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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易術人의 호칭

2020.11.18



                      易術人의  호칭 


 역술가(易術家)는 예전에 술객, 술사, 방술가, 음양가 등등의 명칭으로 불리어왔는데 이 말은 식자층에서나 쓰던 대우해 주던 말이고 일반 대중들은 대부분 점쟁이라고 불렀고 현재도 그렇게 부르는 이가 많다. 예전에 한의사를 침쟁이로 환경미화원을 청소부로, 부동산업자를 복덕방쟁이, 정육업자를 푸주간쟁이로 비하하여 불렀던 바와 다르지 않다. 한의사가 자신이 침쟁이로 불리는 것을 싫어하듯 역술가도 자신이 무당취급을 받는 점쟁이로 불리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아무튼 점쟁이로 불리우든 역술선생님 또는 도사님으로 불리우든 이는 전적으로 자신의 실력에 달려있다. 


재벌그룹총수나 정치인들도 한 두명 쯤의 역술인을 곁에두고 자문을 받는게 현실인데 이렇게 돈 많고 권력있는 이들도 이들에게 자문을 구할 때는 선생님, 도사님하며 존중을 해준다. 결국 실력이 있으면 학식 높고 선견지명이 있는 선생님 소리를 듣고 실력이 없어 맨날 헛소리만 해대면 엉터리 점쟁이 소리를 듣게되니 다 자기하기 나름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특히나 이런 역술인들의 활약이 뛰어났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자신의 학식과 재능을 파는 이들이 많았다. 실력이 뛰어나면 일약 한나라의 재상이 되기도 하고 실력이 없거나 실력이 있어도 운이 없으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유랑거지처럼 방랑객 신세로 삶을 마치기도 했다. 실력이 뛰어나지만 운이없어 결국 평생 중용되지 못한 대표적인물이 공자이다. 


춘추전국시대에 모든 제후들 중에 최초로 패업을 이룩한 이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제환공(齊桓公)이다. 이때 모든 정무를 맞고 있던 정승이 천문, 지리, 음양술에 능통했던 관중(管仲)이라는 최대의 걸출한 인물이다. 제환공은 관중의 의견에 따라 인류역사상 최초의 대학교로 할 수 있는 학교를 세우는데 역사학자들은 이 학교를 직하학궁(稷下學宮)이라 부른다. 최초의 대학교가 세워지자 전국에 공부깨나 한다는 학구열 높은 학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는데 이 학교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나 하면 그 유명한 순자(荀子 - 전두환 전대통령의 마누라인 순자가 절대아님)는 그 당시 이미 초나라에서 난등령이라는 고위벼슬까지 지낸 사람이지만 나이 50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학교로 유학 와서 음양학을 배웠다. 


이 직하학파에서 공부한 학자들은 이곳에서 제나라 역사와 음양오행술수를 배움으로서 음양가(陰陽家), 유가(儒家), 묵가(墨家), 명가(名家), 도가(道家), 법가(法家) 등 이른바 大家의 학자들을 배출했는데 이들이 뿔뿔이 이 나라 저 나라로 흩어져 각 나라의 국정전반에 걸쳐 조언‧자문함으로써 각 나라의 정치‧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직하학파의 근본논리는 음양오행론의 집대성으로 창시자인 관자(管子 - 관중을 뜻한)는 이르기를 ‘음양이란 천지만물의 기본적인 도리(道理)로 음양(陰陽)은 천지의 대리(天地 之 大理)요, 사시(四時)는 음양의 대경(陰陽 之 大經)이다.’ 라고 설파했다. 그는 또 ‘음양의 기운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 천지만물의 근본을 깨닫게 되고 따라서 국정을 잘 다스리게 된다’라는 이론을 세웠는데 그를 따르는 학파에서 만든 책이 오늘날까지도 전해지는 <관자(管子)>라는 책이다. 


관중은 기원전 726년 (丙辰年)에 안휘성에서 태어나 BC646년(丙寅年) 71세로 타계했는바, 공자와 버금가다 할 정도의 인물이건만 관중의 나이 57세쯤에 태어난 공자가 훗날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관자가 그 뛰어난 학식과 재주를 가지고 주천자를 돕지 않고 제후국인 환공(桓公)을 도와 패업을 일으켰으니 관중은 소인이다’라고 폄하하는 바람에 역사상 큰 빛을 보지못했고 조선에서는 기피하는 장자의 큰 칭송을 받은 인물이기에 조선조에서는 언급조차 기피한 억울함을 당한 인물이다. 관중의 본명은 이오(夷吾) 자는 중(仲)이며 안휘성 영상현 사람이다. 그는 40여년간 제환공을 도와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변두리 약소국에 불과하던 제나라의 정치제도와 행정체계를 훌륭히 세워 제나라를 부국 강병케하고 폐업을 달성케함으로써 다른 제후나라들이 와서 무릎 꿇고 복종케 하였다. 


현재 오늘날 전 세계 국가들이 쓰는 행정제도의 근원은 사실상 관중이 창제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하학파에서 배출된 유명인물로는 맹자(孟子) 순경(荀卿) -순자- 공손고, 노중연 등 유가인물과 송견, 전파, 윤문 등의 명가인물 신도 법가인물 순우곤, 전병, 접여, 환연 등 음양가 인물 등이 있다. 이들은 학교졸업 후 모두 유세객이 되었는데 요즈음으로 치면 전국의 유명강사나 유명정치가 쯤으로 보면 되는데 이들로 인해 음양오행설이 일반대중에게도 전파되었다. 당시 음양오행의 학설이란 요즈음의 최첨단 과학기술이나 고등수학의 신이론과 같은 고차원적 학문이었으므로 음양오행에 능통한 학자는 세상만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박물군자(博物君子) 대우를 받았다. 


이후 진시황의 천하통일로 인해 계급사회가 붕괴되면서 귀족정치가 파괴되었고 학자들은 평민속으로 흘러들어가 대중에게 학문을 가르키는 교수가 되거나 음양오행법을 기초로 하여 매복(賣卜-돈받고 점 쳐주는 것)을 함으로써 방사(方士-지방의 선비 또는 신비한 술수의 방법론을 아는 선비라는 뜻) 또는 술사(術士)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그 중에서도 음양가(陰陽家)는 술사 중에서도 특별히 선발된 부류였기에 큰 집이라는 뜻의 가(家)라는 영예로운 호칭이 붙었다. 이들은 우주의 섭리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규명하고 우주와 인간은 분리될 수 없는 하나로 보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에 도달하였으며 인간의 운명과 지켜야 할 도덕, 인의(仁義)사상까지도 가르치는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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