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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로망(Romance)인가 노망(老妄)인가?

2022.03.15





                      로망(Romance)인가 노망(老妄)인가?   


 노망(老妄)이란 늙어서 정신이 흐트러져 말과 행동이 정상이 아닌 것을 이름이며 ‘망령(妄靈)이 났다’ 라고도 한다. 망자(妄字)는 망령될 망, 허망할 망, 거짓망의 의미(意味)를 지니고 있다.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인 치매의 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노망과 발음이 거의 같은 프랑스 말에서 연유한 Romance(로망스, 로맨스)는 ‘꿈같은 소설 같은 연애’라는 의미를 지닌다. 아무튼 로망스인지 노망스인지 설왕설래 말이 많았던 사건이 있었다. 


강영감님은 체구도 자그마하고 성격도 소심 한데다가 얼굴도 오종종하게 여자처럼 이쁜 곱상한 외모를 지닌 분이시다. 이에 반해 강영감님 마나님은 아주 큰 덩치에 뼈대가 굵고 목소리도 걸걸하며 외향적 성격의 여장부이시다. 한국에 계실 때 강영감님은 모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했고 부인은 동대문 의류상가에서 옷장사를 하셨는데 수완이 좋아 남편의 수입보다 수 십 배 씩의 소득을 올리고 있었다. 학창시절 문학소년 이었던 강선생님은 학교 선생이지만 시집도 여러 권 발간한 시인이기도 했다. 중고교시절부터 학교 문예반에서 활동하며 시인으로서의 꿈을 키워온 감성 깊은 청년이었다. 이에 반해 부인은 시골 산촌에서 어렵게 자라 겨우 중학교를 마친 뒤 직업전선에 뛰어든 생활력이 강한 억순 이였다. 


이렇듯 상반된 이미지를 지닌 이 두분이 어째 서로를 좋아하며 결혼에 이르렀는지는 불가사의하다. 일설에 의하면 부인이 힘으로 강영감님을 제압하여 일을 치르는(?) 바람에 부부가 되었다고 하는 우스게 소리도 있었다. 두 분 사이에 자식도 아들 셋에 딸 둘이 태어났고 어찌어찌하여 미국과 인연이 닿았다. 미국에 이민 와서도 부인은 전공을 살려 자바시장에 진출하여 옷 장사를 계속해 나갔는데 강영감님은 미국 생활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했다. 부인처럼 되는 영어 안 되는 영어 손짓발짓 해가며 부딪쳐야 영어도 늘 텐데 배웠다는 자존심에 문법에 맞는 어휘를 머릿속에서 따지다보니 입이 통 열리지 않았고 중졸 출신의 부인에게 “당신 대학 졸업한 것 맞아? 중학교만 나온 나도 미국 온지 몇 년 만에 대강 말이 통하는데 당신은 대체 왜 그 모양이야?” 라는 핀잔까지 듣자 소심한 강영감님은 더 입을 뗄 수가 없었다 한다. 


두 분은 결혼하고 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깊은 대화를 나눠 본적이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서였다. 감성이 풍부한 강영감님은 가을만 되면 센치멘털 해지고 외로움을 탔는데 삶의 허무에 대해 부인에게 한마디라도 건네면 “외롭다고? 무슨 개 뼉다구 같은 소리야? 살려고 눈이 벌게서들 난리인데 뭔 소리야! 배떼기 부른 것들이 할지랄 없어서 하는 소리를 하고 있네!” 라는 식이였다. 이렇듯 말이 통하지 않는 부인과 살다보니 오영감님은 점점 더 외로워졌고 친척이나 친구하나 없는 이 생활이 너무도 삭막하게 느껴졌다. 오영감님은 여러 직업을 알아보았지만 나이 들어 늙은 자신을 받아주는 직장은 아무데도 없었다. 언젠가 필자를 찾아와 “늙은 남자는 정말이지 너무 쓸모없는 존재인거 같아요. 여자들이야 가사 도우미나 베이비 씨터라도 할 수 있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어디 쓸 만한 데가 없는 거예요!” 라고 하며 한탄 하시더니 다행히도 지인의 소개로 한 건물의 경비 아저씨로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근무시간도 삼교대여서 그리 길지 않았고 정해진 시간에 건물 주위를 한 바퀴 휭 돌아보고 건물 로비에 있는 경비실에 앉아서 드나드는 사람만 체크하면 그만이었다. 이러니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고 책을 읽으며 시상이 떠오를 때 시까지 쓰니 오영감님에게는 그야말로 금상첨화의 직업이었다. 이렇게 지내던 어느 날인가 책에 빠져 있던 오영감님에게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한 여성분이 말을 걸어왔다. “어머? 읽고 계신 책이 OO의 OOO 아닌가요? 저도 그 책을 너무 감명 깊게 읽어서 기억합니다. 내용이 참 좋죠?” 이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말문을 튼 뒤 오가며 마주칠 때 마다 문학과 예술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김씨성을 가진 이 여성분은 60대 중반의 여성분으로서 40대초에 갑자기 남편을 사별하고 아들하나 키우며 살았는데 얼마 전 아들도 출가 시키고 타운내의 한 콘도에서 혼자 지내시는 분이였다. 이분도 학창시절부터 문학 소녀여서 꽤나 문학적인 지식이 높았고 성격이 상냥하고 세심하여 오영감님 하고는 대화가 아주 잘 통했다. 특이한 점은 김여사님 남편도 오영감님 부인처럼 아주 외향적이고 다소 무식해서 돈 버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죽기 전 이런저런 보험을 들어왔고 돈도 꽤 벌어놓은 상태여서 김여사님과 아들이 살아가는 데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두 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서로에게 끌렸다. 그러나 두 분 다 성격이 적극적이지 못해서 서로에게 매우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60대 중반과 70 초반의 나이 임에도 불구하고 연애하는 소년 소녀의 감정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서로가 보기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 이며 첫사랑의 감정을 서로가 느낀다하며 어떡하면 좋겠느냐며 필자에게 하소연했다. “선생님 어쩌면 좋습니까? 이 나이에 사랑에 빠질 줄이야 꿈에라도 상상해 보았겠어요? 그런데 이러면 안 된다 안 된다 하면 할수록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애들 체면도 있고 손자손녀 들까지 있는데... 이런 감정을 억지로 없애보려고 일부러 김여사님을 피해 보기도 했는데 그분을 안보면 가슴이 막힌 듯해서 숨을 쉴 수가 없어요. 제가 노망(老妄)이 들어도 단단히 든 모양 입니다.” 


두 분은 자녀들 체면을 봐서 우리가 이러면 안 된다는데 합의하고 서로 보지 않기로 몇 번이나 결심하고 헤어졌는데 한번 오영감님이 보고 싶은 것을 참지 못하고 약속을 깨고 만났다가 다시 결심을 서로 굳게 하고 헤어지면 이번에는 김여사님이 참지 못하고 연락을 해서 만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두 분이 사랑의 열병에 빠진 것이다. “내가 이 나이에 무슨 여자의 육체가 그리워 이러겠습니까? 그저 같이 있기만 하면 구름위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으니 이게 무슨 조화입니까? 아이구 망령(妄靈)도 이런 망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두 분은 함께 하기로 결심하셨다. 오영감님 부인께서 늙은것들이 노망이 났다고 하며 난리를 쳐댔지만 오영감님의 결심을 돌리진 못했다. 입에 거품을 물며 “두 년 놈 노망(老妄)이 나도 단단히 났지 뭐예요!” 라고 하며 분개하는 부인 앞에서 필자는 이것이 로망인지 노망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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