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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우여곡절▶③◀트라우마

2020.12.14


2020년12월14[월]일은

20년 전 오늘 향년 69세

뇌출혈로 떠나신 교우님.

2000년12월14[목]일 Vencor O.C

#301을 찾아가게 된 것은 뜻밖의 호출!

본당 교우는 아니었으나, 본당 신부의

 신신당부로 임종자병원을 찾았을 때는

(본당 신부님은 골프회동이 있었나?

아니면 본당 신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오전9시30분에 임종하셨고 찾은 시간은

오후1시였으니 대략4시간이나 흘러서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병실에는 아무도 없었고 단지 부인만이

숨이 끊어진 모습의 남편을 보면서

한없이 울기만 하였던 그 모습들이

20년을 넘어선 지금까지 떠오른다.

 임종자병원에 입원되어 있으면

임종하는 그 시간까지 가족들은

어떤 이유로든 자리를 비워서는

안된다는 절박함들을 잊었을까?

더우기 숨이 멈추고 임종 확인을

마치면 준비된 장례 수순에 따라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는 것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쏭달쏭?

뒤늦게 느긋한 모습으로 나타난

아들에게 신속한 준비를 전하고

(누구를 기다리는 듯? 도와 줄 이

있는 듯 하여서 혼선을 피하기 위해 또는

무슨 떡고물을 얻어 먹기 위한 제스처는 

해서도, 행하여서도 올바른 봉사는 못하니까!)

다시 일터로 되돌아 와서 일을 하려니

여러가지가 궁금하여 연락을 하였는데

임종하신 부친을 모시고 갈 영구차가

병원에 신속히 오는 것이 아니라 아들과

도와 주기로 한 누군가?가 장의사로

가고 있다니 말도 안되는 행위 아닌가?

이미 임종되시고 굳어진 상태의 모습.

장의사에서 무슨 볼 일이 있었을까?

숨이 붙어 있을 때는 장의사 요금이

변동될 수 있겠으나, 숨이 끊어지면

아무 소용이 사실상 없다는 것을!

온전하게 비뚤어진 몸상태를 잡고나

장례식은 행하여질지도 의문투성?

그렇게 느긋하게 대체하게 된다면

병원에서도 닥달을 몇 번 했을텐데!

빨리 장례 준비하고 모셔 나가라는 

통보를 했을텐데 왜? 그러고 있을까?

장의사로 가던 중간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며 황급히 병원으로 되돌아 가는 

중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뒤죽박죽되며

꼬이는 과정들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의구심만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는 기분을 갖었었다.

저녁 8시~8시50분에 빈소 방문하여

가족만의 장의사에서 거행할 15[금]일

 오후4시에 Viewing을 갖게 된다는 것.

16[토]일은 장례미사및 장지예식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81번째♥장례활동의 포문을 열었다.

가족만을 위한  Viewing시간 전에

Voult를 확인하기 위해 장지 방문!

살폈는데 두 단계 높은 물품으로

구입하였으면 좋겠다는 의견 제시!

{하관 하루 전에는 물품 교환이 가능하므로)

가족만의 Viewing시간에는 가족의

바램과는 달리 온전한 몸상태가 아닐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일부러 Casket의 아래를

열어 봐달라고 하고서 본 결과는

예상한 대로로 반듯하게 누워져 있지 

않았음을 보면서 자세 교정을 해주어야  했다.

대충 할 것 같았다면 애당초 관뚜껑을

열어 봤겠는가? 기왕 임하는 활동들을

어찌 대충에 맞출 수가 있었겠는가 말이다.

 병원에서 보았을 때의 그대로 모습으로

입관되었으므로 임시 방편으로서

미망인이 손녀를 업었던 포대기를 돌돌 말아

쏠린 하체부분에 포개 넣어 균형을

잡도록 조치를 취했고  그 과정의 모습을

몇 장의 사진에 담아 두었으며 장남에게

2000년12월20[수]일 전달, 차남에게는

2001년1월23[화]일 주거지로 발송하였고

부친께서 몸담으셨던 유일한 조화를 보낸

타주의 천주교회에 사진 4장 발송했으며

타주에 계시는 미망인께도 사진들을 발송.

유가족에게는 조금 안된 말일지 모르겠으나

2000년12월14일 이후에 밀려드는 년말

임종자들의 물결로 인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였겠지만

모든 과정들이 미지근하게 다급한 심정으로

임하지 못했던 유가족들의 미온적인 태도의

불찰에서 온 결과로 생각하리라 여겼었는데

끝끝내 가족 고별식에서 찍어 보냈던 사진들을

빌미로 꼬투리를 잡고 아직도 흔든다면 어느 누가

이렇게 궂은 과정들을 임하려고 할까 모르겠다.



2000년12월16[토]일 장지예식 후

바꾸어진 Vault와 Casket그리고 영정

그리고 시간이 흘러 비석이 올려졌다.

맨 처음에 제작된 올려진 비석이였고

그러다가 어느날에는 또 다른 비석으로?

2020년8월19[수]일 이 비석을 고수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오랫동안 기억하며

추모할 수가 있어서 보람찼었는데...!

그러나 유가족들은 그러하지 않았나?

타계하신 지도 10년하고도 2년을 더 보낸

싯점에서 무엇을 비뚤어지게 여겨 왔는지?

12년 전에 생업을 도와 주겠다며 교회의 

직분을 남용하면서 동조했었던 세력들과

혼돈의 시간을 보내게 힘썼던 유감적인

일들은 두고 두고 마음속에 남아 있으나,

언젠가는 모든 것들을 싸악~머리에서 지우면서

처럼은 동조세력(?)과 결탁, 이율적 배반

하며 이중적 잣대를 드러내며 살지 않겠다.

2018년도에도 교회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거짓 증언(?)을 했던지 심심찮게 찾아와서

이것 저것을 둘러보고 가긴 했다만 언제나

철이 들지? 모르겠다는 생각뿐만 들었다니까!

철저히 회심하기 바란다.

어디 그래서야 큰 그릇이 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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