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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모딜리아니의 누드화

2018.06.06

 



Amadeo Modigliani







왼쪽으로 누워있는 나부 = Nu Couche(sur le cote gauche (1917 년)


모딜리아니의 작품, “왼쪽으로 누워있는 나부”가 1억 5천 7백 20만 달러에 팔렸다는 소식이다.

2018년 5월 14일, 뉴욕 소더비에서 경매된 이 가격은 모딜리아니의 작품 사상 최고가의 기록이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소파에 앉은 누드’도 2010년 소더비에서 6천 9백만 달러에 경매된 적이 있다.
두 작품은 모두 모디(모딜리아니의 애칭)가 33세되던 1917년에 그린 작품이다.




소파에 앉은 누드 = Nude Seated on a Divan(1917 년)


그러나 1917년 겨울은..
모디의 35년의 짧은 인생에 있어 가장 눈보라가 세차게 휘몰아 치던 해였다.
1917년 12월 3일, ‘베르트 바일’ 화랑에서는 모딜리아니의 첫 개인전이 열렸다.
모디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폴랜드 출신의 화상 레오폴드 즈보로프스키(Leopold Zborovski)의 수고였다.






전시회에는 30여 점의 드로잉과 1917년에 그려진 누드 회화들을 전시했다.

전시회가 시작되자 수많은 관람객들이 몰려 오기 시작했는데..
관람객의 눈길을 끌기위해 누드화 한 점을 창가에 걸었던 것이 화근이 된다.
누드화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 들자 깜짝 놀란 경찰이 전시회를 제지시킨 것이다.






여인의 누드에 체모가 보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바로 길 건너 건물이 경찰서가 있을 줄이야.
전시회는 열자마자 문을 닫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 개인전은 모디의 첫 개인전이자 생전에 열린 유일한 개인전이 되고 말았다.






모딜리아니에게는 아름다운 여인 쟌느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 위 사진)이 있었다.
두 사람은 14살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운명적인 것이었다.
1917년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모디는 33세, 쟌느는 19살이었다.
두사람은 빌딩 꼭대기 작업실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쟌느의 부모는 가난한 화가와 사랑에 빠진 딸을 안타까워 하며 관계를 끊으려고 했다.






하지만, 부모가 그러면 그럴 수록 두사람의 사랑은 더욱 깊어만 간다.

1918년 11월 29일에는 두 사람 사이에 딸 쟌느(Jeanne Modigliani)가 태어났다.
1919년에는 결혼을 약속하는 서류에 서명하고 에뷔테른은 둘째 아이를 임신한다.
하지만, 모디는 연말에 심한 결핵에 걸려 이탈리아 여행을 취소하게 됐다.






1920년 1월 24일 밤. 모딜리아니는 결핵형 늑막염으로 파리의 자선병원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사랑하는 모디가 눈을 감자, 에뷔테른은 시신을 껴안은 채 놓을 줄을 몰랐다.
밖에는 하얀눈이 내리고, 그녀의 가슴에도 하얀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음 날 쟌느 에뷔트린은 아파트 꼭대기 창가에서 모디를 생각하며 밖으로 몸을 날린다.



    
  모딜리아니                                     잔느 에뷔테른



한 날을 사이에 두고 세 명의 목숨은 그렇게 하늘나라로 떠나 갔다.

하지만 예술은 영원한 것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 모디의 작품들은 그 빛을 더욱 발하고 있다.
이제, 모디와 에뷔트린의 사랑은 “귀한 전설”이 됐다.


글: 곽노은



모딜리아니가 1917년에 그린 2개의 또 다른 누드화


 



Reclining Nude(1917)
Oil on canvas. 60 x 92 cm. Staatsgalerie, Stuttgart, Germany.
 
 




Nude with Necklace(1917)Oil on canvas.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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