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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한국에 가서 죽고 싶어요!

2020.11.23



   

                  한국에 가서 죽고 싶어요!  


 首丘初心(수구초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누구나 인생의 황혼기에는 고향을 그리워한다. 首丘初心 (수구초심)이라는 말 자체가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을 향해 죽는다’는 말이듯이 늙어 갈수록 고향이 그리워 지는 것을 생래적으로 타고난 본능이다. 전에 한 다큐멘터리 드라마 에서 본 장면이 생각난다. 사자 무리에서 생활 하던 늙은 사자가 이제는 더 이상 젊은 무리를 따라 다닐 기력이 없자 무리가 가는 반대 방향으로 머리를 돌려 터벅터벅 걸어가는 장면인데 늙은 사자가 도착한 곳에는 놀랍게도 사자 해골이 여기저기 놓여져 있었다. 늙은 사자들의 공동묘지였던 것이다. 이어서 나온 장면은 코끼리 떼였는데 역시 늙은 코끼리가 기력이 다 하자 혼자서 멀고 먼 여행 끝에 도착한 곳은 상아 뼈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코끼리 무덤이였다. 수렵 꾼들이 이런 코끼리 무덤을 만나면 여러 개의 상아를 얻을 수 있어 로또에 당첨 된 듯이 횡재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필자가 상담을 하다 보면 한국을 그리워하며 가고 싶은데도 경제적인 문제, 신분상 문제, 건강 문제, 자녀교육 문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그리움만 쌓여가는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 기억에 남은 한 분의 이야기가 있어 여기에 소개 하고자 한다.


필자가 박 할머니를 만난 것은 1년여 전쯤 어느 가을 날 이였다. 흰색 무명 저고리에 검은 색 치마를 곱게 차려 입으신 70대 중반으로 보이시는 할머니께서 필자를 방문 하셨다. 필자의 칼럼을 보고 한 번 가 봐야지 가 봐야지 하면서도 엄두가 안나 용기를 내지 못하시다가 5년 여 만에 결심을 하고 찾았다고 하신다. 오렌지카운티에 사시는데 교통편도 없고 LA 지리는 더욱 더 깜깜하니 그럴 수 밖에 없었는데 같은 동네에 사시는 세련된 (?) 할머니가 친구가 되었는바 이분이 차도 있고 운전도 하고 다녀 넌지시 부탁을 해 보니 흔쾌히 승낙해서 기름값 대주고 점심 대접하는 조건으로 그야말로 어렵게어렵게 오셨다며 웃으신다. 그 정성에 필자는 무척이나 송구스럽고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분은 강원도 양양이 고향이신 분이다, 어릴 때 6.25 전쟁을 겪었고 그 와중에 부모님이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을 매우 증오하며 살았는데 어찌 어찌 하다 보니 미국에 와서 살고 있다고 하며 웃으셨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고아가 된 이분은 다행히도 큰 아버지가 동네 인근에서 알아주는 큰 부자여서 큰댁에 의탁해서 자랐다. 배는 주리지 않았지만 사촌 형제들처럼 학교는 다니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큰 집에서 식모 비슷한 처지로 지내게 된 것이다. 나이가 차서 가난한집 농사꾼집의 막내며느리가 되었는데 죽도록 일한 기억밖에 없다고 한다. 남편은 심성이 착한 사람이지만 매우 무뚝뚝해서 정은 별로 없었는데 아들 둘 낳고서 배를 탄다며 집을 나가 깜깜 무소식 이였다.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알아보니 큰 배 타고 외국 나갔다는 데 찾을 길이 없었고 지금까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 모른다 한다. 두 아이를 키우느라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했고 큰 아들이 미국에 이민 오는 바람에 따라오게 되었다 그 세월이 벌써 20여년이 다 되었다. 


아들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다 쫄딱 망해서 도망치듯 미국에 오게 되었고, 의지해 살던 아들이 없어져 살길이 막막하던 이분과 며느리 그리고 아이들 셋까지 다섯 식구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무작정 미국 땅을 밟았다 한다. 이곳에 와서도 아들 내외가 하는 T셔츠 가게를 도우면서 손주 셋 뒷바라지를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이 20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몇 년 전부터 고향이 너무도 그리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려고 눈을 감으면 맑게 흐르던 고향집 앞 양양천이 햇빛을 받아 은빛 모래처럼 눈부신 광경과 연어들의 움직임.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펼쳐지는 모래사장과 동해의 푸르른 바다, 이웃 고향 사람들. 시장의 풍경 등이 컬러 TV화면처럼 너무도 선명히 눈에 들어오고 어릴 때부터 살아 왔던 아주 소소한 일들까지 기억이 나며 잘못했던 일은 왜 그 때 그랬는지 후회가 되며 가슴이 아프고, 잘 했던 일은 좀 더 잘하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 혹시 이제 자신이 죽을 때가 되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하셨다. 


 이분이 필자를 찾은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과연 당신이 한국에 가서 죽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이분 하시는 말씀이 “이 나이에 세상살이 겪어 볼 만큼 다 겪어봐서 욕심도 없고 두려운 것도 없어요. 다만 한 가지 고향에 가서 죽을 수가 있느냐의 문제인데 선생님! 제가 한국 가서 죽을 수 있을까요? 한국에 가서 죽고 싶어요!” 였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인간은 귀소성이 있다’고 했다 미물인 짐승이나 새에게도 귀소성이 있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귀소성이 없겠는가?!


필자 왈 “ 여사님은 분명히 한국으로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3년 뒤쯤 역마성이 드니 아마도 그 때 귀국 하시게 될 겁니다. 고향에 가셔서 고향 공기 한 없이 들여 마시세요” 라고 하니, 이 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만 연발하시며 주름진 눈에 눈물이 글썽하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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