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인(레스비아)을 향해 이렇게 시를 읊었다.
나의 레스비아여, 우리 이렇게 사랑해요! 시기심 많은 늙은이들의 잔소리는 무시해 버려요. 한 푼 값어치도 없는 정말 하찮은 소리지요. 날마다 해는 뜨고 지지만, 우리는 이 순간을 놓칠 수는 없어요. 그러니 내게 키스해 줘요 천 번을, 이어 백 번을.. 또 다른 천 번을, 이어 또 다시 백 번을.. 아니, 아니 멈추지 말아 주세요. 굳이 세어 보려고도 하지 마세요. 누군가 우리를 훔쳐 보고 있거든 우리의 입맞춤을 세어보라고 하죠, 뭐! 세다가 세다가 도저히 셀 수 없는 우리의 뜨거운 입맞춤 때문에.. 질투해야 하는 것 조차 깜박 잊어버리게 만들죠, 뭐! ![]() *이탈리아 북부에는 가르다 호수, 마조레 호수, 그리고 코모 호수가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호수는 가르다 호수. 가르다 호수는 베로나에서 26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있는 20여 개의 마을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은 단연 시르미오네라는 마을이다. 호수 남쪽에 물방울 튀기듯 솟아 올라 있다. ![]() 시르미오네는 석기시대때 부터 사람들이 살던 작은 어촌이었다. 외부에서 사람들이 모여 들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중기. 프랑스에 살던 카타리파 사람들이 십자군의 박해를 피해 가르다 호수로 이주해 온 것이다. ![]() 당시 카타리(Cathars)파는 기독교의 영적인 힘이었다. 카타리파 사람들은 성결한 삶을 위해 금욕의 생활 방식을 강조하고 신약성서를 고집했다. 고기도 먹지 않았다. ![]() *그들은 이곳에서 평화롭게 살기를 소망했지만 카톨릭은 카톨릭을 제외한 모든 이교도들을 경멸했다. 13세기 말에는 200명의 카타리파 남녀를 체포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십자군에 의해 그들이 끌려 간 곳은 베로나의 아레나 원형경기장. 그 곳에서 카타리파 남녀는 거대한 인간 모닥불이 되어 모두 화형에 처해졌다. 1278년 2월 13일에 일어난 카톨릭에 의한 카타리파 학살 사건이다. 모닥불은 노란색 십자가로 보여지기도 했는데, 그것은 카타리파의 상징이었다. ![]() 시르미오네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 이후부터였다. 베로나의 귀족, 스칼라 가문에서 스칼리제르 성(Scaliger Castle)을 이곳에 지은 것이다. ![]() 큰 호수에 웅장한 성, 반도의 아름다움은 시르미오네를 유럽 최고의 호수 휴양지로 자리잡게 해주었다. ![]() 이곳에 매료된 유명인들은 시인 카툴루스를 비롯해 스탕달, 괴테, 바이런, 릴케, 알프레드 테니슨,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에즈라 파운드, 제임스 조이스, 가브리엘 다눈치오, 마리아 칼라스 등이 있다. ![]() *특히 칼라스는 지비오(Zevio)에 살 때 매 년 여름 이곳으로 와 별장에 머물렀다. 칼라스는 1952년부터 시르미오네를 찾기 시작했는데.. 이곳에는 지금도 그녀가 머물던 별장과 그녀의 이름을 딴 공원, 레스토랑이 존재하고 있다. ![]() 시르미오네의 주민은 모두 7,757명. ![]() 거의 호텔, 레스토랑, 기념품점, 젤라또, 온천욕, 보트 대여 등 관광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 옛부터 이곳은 온천으로도 유명했다. 우리가 묵은 호텔도 온천수가 흐르는 ‘올리비 내츄럴 스파 호텔’이었다. ![]() 시르미오네는 넘치는 관광객으로 인해 여름에는 자동차 파킹은 물론 걸어 다니기 조차 힘든 곳이다. ![]() 그러나 비수기에 여행하면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이 아주 좋다. ![]() 스칼리제르 성은 사면이 가르다 호수에 둘러싸인 독특한 건축양식의 성이다. 이곳은 입장료(4유로)를 지불해야만 들어 갈 수 있다. ![]() 그런데 만약에 성을 들어 가지 않았다면 크게 후회할 만큼 멋진 풍경을 성에서는 보여 준다. 시르미오네 여행의 하일라이트로 보면 된다. ![]() 아쉬운 것은 아침 일찍 또는 노을지는 저녁에는 성을 들어 갈 수 없는 것이다. 가장 높은 탑에 오르려면 150 계단을 걸어서 올라 가야 한다. ![]() 탑에서는 마을의 아기자기한 전경과 가르다 호수, 알프스 산맥의 풍경까지 모두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다. ![]() 가르다 호수를 채운 물은 모두 알프스 빙하에서 흘러 나온 청정한 물이다. ![]() 반도 중앙에 성벽을 쌓았으니 적들이 쳐들어 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 성을 나오면 바로 왼쪽으로 마비노의 성 베드로 성당(The church San Pietro in Mavino)이 보인다. ![]() 그 외에도 성 안에는 '산타 마리아 델라 네베 성당' 등 2개의 교회가 더 있다. ![]() 시르미오네는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유명한 레스토랑도 많다. ![]() 대개는 물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2인 식사에 150-400달러 정도는 써야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다. ![]() 부자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여서 비싼 레스토랑도 손님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 시르미오네를 유명하게 한 것은 스칼리제르 성과 함께 카툴루스의 동굴(Grottoes of Catullus)이 있다. ![]() *카툴루스 동굴은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로마 빌라 유적 중에는 가장 규모가 큰 로마의 유적이다. ![]() 이곳은 카툴루스가 살던 집은 아니지만 그의 친척이 살던 저택으로 추정하고 있다. ![]() 카툴루스는 54 BC 에 사망했고 카툴루스 동굴은 서기 150 년에 건축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 동굴로 불리는 것은 15세기 발견시 부분적으로 동굴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 이곳에서도 카타리파에 대한 박해와 학살이 있었던 것으로 역사는 증언한다. ![]() 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지만, 시르미오네는 오늘도 수많은 방문객들로 넘쳐난다. ![]() 사람들은 카툴루스의 시를 생각하며 아름다운 시르미오네에 천 번의 입맞춤을 보낸다. ![]() 나도 백 번의 입맞춤을 사랑하는 여인에게 보냈다. ![]() 그녀도 내게 천 번의 키스로 보답한다. ![]() 시르미오네의 멋진 밤. 글, 사진: 곽노은
*표시의 이미지(3장)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