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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

쇼팽과 바르샤바(폴란드)

2018.06.14




 Chopin





 


꿈에도 잊을 수 없는 도시, 바르샤바





바르샤바는 쇼팽이 조국을 떠나기
전까지 살던 도시다.




그는 ‘젤라조바 볼라’에서 태어났지만 그 해 바르샤바로 이사를 했다.




나는 이 도시에서 그가 20세에 작곡한 e단조 협주곡을 들으며 쇼팽의 작품과 그의 애국심,
사랑과 외로웠던 그의 생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잠코비 광장은 구시가지로 들어 가는 입구에 자리 잡고 있는 광장이다.




폴란드 왕가의 거주지였던 붉은색 왕궁이 있어 성 광장(Castle Square)으로 불리기도 한다.




광장 중앙에는 17세기에 세워진 지그문트 3세의 청동상이 우뚝 서있다.




그는 1596년 폴란드 수도를 크라쿠프에서 바르샤바로 옮긴 인물이다.




바르샤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도시 거의 전체가 파괴된 도시였다.




왕궁과 지그문트 3세의 동상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후에 완벽하게 재건시켰다.




성 요한 성당은 14세기에 고딕양식으로 건축된 성당이다.




당시는 목조로 지어졌지만 전쟁으로 파괴된 후 1950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시켰다.




역대 폴란드 왕의 결혼식 및 대관식은 모두 이곳에서 거행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비신스키 추기경의 무덤이 있는데 그는 나치주의와 공산주의에 맞서 싸운 용감한 사람이었다.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폴란드에서는 국민적인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폴란드의 유명인사로는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와 과학자 퀴리 부인도 빼 놓을 수 없다.
특히 퀴리 부인은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1903년)을 수상했으며
후에 노벨 화학상(1911년)까지 받았다.




구시가지 북쪽에는 그녀의 생가를 개조해 만든 퀴리 부인 박물관이 있다.
바르샤바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건축물은 단연 문화 과학 궁전이다.
1952년 러시아(구소련)에서 파견된 3500명의 기술자들에 의해 건축되기 시작한 궁전은 1955년 완공됐다.
명목은 러시아가 폴란드 국민에게 주는 선물이었기에 건축물의 이름은 스탈린 궁전이 될 뻔 했다.
그러나 폴란드인들은 이러한 치욕적인 일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이곳에는 방송국, 영화관, 극장, 공연장, 사무실, 전시관, 레스토랑, 서점, 박물관, 대학, 수영장
등이 있고 도시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33층 테라스에 자리 잡고 있다.




위병들이 지키고 있는 무명용사들의 묘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켜있다.




매 시 정각에는 위병 교대식이 열리는데 위병들은 두 명이 한 시간 씩 무명용사들의 묘를 지킨다.




광장 앞으로는 ‘피우수트스키’ 폴란드 초대 대통령의 동상이 서있고,




무명용사들과 바르샤바 시민들을 위로하듯 대형 십자가가 광장을 압도하고 있
다.




그 외에도 바르샤바에는 인어상과 거리 화가들이 있는 구시가 광장과,




16세기에 처음 건축하고 복원된 말발굽 모양의 바르비칸 성벽과




1970년 독일의 브란트 총리가 무릎을 꿇고 사죄한 나치 정권에 의한 전쟁 희생자 추모비와




쇼팽의 동상이 있는 와지엔키 공원 등이 있다.




폴란드에는 젤라조바 볼라의 쇼팽 박물관과 바르샤바의 쇼팽 박물관 등 두 개의 쇼팽 박물관이 있다.




바르샤바에 위치한 박물관은 1955년 문을 열었지만 2010년에 재개관한 박물관이다.




쇼팽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재단장한 전시관에는 그가 사용하던 피아노와




1830년 3월 17일, 바르샤바 국립극장에서의 쇼팽 연주회(f단조 협주곡)를 알리는 포스터와




에튀드 등 여러개의 친필 악보와 편지 등이 전시돼 있으며




쇼팽의 협주곡,
소나타, 발라드, 스케르초, 왈츠, 녹턴, 마주르카 등을 들을 수 있는 음악 감상실,




첫사랑 콘스탄티아 글라드코프스카, 마리아 보진스카
, 조르주 상드에 이르는 ‘쇼팽의 여인들’ 전시관,





쇼팽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앳된 모습의 쇼팽 그림이 전시돼 있다.




박물관은 월요일에 문을 닫고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화-일)까지 문을 여는데 일요일은 무료 입장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야 할 곳은 쇼팽의 심장이 묻혀있는 성 십자가 성당이다.





1830년 10월11일 바르샤바 국립극장.




20세의 쇼팽은 ‘죽기 위해 떠나는 것 같다’라는 말을 남기며 조국에서의 마지막 연주회를 갖는다.




이날 무대에서 쇼팽은 피아노 협주곡 제1번 e 단조 Op. 11을 초연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감동할 수 밖에 없는 이 작품은..
수많은 피아니스트와 오케스트라가 연주했고 음반으로도 만들어졌다.
그 중에서도 추천할 만한 최고의 연주는 단연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연주다.
짐머만은1975년 쇼팽 콩쿠르에서 최연소의 나이(19세)로 우승한 전력을 갖고 있다.




얼마 전 제17회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의 대선배라 말할 수 있다.




짐머만은 조성진의 연주가 끝나자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낸다.




‘내가 평생 들었던 쇼팽 중 조성진이 가장 완벽했습니다!’
쇼팽 해석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의 권위자가 보낸 문자다.




1849년 10월, 39세의 쇼팽은 폐결핵으로 죽음을 맞으며 누나 루드비카에게 마지막 소원을 남긴다.




‘누님, 내가 조국에 묻힐 수 없다면 내 심장만이라도 꺼내어
폴란드에 품에 안기게 해주세요!”
심장없이 거행된 쇼팽의 장례식에서는 유언에 따라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연주됐다.



글, 사진: 곽노은






쇼팽이 세상을 떠나기 전 사진작가 비송(Louis-Auguste Bisson) 촬영한 사진(1849)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1 e단조 O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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