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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어느 여름.

2021.01.23


아주 덥지 않은 여름이었다. 

아침에 아파트 문을 열고 나오니 옆집 문앞에 운동화 네컬레가 가지런히 있다.

이사온지 한 두달이 지났지만 옆집에 사람이 안 사는것 같았다.

그런데 신발 네컬레가 문앞에 밖으로 향하게 가지런히 있다.

누가 이사 왔나! 신발을 밖에 벗어놨네 하고 일하러 갔다.

돌아오니까 애 엄마가 옆집에 한국에서 이제 막 이민온 사람들이 이사 왔단다.

그래서 한국식으로 밖에다 신발을 벗고 들어 갔구나.

다음 날 옆집사람들을 만나니 전라남도 영암에서 이민을 왔다 한다.

애는 아들만 둘인데 초등학교 2학년 5학년? 그랬었던것 같다.

나도 사투리를 못 버리고 가끔 옆사람이 웃을 정도로 하는데 이 분들은 나를 능가했다.

바로 옆 동에 어제 같이 온 다른식구가 있었다.

그 집도 아들만 둘인데 나이는 이집 애들 보다는 조금 많았다.

재미 있었던것은 두 사람이 다 전씨인데 나까지 전씨이니 우연이다.

다른 가족은 서울에서 왔는데 스타일은 두 가족이 비슷했다. 

이민 초기이니 말은 전혀 안되고 차도 당근 없고 취업이민이라 일자리만 구한 상태였다.

그래도 두분이서 애들 학교도 바로 찾아 보냈다.

장 보러 갈때 나에게 부탁하곤 했는데 옆집 사람은 그래도 장을 봤다.

간장 큰병, 양파 큰거로 한자루 해서 간장에 양파를 담궈 김치처럼 먹었다.

그리고 계란, 바나나 두개정도. 

그런데 또 다른가족은 그 나마도 안 사고 필요없다고 해서 멀 먹는지 궁금했다.

차가 필요하다고 해서 중고차를 찾아 사줬는데 두분이 같이 사기로 했다.

나중에 보니까 역시 장도 안보는 독한 분이 차지하고 그래도 양파라도 잡수던 분은 차주에서 밀려났다.

어느날 오후에 퇴근하고 돌아오니 이상 야리쿠리한 냄새가 났다.

두 식구가 어디서 고사리를 엄청 뜯어와 말리고 있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말하길 "오메 재민아빠 고사리가 천지로 깔렸어라".

아파트 사람들이 말은 안 했어도 저런것도 먹나하고 이해가 안 됐을거다.

몇일후에 문을 두들겨 나가보니 수박을 한덩이 준다.

무슨 수박이에요 하고 물으니 그냥 드쇼.한다.

자기 아파트 문을 열때 보니까 아파트가 아니고 수박창고다.

옷장을 여니까 수박이 우르르 쏫아진다.

어떻게 된거냐니까 아따 멀라고 자꾸 물어봐 쌌오 하고 씩 웃는다.

두집이 어디서 수박 밭을 보고 왔는지 밤새도록 퍼 날랐다.

애들 시켜 수박 사라고 아파트마다 문 두들기고

더 재미 있었던건 다른 한국사람이 듣고 찾아와 수박밭이 어디냐고 묻는다.

그런데 옆집 아주머니 앞니가 전부 금이였다.

그 금니를 살짝 보이게 웃으면서 남편에게 묻는다.

"아따 누구 아빠가 수박밭이 어디냐고 묻소?"

"내가 어치게 안단가. 애말이요 당신은 아요?"

서로 눈치보면서 물어보는게 너무 우스웠다.

주말에 길가에 내놓고도 팔고 아무튼 별탈 없이 수박은 다 없엤다.

우리가 살던곳이 바다에서 20여분 떨어진곳이다. 해변가엔 백사장도 좋지만 

여름에만 문을 여는 놀이터가  많았다.

해변가에 지어논 아파트는 겨울에는 아무도 안 살지만 날씨가 따듯해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들어와 테라스에서 선텐을 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 

대부분이 백인들이었는데 대부분 피부에 검버섯 같은게 많이 보였다. 

백인들이 선텐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파트들이 동쪽바다  대서양을 보고 있으니 해뜨는것도 보이고 

아침부터 일광욕하기가 좋아 누워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주말이면 고기 잡겠다고 바다에 갔었는데 나는 어느정도 잡아도 된다는 크기를 잡지 못 했는데 

이 분들은 큰것 작은것 구분이 없었다.

아주 작은 새우가 밥상위에 있어 물었더니 집에서 그물을 만들어 새우잡이를 갔는데 

작은 새우만 걸려 소금에 절여 먹는다나.

어느날은 퇴근길에 고속도로를 달려 오는데 옆집 차가 길가에 서 있었다.

차를 옆에 대고 봤더니 두집 부부가 숲속에서 멀 찾는지 보물찾기 하듯이 왔다갔다 한다.

누구아버지 머 하세요? 하고 물으니 "아따 더덕 냄새가 징하게 나서 더덕 찾고 있소."

여기다 차 데고 있다가 경찰에게 걸리면 큰일 나니까 얼른 가세요 하고 겁을 줬다.

아마 다른데 세워놓고 다시 갔을거다.

또 한번은 배추 김치를 담궜다고 한그릇을 주는데 배추가 우리가 먹는게 아니고

셀러드하는 종류같았다. 어디서 배추 밭을 발견해 또 한차를 실고 온것 같았다.

그런데 이번엔 다른 한국 사람들도 알아가지고 실고 왔다 한다.  

밭 주인이 기절 했을거다. 멧돼지라도 나왔나 하고.

여름이 가기전에 식구들이 한국에 나가 혼자 있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주머니가 밥을 먹으라고 부르면 참 힘들었다.

거절하기도 그렇고 해서 항상 먹었다고 둘러데고 섭섭해 할까봐 밥상까지만 갔다 왔다.

이제는 고깃국도 있고 반찬도 제법 종류가 많아 졌다.

매주 두사람이 일해서 받는 돈이 그 시절 한국임금보다 엄청 많아 

먹거리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을거다.

 

일년쯤 살다가 큰 도시로 이사 가겠다고 해서 취직자리를 찾아줬다.

비행기 청소 하는건데 영어가 짧았던 부부가 하기엔 너무 좋았다. 

새로 이사하는곳이 사는곳에서 거의 세시간정도 운전을 해서 가야하는데 

그때까지도 이 분이 길에 써진 글을 빨리 못 읽었다.

세시간을 내가 운전하고 옆자리에 앉아 갔는데 찾아 올수 있겠어요 물으니까 

다 봐 났어라 한다.. 30분쯤 오면 길이 몇갈레고 한시간쯤 오면 빨간 간판이 보이고...

그런데 나중에 이사를 확실히 갔다. 나 없이.

한국에서 공무원을 했는데 나중에 작은 애가 미국에서 제일 좋다는 의과대학을 갔다.

동네 신문에도 크게 났다. 학교 졸업생중에서 그 학교에 입학한게 처음 이었으니 경사였다.

이 꼬마가 처음 학교를 갔을때 애들이 놀렸는지 아니면 놀렸다고 생각을 했는지

수업시간에 벌떡 일어나 이 새끼들 다 죽여 버린다 고 악을 썼단다.

꼬마 말로는 애들이 흉 보는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다.

학교에 불려갔는데 내가 같이 갔다.선생이 묻는다 애가 큰소리로 머라고 했는데 무슨 말이냐고?

애들이 영어 못한다고 놀리는것 같아 조용히 하라고 했다니 그냥 웃고 만다.

영어가 조금 될때 부터는 학교에서 모든면에서 엄청 잘하는 우등생이 됐다.  

또 한가족도 나에게 따졌다. 왜 그 사람만 취직을 시켜주고 자기한테는 말을 안 하냐고.

결국 두 가족 다 직업을 비행기 청소로 바꿨다.

이 가족은 여전히 밤에 불도 안 켜고 살 정도로 지독했는데 이사 간 후엔 만나질 못 했다.

우리도 다른곳으로 이사를 하고 몇년후에 식구가 차로 여행을 떠난다니까 

꼭 한번 보자고 해서 돌아오는 길에 들렸다. 

여전히 아주머니는 금니를 자랑하고 있고 이젠 집도 사고 가게도 해서

예전의 부족함은 다 없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런데 쉽게 잊기 힘든 기억을 또 하나 만들어 줬다.

자기 집에 있는 가구가 다 한국에서 가져 왔는데 고급 이태리제라고 자랑한다.

보기엔 평범하고 비싸지 않고 어찌 보면 공으로 줘도 안 하겠는데 자랑을 늘어논다.

가구 뒤를 얼핏 봤더니 한글로 상호가 적혀있고 Made in Korea 가 보였다. 

웃으면서 자랑하는 두툼한 입술 속에 보이는 금 덩어리가 가구값보다 더 할것 같았다.  

이제는 어디서 사는지도 모른다. 헨드폰이 대중화 되기전이라 

연락하던 가게전화가 안되니 연락할 길이 없다. 

종이지도로 찾아갔던 주소도 어디로 사라지고 그져 기억속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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