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헤르만 헤세가 묻힌 곳, 몬테뇰라(스위스)

2018.05.05

 

 

몬테뇰라

Montagnola

 

헤르만 헤세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고전작가 중 한 명이다.

인기가 어느정도 인가 하면 셰익스피어, 괴테, 토마스 만, 헤밍웨이보다 더 우위에 있을 정도다.

이것은 얼마전 네트즌을 상대로 투표한 인터넷 서점(예스24)에서의 결과다.

 

 

 

 

수레바퀴 아래서, 페터 카멘친트, 크놀프, 데미안,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

이중에 단 한 권이라도 헤세의 작품을 읽지 않은 한국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발자취를 찾아 스위스의 루가노로 향했다.

 

 

 

 

박물관이 있는 몬테뇰라로 가려면 루가노에서 노란색 포스트 버스(436)를 타야 한다.

 

 

 

 

2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오고 가는 버스는 하루에 4번씩 밖에 없다.

 

 

 

 

헛된 시간을 소비하지 않으려면 정류장에서 버스시간을 확인하면 편안하다.

 

 

 

 

박물관은 개인 후원자들과 헤세의 둘째 아들 하이너 헤세의 지원으로 1997 7 2일 마련됐다.

 

 

 

 

헤세의 탄생 120주년을 맞아 그가 몬타뇰라에서 처음 살았던 카사 카무치의 한 건물에 문을 연 것이다.

 

 

 

 

 

 

박물관에는 책상, 타자기, 안경, 면도기, , 그림 도구, 모자, 우산 등 그가 사용하던 개인적인 물건과..

 

 

 

 

 

헤세가 그린 수채화, 헤세가 독자에게 보낸 그림이 있는 편지, 번역본, 초판본 등 여러가지 기록들이 전시돼 있다.

 

 

 

 

헤세는 평생동안 3,000장 정도의 수채화를 그렸으며 35,000장의 답장 편지를 써서 독자들에게 보냈다.

 

 

 

 

그 중에는 그림 엽서 등 예쁜 수채화 그림을 그려 보낸 것도 있었다.

 

 

 

 

독일 유학생이던 전혜린도 헤세로 부터 수채화 엽서를 받았다.

 

 

 

 

그녀는 귀국하여 대학 강단에 섰으며 데미안을 번역하여 당대 청년들에게 깊은 감명을 준 바 있다.

 

 

 

 

1916헤세의 주치의 랑(Lang)박사는 심리분석 치료의 한 방편으로 헤세에게 그림 그리기를 권고한다.

 

 

 

 

정신과 치료를 마친 헤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몬타뇰라에 있는 카사 카무치로 거처를 옮겼다.

 

 

 

 

이혼한 아내(마리아 베르누이)도 정신분열이 악화되자 아이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흩어지게 된다.

 

 

 

 

장남 브루노는 화가며 친구인 쿠노 아미에트(Cuno Amiet)에게 맡겼고..


 

 

 

차남 하이네는 육아원으로 보내졌으며, 막내 마르틴은 위탁 가정에 맡기게 됐다.

 

 

 

 

이때서 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헤세는 1919,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데미안, 어느 청춘 이야기를 출간하고 1920년에는 바젤 미술관에서 수채화 전시회를 연다.

 

 

 

 

1923년에는 독일 국적을 포기하고 스위스 시민권을 취득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Narziß und Goldmund)는 헤세가 53 세 때 발표한 소설이다.

 

 

 

 

그는 이소설을 자신의 영혼의 자서전이라고 말한다.

 

 

 

 

방랑자로 많은 여인들을 만나는 골드문트가 헤세였을까?

 

 

 

 

 *실제로 그는 어머니 품같은 마리아 베르누이를 만나 세 아이를 낳았으며..

 

 

 

 

*20살이나 어린 루트 벵거(Ruth Wenger, 위 사진)를 만나 두 번째 결혼하고 3년 후 헤어졌다.

 

 

 

     

*1910년 첫 번째 아내였던 사진작가, 마리아 베르누이가 촬영한 사진

그 것 뿐인가 그는 방랑자요 나체주의자로 발가 벗고 있기를 한 때 즐겨 하기도 했다.

 

 

 

 

니논 돌빈(Ninon Dolvin)은 베를린 대학교 재학 시 헤르만 헤세의 책을 읽고 그의 열렬한 팬이 된 여인이다.

그녀는 자신의 사진을 동봉하고 당신에게 내가 누구인지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어요라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는 내 안에 무언가 강렬한 힘을 느껴 당신에게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어요라는 고백을 한다. ‘

11년이 지난 후 미술사학자가 된 니논(당시 36)은 헤세(54) 3번째 아내가 됐다.

 

 

 

 

1946, 헤르만 헤세는 괴테 문학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전세계에서 날라 온 축하 편지는 7000통에 달했다.

 

 

 

 

1947년에는 베른 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도 받았다.

 

 

 

 

헤세는 몬테뇰라에서 정원을 가꾸고 낙엽 태우는 것을 좋아했다.

 

 

 

 

글을 쓰지 않을 때는 니논과 함께 천천히 산책하기도 즐겨했다.

 

 

 

 

루가노 호수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몬테뇰라는 그림 그리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화가가 된 큰아들 브루노와는 호수, , 작은마을을 함께 다니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헤세는 훌륭한 작가였지만 화가로서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https://www.ktown1st.com/blog/nounkwak/2205 (헤르만 헤세가 묻힌 곳, 몬테뇰라-2)

*

좋아요
인기 포스팅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