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공부
필자의 도반인 K군은 매우 명석한 두뇌를 지닌이였다. 이 친구는 특이한 이력을 지닌이였는바 일찍이 불가에 귀의하여 속세와는 연을 끊고 수도에 열중하던 스님이었다. 20대 초에 이루어질 수 없는 동성동본(同姓同本)의 여인을 불같이 사랑하는 열병을 앓다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머리를 깎고 절로 들어간 터였다. 실연 후 K군은 자살시도도 여러 번 했으나 실패하고 이제는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속에서 산행을 결심한 것이다. 절에 틀어 박혀 죽을 각오로 참선수행에 열과 성을 다하였다. 무서운 열정과 뛰어난 두뇌는 K군의 공부를 빠르게 진척시켜 촉망받는 불제자가 되었다. K군의 불가스승이신 선사께서는 마침 역학에도 깊은 조예를 지닌 분이여서 K군은 입산 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역학공부도 지도 받을 수 있었다.
참선 수행과 역학공부를 병행하면서 깨달은 것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랑했던 그 여인과의 이별이라는 인연도 다 예정되어 있었던 일이고, 자신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된 인연도 예정되어 있던 일이라는 점이었다. 자신의 참 인생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이다. 한 개인의 빈부귀천과 길흉화복은 이미 태어나는 순간 결정되어져 있고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자 자신이 결국 끝까지 스님으로서 수행 정진할 운명이 아님을 알게 된다. 결국 속세로 돌아온다. 그 후 혼자서 역학공부에 매진하다 스승님의 고명을 들고 흠모하던 차 스승님 친구분과 인연이 닿아 이분의 추천으로 스승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런데 K군은 호기심이 지나치게 많아 정도(正道)보다는 지름길(short cut) 을 늘 찾는 듯했고 수련에 있어서도 자신의 깨달음보다는 신기한 이적을 보여 남들이 감탄하고 신기해하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 신비한 능력을 개발하는 산차(山借)를 집중적으로 수련하였다. 역학 공부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공부과정을 밟는 것이 아니라 비결서 등을 어떻게 어렵게 구해와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곤 했다. 도반 중엔 이런 성향을 보인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허나 나중에 증명된 바이지만 이런 이들은 모두 헛공부를 한 것에 불과하였다. K군의 성향과 비슷한 R군 같은 경우는 초능력에 관심이 많아 염력(念力)으로 촛불끄기, 염력으로 종이배 좌지우지 뜻대로 움직이기, 숟가락 구부리기 등에 열중했는데 스승님의 몇 차례 질책과 경고에도 불구 태도를 바꾸지 않다가 끝내 파문당하고 이런저런 곳을 기웃거리다가 모든 것에 실패하고 홈리스가 되었는바 숟가락 구부리는 재주를 보이고 동냥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K군 역시 역학 비법책에 열중하다 여러 차례 질책과 경고를 받았다. 예를 들면 어떤 여성분의 사주를 분석한 뒤 그 여자분의 은밀한 부분에 음모가 없다는 것을 맞추기도 했는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어떤 여자분이 51년 음력 8월 22일 辰時生이여서 사주팔자가 辛卯年 丁酉月 乙丑日 庚辰時이면 酉月에 핀 乙木이라는 여린 나무가 강한 金기운에 강하게 해(害)를 당하고 있는바 이런 사주를 지닌이는 신체에 있어 乙木은 털에 해당되니 이 팔자는 틀림없이 무모증(無毛症)이라는 식이었다. 헌데 약간은 터무니없는 이런 기본적인 설명 외에 자신만의 어떤 비법이 있는지 몰라도 백발백중이었고 이런 지적을 받은 여자분들이 민망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며 희희닥거렸다. 아주 경망스러운 짓이었다.
이 외에 어떤이의 사주팔자를 보고 그이의 외할머니의 성과 어머니의 성 그 배우자의 띠까지 척척 맞추어냈다. 그리고 사주팔자를 보는 사람의 직업도 척척 집어냈는바 거의 틀림이 없었다. 처음에는 도반들도 이런 재주에 놀라기도 했으나 나중에 스승님의 설명을 듣고 난 뒤에는 그것이 별게 아닌 잔재주임을 알았다. 스승님의 경우에도 젊은 시절 묶어놓은 볏단의 이삭이 정확히 몇 개인지 까지도 맞추어내는 신기를 보이기도 하셨고 여러 가지 깜짝놀랄만한 능력을 보이기도 하셨지만 그것은 젊은 시절의 치기에 불과했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었다. 아무튼 K군은 이런 잔재주를 개발하는데 주력하는 듯했다. 이런 식이다. 팔자분석을 의뢰한 사람을 앞에 두고 “당신 할머니 성이 O이지?” “당신 어머니 성이 O지?” “당신 직업이 OO지?” “당신 남편이 오늘 흰 양복을 입고 나갔지?” 이런 짓하다 스승님께 걸려서 무척이나 혼이 나곤했다.
“야! 이 미친놈아!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왜 맨날 헛지랄이여? 어느 바보 천치가 지 어머니 성을 모르고 할매 성을 모를까? 자기 직업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자기 남편이 오늘 아침 무슨 옷을 입고 나갔는지 모르는 부인네가 있을까? 왜? 그 사람들이 자기 어머니 할머니 성 모를까봐 알려주는겨? 지 직업이 뭔지 몰러 궁금할까봐 직업까지 친절히 알려주는겨? 쓸데없는 아가리질 하지 말고 그이들에게 필요한 말을 해줘야 할 것 아녀! 이 미친놈아. 밥 처먹고 할 지랄이 없어 맨날 헛지랄이여? 공부를 제대로 하란말여 공부를!” 스승님의 이런 질책도 별 소용이 없는듯했다. K군은 쭉 그 길로 내달아 결국 가는 길이 갈리고 말았다.
易을 공부함이란 자신을 수양하기 위해서이다. 易을 공부하며 호흡 수련이나 명상을 함께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易이란 우주 만물의 기본 원리인 음양오행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 원리이다. 易의 공부를 통하여 사람의 도리를 깨치고 자기 자신의 그릇크기를 알아 자기 분수에 맞게 자중하는 선비의 자세를 익히는 것이 易을 공부하는 궁극의 目的이다. 필자의 주 전공인 사주명리학과 주역은 이런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하여 연구 발전되어왔다. 이 음양오행의 기본원리를 기초로 하여 인간의 몸을 진맥하면 한의학이 되고 이 원리로 인간의 운명을 진맥하면 易學이요, 이 원리로 땅을 진맥하면 풍수지리가 되는 것이다. 즉 天地人사상이다.
운명은 하늘의 뜻에 달렸고 사람의 몸은 자연에 따르며 그 사람이 딛고 살아가는 땅은 그 기운으로 사람이 살 수 있는 기운을 뿜어내는 것이다. 따라서 역학, 한의학, 풍수는 한 학문인 것이다. 역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운을 예측하는 점술의 기능이 파생된 것이지 그것이 주(主)가 아닌 것이다. 공부의 목적은 K군이 비책을 찾아 헤메이며 그토록 구하고자 했던 그런 잔기술이 아닌 것이다. 결국 K군이나 R군 같은이들은 잘못된 공부로 시간만 낭비하고 자신을 망치게 된 것이다. 잘못된 공부를 하느니 차라리 아예 공부를 안하는게 자신이나 세상을 위해서도 좋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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