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관련:
2017년 5월 4일 성주. 위안부로 알려진 이용수 曰: “저는 성주 벽진면 봉계동에서 태어났습니다. 15살에 밤에 자다가 군인이 와가지고 끌려갔습니다. 요번에 대통령이 되는 사람은 첫째 이 사드 문제입니다. 대한민국 세우면 안 됩니다. 어느 곳이든지, 우리 성주는 물론이고요. 우리 대한민국에는 절대로 못 세우고, 세우면 안 되는 겁니다.” 주목할 말,“나이 15살에 군인에 끌려갔다.” (당시 위안부 자격은 최소 18세, 만 17세였다 한다.)
2017년 11월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당국자들은 위안부 이용수씨와 트럼프 대통령과 포옹하게 하였다.

▲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의 증언 변화는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위 도표의 증언들은 모두가 주요 언론 인터뷰나 미국 의회, 프랑스 의회에서 나온 것들만 모은 것인데, 이런 중요한 증언들도 도대체 아귀가 맞는 게 없다.
이용수의 1993년 증언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 증언집’(한울)에 수록(해당 책 123~124쪽).
1944년, 내가 만 열여섯 살 때 가을의 일이다. 그때 우리 아버지는 미창(米倉)에 나가서 쌀을 져나르는 잡역부로 일하고 있었다. 내 동갑내기 친구 중에 김분순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어머니는 술장사를 하고 있었다. 하루는 내가 그 집에 놀러가니까 그 어머니가 “너 신발 하나 옳게 못 신고 이게 뭐냐, 애야, 너 우리 분순이하고 저기 어디로 가거라. 거기 가면 오만 거 다 있단다. 밥도 많이 먹을 거고, 너희집도 잘 살게 해준단다”라고 했다. 당시 내 옷차림새는 헐벗고 말이 아니었다.
며칠이 지난 후 분순이랑 강가에 가서 고동을 잡고 있었는데, 저쪽 언덕 위에 서 있는 웬 노인과 일본 남자가 보였다. 노인이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키니까 남자가 우리쪽으로 내려왔다. 노인은 곧 가버리고 남자가 우리에게 손짓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무서워서 분순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대쪽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어느날 새벽, 분순이가 우리집 봉창을 두드리며 “가만히 나오너라” 하며 소곤거렸다. 나는 발걸음을 죽이고 살금살금 분순이를 따라 나갔다. 어머니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그냥 분순이를 따라 집을 나섰다. 집에서 입고 있던 검은 통치마에 단추 달린 긴 면적삼을 입고 게다를 끌고 있었다. 가서 보니 강가에서 보았던 일본 남자가 나와 있었다. 그는 마흔이 좀 안 되어 보였다. 국민복에 전투모를 쓰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옷보퉁이 하나를 건네주면서 그 속에 원피스와 가죽구두가 있다고 했다. 보퉁이를 살짝 들쳐 보니 과연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두가 보였다. 그걸 받고 어린 마음에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만 다른 생각도 못하고 선뜻 따라나서게 되었다. 나까지 합해 처녀가 모두 다섯 명이었다.
그 길로 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고 경주까지 갔다. 그때 나는 생전 처음으로 기차를 타보았다. 경주에 가서 어느 여관에 들어갔다. 여관 앞 개울가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산비탈에 보라색 꽃이 한송이 피어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꽃이어서 무슨 꽃이냐고 물어보니까 도라지꽃이라고 했다. 거기서 이틀밤인가를 지냈는데 또 여자 두 명을 더 데리고 왔다. 그래서 여자가 모두 일곱 명이 되었다. 경주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를 지나가게 되었다. 달리는 기차의 깨진 유리 차창 저편에 우리집이 보였다. 그때서야 비로소 집생각이 나고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난 우리 엄마에게 가야 한다고 하면서 막 울었다. 옷보퉁이를 밀치며 이거 안 가질테니 집에 보내 달라고 하며 계속 울었다. 울다가 지쳐서 곯아떨어졌는데 얼마나 갔는지 모르겠다. 여러 날을 간 것 같다.
이것이 과연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인가? 이 증언만으로는 친구 “김분순”의 유혹에다가 본인의 자발성도 있는 가출행위(家出行爲)인데다가, 술장사를 하던 “김분순”의 어머니가 “김분순”과 이 씨를 인신매매(人身賣買) 대상으로 삼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관련 업자들에 의한 유인사기(誘引詐欺)의 혐의도 엿보인다.
특히 이 씨의 저 1993년도 증언은 매우 구체적인 내용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복장이 “검은 통치마”, “단추 달린 긴 면적삼”이라는 내용, 그리고 자기를 데려간 일본인 남자가 “마흔”이 좀 안 되어보였다는 내용, 그 일본인 남자가 “국민복”에 “전투모”를 착용했다는 내용, 그리고 자기를 유인하기 위해서 “원피스”와 “가죽구두”를 줬다는 내용까지.
이는 이용수가 가장 젊은 시절에 했던 공식 증언이기도 하고, 누가 봐도 이 증언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용수는 이렇게 업자들에 의해 유인되어 대만 일본공군 기지에서 위안부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한겨레’ 1997년 9월 6일자 기사 ‘위안부 할머니 울지 마세요!
더 많은 정보 >>
https://mediawatch.kr/news/article.html?no=253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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