인간의 영혼은 난자와 정자가 합쳐지는 입태(入胎)의 순간 들어온다. 낙태 영혼과 모친의 인연은 풀지 못한 전생의 입연 즉 업보라 본다. 자기의 업이 두터워 한 생명체로 태어나지 못한 낙태영혼은 구천을 떠돌며 자신을 죽인 엄마를 원망한다. 낙태를 시킨 업은 또 다른 업으로 기억되어 반드시 과보(果報)를 받게되는 것이다. 태아도 사람이다. 사람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
- 前記(전기)한 두 사례는 필자의 지인이신 우룡 큰스님이 직접 구술한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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