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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뜻하지 않은 모래시계 바람

2021.07.16

    



                    뜻하지 않은 모래시계 바람


 한나라당 대표위원을 지냈던 홍준표 씨는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한 사람이다. 최민수와 고현정이 주연으로 출연했던 이 드라마는 크게 히트하여 주인공 이었던 최민수가 사형장에서 마지막으로 검사역의 친구 박상원에게 물었던 “나 떨고 있니?” 라는 유행어까지 만들어 내며 긴 시간동안 인구에 희자 되었었다.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누군가 최민수 흉내를 내며 “나 떨고 있니?” 라고 물으면 “그래 개 떨듯이 떨고 있다. 이 개 자식아!” 라고 하며 웃음을 함께 터트리던 유행까지 있었다. 이 드라마로 인해 홍준표 씨는 일약스타 검사가 되었고 결국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 세계에 뛰어드는 급류를 타게 된다. 허나 이 모든 상황의 전개는 홍 검사와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진행된 일이다. 


어려운 환경의 어린 시절을 보낸 홍준표 씨가 처음 목표했던 것은 의사였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 문과가 아닌 이과를 선택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의과공부를 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공부도 6년씩이나 해야 하니 나라에서 학비도 대주고 밥도 먹여주는 육사를 가라” 고 권유해 육사 특차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그런데 얼마 후 아버지가 어떤 작은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서에서 당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꿔 검사가 되기로 결심한 뒤 고대 법대에 진학하게 된다. 고시 공부에 전력을 다했으나 계속 낙방하였고 졸업 후 5년이 지나서야 고시에 합격하게 된다. 고시 낭인시절 어머니와 함께 창원에 있는 용하다고 소문난 한 여성 역술인을 찾아갔는데 이때 이분이 홍준표 씨의 사주팔자를 본 뒤 홍준표 씨의 어머니는 지금부터 20년 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데리러 올 것이며, 홍준표 씨는 5년 뒤에나 합격 한다고 예언했다.(이때가 대학 졸업을 막한 후였다) 후에 이 예언은 그대로 실현된다. 


고시합격 후 연수원시절 어려운 신접살림에 지친 홍준표 씨는 변호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기로 결심하고 변호사 개업을 위해 사무실 임차료와 개업 준비금을 알아보니 2억 원 정도가 필요했기에 가난한 그는 변호사를 포기하고 청주지방 검찰청 검사로 부임한다. 초임검사 시절부터 자신의 성격대로 윗사람 말 잘 안 듣고 삐딱선을 타 법무부 장관 사돈을 구속하고 현직도지사 비리를 내사하는가 하면, 당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보안대 간부를 내사해 인사 조치를 당하게 하고 안기부 간부를 조사하는 등 간부들의 반대에 아랑곳 않고 미친놈처럼 날뛰었다. 이때 완전히 찍혀서 ‘또라이 검사’ 대우를 받고 늘 소외된다. 남부지청 근무시절 맡은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사건을 배당받고 수사했는바 전두환 대통령의 형이 개입된 사건이여서 수사할수록 고위직 관련자가 줄줄이 나왔다. 이때 위에서 내려오는 압력을 받고 수사를 포기하려다 열 받아서 지 성질을 못 이기고 기자에게 이 사건을 다 폭로한다.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고 공표된 사건을 어찌할 수 없어 대형사건으로 비화된다. 하지만 풋내기 4년차 검사가 이런 대형 사고를 칠 수는 없다고 본 윗선에선 그의 상관들만 곤욕을 치르게 했다한다. 한직인 형사부로 쫓겨나 할 일이 없어 관내에 있던 영등포 관광호텔 빠찡고장 을 드나들었는데 운이 나빠서였는지 계속 돈을 잃자 또 열 받았다. 그래서 자기가 빠찡고장 에서 썼던 10만원권 자기앞 수표에 표시를 해 두었다. 나중에 추적해 보기 위해서였는데 빠찡고를 하며 자세히 조사해보니 법정 시상률이 87%였는데 실제는 10%가 채 안되는 것을 보고 이를 갈았다. 깊이깊이 들어가 보니 정덕진 회장이라는 사람이 실소유주였는데 경찰, 검찰, 청와대 등 등 권력기관에 배후세력이 쫙 깔린 거물이었다. 허나 꼴통 홍 검사가 빠찡고 에서 잃은 돈이 벌써 300만원이 넘었기에 이 수표를 추적하여 결국 나중에 경찰고위간부, 검찰고위간부(이건개), 전 중정간부(엄삼탁), 청와대실세(박철언)등 등을 줄줄이 구속하게 된다. (*후에 빠찡고에서 잃은 돈 300만원은 수사를 위해 불가피하게 잃어주었다(?)고 변명을 대서 빠져나온다) 


슬롯머신 사건이 끝난 1993년 8월경 모래시계 김 PD와 송작가가 이를 드라마로 만든다고 홍씨의 검사실로 찾아왔다. 처음부터 홍검사는 이를 적극 반대했으나 방송국 쪽에서 끈질기게 검찰 수뇌부를 설득해 나갔고 검찰 고위층으로 부터 드라마에 협조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홍검사는 검찰 선배들을 들이받아 검찰조직에 큰 상처를 주었고 검찰 내부에서 ‘미친놈’‘또라이’로 취급받고 있는 중이여서 이 드라마에 협조할 수 없는 입장이었으나 상황은 묘하게 전개된 것이다. 모래시계가 방영 되어서 홍검사는 스타 검사가 되었으나 검찰 내에서는 이제 완전히 찍혀 사표를 낼 수밖에 없는 지경에 다다른다. 사표를 내고난 뒤 변호사 사무실 개업할 돈이 없어 허송세월을 보내다 1995년 말경 후배 변호사 사무실 한 귀퉁이를 빌려 책상하나 놓고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다. 


변호사를 개업 하자마자 전화가 빗발쳤다. 사건 의뢰 전화라면 얼마나 좋겠느냐 마는 협박 전화였다. 옛날 광주지검 근무시절 광주 전남지역 건설 조직 폭력배들을 비호세력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싹쓸이 한일이 있는데 이때 앙심을 품은 조직폭력배 들이 현역검사 시절에는 검찰이라는 무시무시한 보호막 때문에 홍검사를 어찌할 수 없다가 그가 일반시민이 되자 보복에 나선 것이다. 아내를 납치하겠다. 아이들을 납치해서 어찌하겠다. 너를 죽 인다 등등 수없는 협박에 시달렸다. 검사 시절에도 이런 협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는 공권력이 뒷받침해 주고 있기에 “웃기지마 이 새끼야” 하고 맞대응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문제가 달랐다. 사무실뿐 아니라 한밤중에 집에도 걸려오고 끊임없는 협박 속에 시달리다가 문득 가족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제도권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검찰로는 돌아갈 길이 없기에 정치권을 생각하였고, 마침 김영삼 대통령 측근이 연락을 해와 만나서 사정 이야기를 하고 살려 달라 애원한 끝에 민자당에 입당하였고, 야당세가 제일 강한 송파 갑에 출마하여 의외의 압승을 거두고 정치인이 된다. 깡패들이 국회의원을 만들어준 것이다. 세상만사 모든 것이 이처럼 뜻하지 않은 변수에 의해 만들어지는 아이러니한 것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후에 홍준표 씨는 정치인으로 대성하여 한나라당 대표위원을 지내고 난 뒤 당대표까지 역임 후 경남도지사를 지내며 승승장구 했고 대통령 후보를 거쳐 현재 또 한 번 대통령 후보로 나서고 있다. 운 좋은 “또라이” 의 일화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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