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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안네 프랑크의 집

2017.12.30


안네 프랑크의 집(Anne Frank House)





안네 프랑크 하우스는 슬픈 사연이 집 안 구석구석에 묻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워낙 유명한 곳이라 암스테르담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방문한다.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고 사람들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매우 충분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낮에 방문하면 적어도 1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겨우 입장할 수 있다.
그래서 문을 열기 30분전 부터 도착하여 기다리는 것이 좋다.



안네 프랑크의 집을 관람하려면 오랜시간 기다려야 한다


안네 프랑크는 1929년 6월1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안네의 가족들이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민을 간 것은 1933년.
안네가 4살, 안네의 언니인 마르고(Margot)가 6살 되던 해였다.
아버지 오토(Otto Frank)는 고기를 재는데 필요한 양념과, 잼을 만드는데 쓰이는
젤화제인 오페크타를 판매하는 회사등 두 개의 회사를 소유하고 있었다.
1940년 5월, 독일군이 네델란드를 점령하자 프랑크 가족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행복했던 시절의 안네(왼쪽에서 2번째 소녀)


나치는 1941년 부터 유대인들이 하는 개인사업은 모두 폐쇄시키고 말았다.

그러자, 오토는 다른 사람 이름으로 회사를 등록시키고 자신은 실무책임자로 남았다.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자 안네의 식구들은 회사 창고
위층에 있는 은신처로 들어 가 숨어 살게 된다.

1942년 7월 6일의 일이다.
그 후, 헤르만과 어거스트 반 펠스, 그들의 두 아들인 페터, 프리츠 페퍼가 합류하여 함께 숨어 살았다.
은신처에 숨어있는 안네의 식구등 8명의 유대인을 도운 사람들은,
미프 히스(Miep Gies)와 그의 남편 장 히스(Jan Gies),
베프 포스콰일(Bep Voskuijl), 빅토르 퀴흘레르(Victor Kugler),
그리고, 조오 클레이만(Johannes Kleiman) 등이다.
8명의 유대인들을 도와준 5명의 헌신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어쩌면 그들도 나치에 체포되면 어떤 괴로운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여인의 몸으로 끝까지 안네의 식구들을 돌 본 미프 히스의 용기는 대단했다.
도와준 사람들의 국적은 오스트리아 또는 네델란드였다.



안네의 식구들을 끝까지 도운 미프 히스(Miep Gies)


안네는 13세가 되는 생일날 부모에게 선물받은 일기장에 하루의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은신처에서의 생활과 가족, 고립감, 그 리고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끝없는 두려움에 관한 것이었다.
안네의 일기엔 사춘기 소녀의 풍부한 감수성과 깊은 통찰력이 배여 있다.





"영국 라디오 방송에서는 모두 독가스에 의해
살해당하고 있다고 보도합니다.
나는 공포심에 사로잡혀 넋을 잃었습니다.
(안네의 일기: 1942년 10월 9일)"

"어제 커튼 너머로 두 사람의 유대인을 보았습니다.
내 눈을 의심할 정도로 괴로운 기분이었습니다.
왠지 내 자신이 밀고자 되어 그 사람을 팔아 넘기고,
뻔뻔스럽게도 그 비참한 상황을
편하게 바라 보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안네의 일기: 1942년 12월 12일)

"전쟁이 끝나면 가장 먼저 ‘은신처’라는 제목으로 한 권의 책을 쓰고 싶습니다"
(안네의 일기: 1944년 5월11일)



안네 프랑크 하우스 전시관(안네의 일기)


1944년 8월4일. 독일 비밀 경찰은 익명의 인물로 부터 ‘프리센흐라흐트
263번지에 유대인들이 숨어 살고있다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누군가가 안네의 식구등 유대인 8명이 살고있는 은신처를 나치에 밀고한 것이다.
숨어있던 사람들은 네델란드 동쪽에 위치한 웨스터보르크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들은 그 곳에서 모두 아우슈비츠 집단 학살 수용소로 이송됐으며
마르고와 안네는 베르겐 벨젠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다.





이 후 이들의 행방은 다음과 같다.
*헤르만 반 펠스는 그 해 9월 아우슈비츠 집단학살 수용소에서 독가스로 사망했다.
*어거스트 반 펠스는 1945년 4월 테레지엔스타트 강제수용소로 이송 도중 사망했다.
*페터 반 펠스는 1945년 5월 5일 마우트하우젠 강제 수용소 병실 막사에서 사망했다.
*프리츠 페퍼는 병과 피로에 지쳐 1944년 12월 12일 노이엔가메 포로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에디트 프랑크는 병과 피로에 지쳐 1945년 1월 6일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다.
*마르고 프랑크는 티푸스에 감염되어 1945년 3월 베르겐 벨젠 강제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안네 프랑크도 역시 티푸스에 감염되어 며칠 후 베르겐 벨젠 강제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마르고 프랑크와 안네 프랑크의 묘지


오토 프랑크는 아우슈비츠 집단 학살 수용소에서 살아 남아 1945년 6월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다.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난후, 그는 안네의 일기를 출판하기로 결정한다.
오토는 스위스에서 재혼했으며 1980년 9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 중 빅토르 퀴흘레르와 조오 클레이만은
체포되어 수감된 후 전쟁이 끝난후 살아 남았으며,
미프 히스와 그의 남편 장 히스,
그리고 베프 포스콰일은 나치에 잡혀가지는 않았다.



네델란드에서 처음 발간된 안네의 일기(1947년)


전쟁이 끝난후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까지도 밀고자는 밝혀내지 못했다.

안네의 일기는 숨어있던 사람들이 체포된 후 미프 히스와 베프 포스콰일이
위층에서 발견하여 미프가 책장 서랍에 보관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안네가 사망한 것이 분명해지자,
미프는 오토에게 안네의 일기와 모든 기록들을 건냈다.

안네의 일기가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1947년.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발간됐다.
이 후, 60개국 이상의 언어로 출판 번역되었으며 연극과
영화로도 개봉되어 전세계인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한국판 안네의 일기


안네의 집에는 안네가 숨어 있던 뒷건물을 연결해주는

통로가 회전식 책장으로 은밀히 가려져 있다.
이동식 책장은 베프 포스콰일의 아버지가 특별히 만든 것이었다.

옆으로는 창문도 있는데 어두운 반투명 글라신지를 붙여 밖에서는 전혀 안이 보이지 않았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 사면 안네가 일기를 썼던 다락방도 그대로 있다.
안네의 집은 1960년 이후 대중에게 공개됐다.



안네의 식구들이 숨어 살던 회전식 책장


안네 프랭크 하우스에 들어 가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것이 있다.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녀의 두려워 했던 감정이 안네 하우스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안네 하우스는 암스테르담을 여행하면 꼭 한 번은 방문해야 할 감동의 방문지다.

안네와 마르고가 마지막까지 수용돼 있던 베르겐 벨젠 강제 수용소.

안네가 티푸스에 감염돼 사망한 후,
불과 2주만에 영국군에 의해 장악됐다.



글: 곽노은



http://www.annefrank.org/(안네 프랑크 하우스 정보)




1929년 6월 12일 - 1945년 2월 또는 3월(당시 1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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