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조각품, 론다니니 피에타(밀라노-2)

2018.10.13



 




카스텔로 스포르체스코 성  

 




밀라노   

 
 
   


   

 

   

Milano-2

   



   

밀라노 대성당을 나와 카스텔로 스포르체스코 성(카스텔로 스포르체스코 성)으로 향했다. 

   


   


   

   


   

이곳 전시관에는 미켈란젤로가 죽기 6일 전까지 다듬던 그의 마지막 조각품이 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었지만 그의 작품은 대리석이라고 말 할 수 없다.



   


   

   


   

진짜 사람의 피부처럼 매끄럽고 부드럽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은 거의 모두 감상한 내게 그가 남긴 최후의 작품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89세의 미켈란젤로는 마지막 피에타 앞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기대가 커지니 걸음이 점점더 빨라진다.

   


   


   

   


   

그런데 카스텔로 스포르체스코 성에는 미켈란젤로 외에도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이 몇 점 더 있다



   


   


   

*브라만테의 제자인 브라만티노(Bramantino)가 제작한 태피스트리가 악기 박물관에 전시돼 있으며..

   


   


   

   


   

*안드레아 만테냐의 ‘성모 마리아와 함께 있는 세례자 성 요한, 성 그레고리, 성 베네딕트 그리고 성 제롬, 1474’이 있고..

   

 (Andrea Mantegna: The Madonna with Saints John the Baptist, Gregory the Great, Benedict and Jerome)..

   


   


   

 

   

살라 델레 아세(Sala delle Asse) 방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천장화(1498)가 있다.



   


   

   


   

다 빈치의 천장화는 19세기까지 모르고 있다 1893년 독일 역사학자가 발견하여 후에 복원시킨 작품이다. 

   


   


   

   


   

*다 빈치는 밀라노에서 17년을 머물었다. 그런데 완성한 작품은 아주 적었다.



   


   


   

*그러나 그 중에는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암굴의 성모, 그리고 최후의 만찬 등 걸작들이 포함돼 있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는 생전에 3부작 피에타 조각상을 남겼다.



   


   

   


   

첫 째는 로마 산 피에트로 대성당에 있는 피에타(1498–1499).



   


   


   

두 번째는 피렌체에 있는 피렌체 대성당의 피에타(1547–1553).



   


   

   


   

세 번째가 밀라노에 있는 론다니니 피에타(Rondanini Pieta, 1552-64)다.



   


   


   

피에타는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그림 또는 조각상을 말한다.

   

이 전시관은 오직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 피에타’만을 전시하기 위해 마련된 곳이다. 



   


   


   

론다니니는 피에타를 마지막으로 소유하고 있던 로마 후작 가문의 이름이다

   

   


   


   


   

그러던 것을 밀라노 시가 피에타를 사들여 1952년부터 이곳에서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론다니니 피에타는 미켈란젤로가 죽음에 대한 명상과 영혼의 구원을 그린 작품이다.

   

다른 피에타가 인체의 영웅적인 아름다움을 조각했다면 이작품은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예수가 어머니를 업듯이 위로하고 있으며 성모 마리아의 얼굴도 편안하다.

   

학자들도 슬퍼하는 성모를 예수가 위로하는 모습을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것이라고 말한다.

   


   


   


   


   


 


종교개혁과 미켈란젤로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는 독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 정문에 ‘95개조 의견서’를 붙힌다.

   

종교개혁은 불길처럼 유럽 전역으로 번져 나갔고 성경은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등 다른 언어로 번역됐다.

   

이렇게 하여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접하게 됐는데 그 중에는 미켈란젤로도 있었다.

   

그는 성경을 읽고 은혜를 받았으며 성경에 대해 잘 알게 됐다.

   

미켈란제로는 당시 ‘신의 은총은 돈으로 살 수 없다’라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성직자가 아닌 일반인이 성경을 소유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중대한 범죄였다.

   


   


   

   


   

*1541년에 완성한 최후의 심판은 예수의 재림을 주재로 시스티나 예배당 벽에 그린 프레스코화다.  

   

카라파 추기경을 비롯한 카톨릭 보수파는 이 최후의 심판에 비난을 퍼부었다.

   

등장 인물들을 나체로 표현해 예배당 벽화로는 음란하고 부적절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미켈란젤로는 보수파의 비난을 듣고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맨 발이 신발보다 고귀하다는 것을 부정하고 살갗이 양털보다 고귀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아주 잔혹한 판단이다’.

   


   

카라파와 카톨릭 보수층의 심기가 불편해 진 것은 성직자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 미켈란젤로의 태도때문이었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면 교황이나 대주교 같은 성직자 없이 예수가 성 바울에게 직접 말을 건네고 있다.

   

그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라는 성경 구절에 영감을 받아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다행히 바오로 3세가 미켈란젤로를 옹호하고 나서며 자신의 개인 예배당 장식을 맡겼다.

   

그 곳에서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보다 더 아름답고 더 감각적인 나체의 천사들을 그린다.

   


   


   

   

*미켈란젤로가 1540년(65세)에 드로잉한 로마의 여류시인, 비토리아 콜론나(Vittoria Colonna)의 모습

   

 

   

당시 그는 로마의 여류시인 콜론나(Vittoria Colonna)와 폴 추기경 등 종교개혁가들과의 교류가 있었다.

   

교황청의 기록보관소에 의하면 미켈란젤로는 종교개혁자들과 만나 성명서 출판을 준비했다는 내용의 문서도 있다.

   

1549년, 종교개혁에 긍적적인 폴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폴 추기경을 후계자로 지목했던 교황 바오로 3세가 11월 10일 서거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폴 추기경은 한 표가 부족해 교황이 되지 못했다.

   


   

강경파 카라파 추기경은 폴 추기경의 이단 행위의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다.

   

결국, 1555년 카라파 추기경은 그의 욕심대로 교황 자리에 올랐다.

   


   


   

   


   

그는 교회의 종교재판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미켈란젤로의 연금을 끊어 버렸다.

   

이미 폴 추기경은 영국으로 피신했고 콜론나도 몇 년 전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많은 동료들도 투옥이 되자 미켈란젤로는 외로운 사람이 됐다



   


   

   


   

이때부터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무덤을 장식할 조각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피렌체 대성당의 피에타에서 그는 자신을 니고데모로 묘사한다.

   

니고데모는 밝은 낮엔 용기가 없어 밤에만 예수를 찾은 성경 속 인물이다.

   

그는 이 조각상을 통해 진정한 신념을 표현할 수 없었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것이다



   


   

   


   

죽음이 다가 오고 있음을 느낀 그는 갖고 있던 그림과 편지들을 모두 불태워 버린다.



   


   

   


   

그리고는 성경 속에서 위안을 얻으며 그는 1564년 2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다음날 새벽 교황의 측근들이 작업장에 들이닥쳐 그가 남긴 유품들을 찾았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미켈란젤로가 죽기 직전까지 손질하던 론다니니 피에타만 덩그라니 남아있을 뿐이다.

   


   


   

   


   

그가 50년간 헌신했던 카톨릭 교구는 그의 장례에 대한 국장 예우를 허락하지 않았다.

   

피렌체에서는 단지 수 백명만 모여 눈물로 미켈란젤로에게 경의를 표했다.

   


   

미켈란젤로는 거장 이전에 진정한 신앙인이었다. 말년은 가난했지만, 그러나 그는 승리했다.

   

론다니니 피에타에 부제를 붙힌다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가 될 것이다.

   

거장의 마지막 작품을 떨리는 마음으로 바라 본 순전한 나의 생각이다

   

그라찌에 제수, 감사 예수.

   


   


   

, 사진: 곽노은

   


   


   

여행팁: 월요일(휴), 성 입장: 무료

   

입장 시간: 오전9시-오후 4시30분,

   

론다니니 피에타 전시관 포함: 5유로

   

http://www.milanocastello.it/en(카스텔로 스포르체스코 성 예약과 정보)



   


   


   

 


                                                                              

 

Rondanini Pi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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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의 이미지(6장)는 구글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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