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목사의 세상사는 이야기 (April 18, 2025)
"간질병을 극복한 사랑의 이야기"
예수님이 사시던 2천년전에는 사람이 갑자기 심정지로 죽었다면, “하나님의 벌을 받아 죽었다”거나, 간질병이나 자폐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보면, “마귀가 들어가서 몸에 이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간질병은 귀신이 사람안에 들어가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두뇌의 회로에 이상이 생기는 두뇌질환으로, 수술이나 약으로 관리해 가면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내 고등학교 친구 두 사람이 간질병이 있어서, 교실에서 간질발작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갑자기 몸이 흔들리다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눈이 돌아 가고 온 몸을 비틀고 뜨는 간질발작은 보는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이었지만, 본인이 겪어야 했던 그 창피함과 비참함은 건강한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한국의 고아원 출신의 어느 총각 전도사에게 그 지방의 감리사가 그 전도사에게 밥도 사 주며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감리사가 고아 출신 전도사에게, “사귀는 사람 있느냐? 결혼할 여자 있느냐?”고 묻자, 그 총각 전도사는 “결혼할 여자 있으면 좋겠는데 없어요.”라고 하자, 감리사님은, “내 딸을 소개시켜 줄까? 내 사위가 되면 어떨까?”하고 호의를 보여 주었다고 한다.
그 감리사는, “내 딸과 결혼하면, 내가 일찍 은퇴하고, 자네에게 내 교회를 물려 줄게. 그리고 우리 아들이 우리 교회 수석 장로이니, 많이 도와 줄 걸세”라고 하자, 총각 전도사는 감리사의 딸과 맞선을 보기로 했다고 한다.
감리사님의 딸을 만나 보니, 얼굴이 예쁘고 마음에 들어 결혼을 하고, 큰 교회의 목회자가 되어 그 전도사는 호박이 덩굴 채 들어온 행운을 누렸다고 생각 했다.
그런데, 결혼한지 세 달이 지난 어느 날, 집에 들어 갔을 때, 방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 보니, 아내가 눈을 뒤집고 몸을 비틀며, 침을 흘리며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간질발작을 하고 있었다. 그 젊은 목회자는 큰 충격을 받고 감리사의 딸이 간질병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지 않았던 감리사에게 큰 배신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 젊은 목회자는 아내와 이혼을 하고, 이제 “나는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느냐?”고 절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애초부터 감리사님이, “내 딸이 예쁘고 착한데, 선천성 간질병이 있어. 약으로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긴 하나, 이게 문제가 되어 결혼할 마음이 없다면, 이해하겠네. 내 딸과 결혼할 마음이 있겠나?”하고 솔직하게 얘기 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 전도사님도, “내가 고아라고 무시해서 간질병자인 딸을 나한테 속여서 넘기려고?”하며 화를 내기 보다, “간질병을 타고 난 딸을 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나? 간질병을 타고 난 아내는 또 얼마나 슬프고 괴로웠겠나? 내가 옆에서 도와 주어야지”라는 마음을 먹었더라면, 온 가족을 살리는 일이 일어날 수 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믿었던 장인과 아내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그 전도사는 “이제 나는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느냐?”고 절규를 했다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전도사에게 느꼈던 장인과 아내 역시 마음의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내 큰 형님의 딸인, 조카 지향이는 누가 봐도 얼굴이 예쁘고 상냥한 데다 음악대학 출신으로 장래가 기대되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대천덕 신부가 운영하던 예수원에 갔다가 전라도 출신의 지방신학교 출신의 전도사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그런데 그 총각 전도사는 간질병까지 있다고 했다.
나는 조카를 데리고 나가 둘이서 걸으면서, “요즘은 서울에 있는 신학대학원을 나와도 목회자로 밥먹고 살기 어려운데, 지방 신학교 나온 사람과 결혼하여 어떻게 먹고 살려느냐? 너 정도면 얼마든지 번듯한 남자를 만날 수 있을텐데, 왜 서두려느냐?”하며 나는 그들의 결혼을 반대하고 훼방을 놓았다.
그런데, 조카는 사랑에 눈이 멀어, 삼촌의 조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둘은 결혼하여 대전의 장로교의 전도사로 월셋방에 살면서 사랑의 보금자리를 만들었고, 건강한 딸과 아들을 낳고, 베트남 선교사로 10년, 우간다 선교사로 10년을 보내면서, 아이들은 선교사 자녀로 성실하게 공부하여,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딸은 한국 대전의 외국인 학교 교사로 있고, 아들은 한국 연세대에 다니다 중퇴하고 지금은 의과대학에 다니고 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던가? 조카가 사랑했던 간질병 총각은, 성품이 겸손하고 착한 목회자로 대전에서 목회를 하고 있고, 음악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