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구한 고양이, 죽을 짓한 황구
옛날 사람들은 집에서 기르는 개나 고양이의 행동을 보고 길흉을 점치기도 하였는데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조선기담>에 전한다. 성주(星州)사람 장순손(張順孫)은 얼굴이 크고 돼지처럼 살이 쪘고 눈은 가늘어 위로 치켜 올라간 데다 코는 크고 뻥 뚫린 들창코요, 입술은 무척이나 두꺼웠다. 그 모습이 돼지의 형상이어서 주변 사람들이 ‘돼지머리’라고 놀려 대었다. 당시 임금이었던 연산군은 성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나날이 유흥에 빠져 음란한 짓을 일삼았다. 생모인 폐비윤씨가 아버지 성종의 후궁 정씨와 엄씨의 모함으로 궐 밖으로 내쫓기고 사약을 받아 죽었다는 사실을 알자 정씨 소생인 안양군과 봉안군을 살해하는 등 온갖 포악한 짓을 다했다.
포악함 외에 음란함도 극치에 달해 각도에 채홍사, 채정사를 파견하여 이쁜 여자는 처녀, 유부녀를 가리지 않고 징발했으며 성균관 학생들을 죄다 내쫓고 여기를 화려한 유흥장으로 만들어 즐겼다. 자기의 인척인 월산대군 부인을 강간하여 자결케 하였고 대신들의 부인들도 가리지 않고 욕보였으며, 심지어 절을 습격하여 비구니 여승들과 혼음도 서슴지 않았다. 원각사를 기생 양성소로 바꾸었으며 무오사화를 일으켜 생모인 윤씨 사사에 관계있다고 의심되는 선비들을 대량 학살 하였으며 시정을 공박하는 투서가 들어오자 이투서가 국문으로 쓰여졌다 하여 국문을 아는 자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분풀이로 한글서적을 모조리 불태워 버려 세종대왕의 위대한 창조물인 국문을 쇠퇴시키는 죄까지 저질렀다.
이렇게 황음무도한 연산군은 질투심도 무지 강했다. 연산군은 당시 성주출신의 한 기생을 특별히 사랑하였는데 어느 날 돼지머리를 바치는 이가 있어 이 기생이 저도 모르게 픽하고 웃었다. 이에 연산군이 까닭을 묻자 이 기생 왈 “옛적 성주에 있을 때 ‘돼지머리’라 불리는 별명을 가진 이가 있었는데 마침 돼지머리를 보자 그이하고 너무 똑같이 생긴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라고 하였다. 연산군은 크게 노하여 “필경 그자는 너의 애부(愛夫)일 것이다! 아직도 그자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라고 하며 기생을 죽이라 명하고 금부에 명하여 ‘돼지머리’를 체포해 오라고 하며 질투심에 발을 구르며 광기(지랄)를 부렸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이렇게 확대되어 돼지머리 장순손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 장순손은 곧 체포되어 한양으로 끌려오는 도중 함창(咸昌) 공검지(公儉池)부근에 당도하였을 때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와 갈림길을 지나 한쪽 길을 택해 사라졌다. 이에 돼지머리 장순손은 자기를 끌고 가는 역인(役人)을 향해 간절히 애원했다. “이보시오 나는 평상시 과거를 보러갈 때 고양이가 가는 길로 따라 갈 때에 반드시 합격하였는데 지금도 고양이가 저쪽 길로 갔으니 제발 소원이니 조금 돌아가더라도 고양이가 간 길로 갑시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사람 소원 한번 들어 주시구료!” 역인이 보기에 어차피 곧 죽을 장순손의 간청에 청을 받아들여 문경에 이르렀다.
이 직전에 연산군은 마음을 바꿔 돼지머리를 한양까지 끌고 오지 말고 선전관(宣傳官)에게 쫓아나가 참수(斬首)하라고 하였다. 선전관은 의당히 성주에서 한양에 오기에 제일 빠른 길을 따라 내려가던 중이었다. 길이 엇갈린 것이다. 이때 한양에서는 연산군의 악정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성희안, 박원종 등이 주동이 되어 반정을 일으켜 연산군을 폐위시켰다. 연산군을 폐하고 성종의 계비 자순대비의 교를 받들어 성종의 둘째 아들 진성대군 이역(李懌)을 중종 왕으로 추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돼지머리 장순손은 ‘행운의 돼지머리’였다. 간발의 차이로 화를 면한 것이다. 공부나 열심히 하지 괜히 기생방에 드나들었다가 황천 갈 뻔 했던 것이다.
우리가 고사를 지낼 때 웃는 돼지머리를 상에 올려놓고 입에다 돈을 물리고 절을 하는 것은 행운을 빌기 위함인데 돼지머리 장순손은 행운의 사나이였다. 하필 고양이가 끌려가던 길에 나타나 주어 목숨을 살려준 것은 다 하늘의 뜻 아니겠는가? 무슨 일이든 자연스레 이루어지지 억지로는 안되는 것이다. 이래서 運(운)을 믿지 않을 수 없다. 목숨을 건진 우리의 돼지머리는 드디어 중종 때 벼슬을 받아 입각하는 행운까지도 누리게 된다. 고양이와 관련된 점복으로는 ①여행 중 고양이가 가는 길을 따라가면 행운이 있다. ②고양이가 정성껏 얼굴을 닦으면 그 날 손님이 온다. ③집이 도둑을 맞았을 때 고양이를 가마솥에 넣고 조금 찌다가 놓아주면 도적이 있는 곳에 가서 그 도적의 머리를 깨문다. ④고양이가 온돌 속으로 들어가면 전 가족이 죽는다, 라는 등등의 猫卜(묘복-고양이점)이야기가 전한다.
개와 관련된 점복으로는 ①개가 지붕위로 올라가면 흉사가 있다. ②개가 앞뜰에서 울면 큰 경사가 있다. ③개가 풀을 뜯어 먹으면 큰 물이진다. ④개가 문 앞에 구멍을 파면 불길하다. ⑤개가 안뜰에 구덩이를 파면 가족 중에 누가 죽는다. 등등의 이야기가 전하는데 이글을 쓰다 보니 옛적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본 광경이 문득 떠오른다. 필자의 나이 7~8세경 이었던 것 같은데 동리의 친구 집에 놀러간 일이 있다. 그 집은 넓은 기와집에 마당이 넓은 꽤나 큰 규모의 집이었는데 친구와 놀다보니 어디선가 찢어지는 듯한 개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친구와 달려가 보니 마당 구석에서 그 집 멍멍이 황구가 친구 아버지에게 그야말로 ‘개 패듯이’ 맞고 있었다. 비명소리가 너무도 크고 애절해서 지금도 황구의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친구 아버지는 지게 작대기로 그야말로 인정사정없이 황구를 패고 있었고 황구는 뒤지게 맞으며 귀청이 찢어지라 비명을 질러 댔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황구가 대문 앞에다가 큰 구덩이를 파다가 친구아버지에게 들킨 것이다. 그때는 구덩이 좀 판 것 가지고 친구 아버지가 너무한다 싶었는데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황구는 뒤질 짓을 한 것이다. 그 후 황구의 개죽음을 그렇게 슬퍼했던 친구는 며칠 동안 개고기를 실컷 먹어 얼굴에 개기름이 번지르르 하게 하고 다녔었다. 늦게나마 황구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