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16회] 우등생 졸업 답사에서 충성다짐

2018.12.18

박정희가 합격통보를 받고 1940년 2월 중순경 대구에서 만주로 출발할 때 환송식이 열렸다.


당일 행사는 문경보통학교 바로 옆에 있는 버스정류장 자리였다. 마침 봄방학이어서 환송식 행사는 몇몇 동료 교사와 학생 5~6명만이 모습을 보였고, 그 밖에 주민들이 더러 참석했었다. 이들은 길 양 옆으로 도열하여 만주로 가는 박 교사를 환송했다. 


당시 전송식 행사장에 참석했던 오태구(31회 졸업, 97년 당시 69세)는 “학교에서 간단한 행사를 마치고 참석자 일행이 버스정류장까지 따라나가 길가에 도열해 박 선생님을 전송했다”며 “당시 박 선생은 붉은 글씨가 씌어진 띠를 머리에 두르고 있었으며 전쟁터에서 목숨을 지켜준다는 ‘선센바리(天人針)’도 들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박 교사는 전송나온 동료 교사들에게 “전사 소식을 접하면 향 한 대나 피워주게”라며 짧고도 비장한 한 마디를 던졌다. 그리고 훌쩍이는 어린 제자들의 어깨를 다독이며 “섭섭해 하지 말아라. 긴 칼 차고 대장이 돼 돌아오겠다”고 위로했다. 그가 만주에서 보낸 편지가 제자들에게 날아든 것은 이로부터 대략 한 달 뒤였다.



박정희가 입교한 만주군관학교는 괴뢰만주국 수도 신경(新京, 현 장춘) 교외 라라둔(拉拉屯)에 있었다. 일명 동덕대(同德臺)라고도 불렸다. 제2기생은 만계와 일계가 각각 240명 씩 도합 480명이었다. 조선인은 모두 11명으로 만계에 포함되었다.

 

일제는 괴뢰만주국을 세우면서 만주는 물론 중국대륙 전체를 경략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한(漢)족, 만주족, 몽골족, 조선족, 일본족 즉 ‘오족’ 중에서 우수한 청년을 뽑아 간부 군인으로 양성하고자 군관학교를 만들었다. 또 ‘오족협화회’를 조직하여 어용기관화하고, 고급관리 양성기관으로 ‘대동학원’을 설치했다. 여기 출신으로 대표적인 인사는 전 대통령 최규하를 비롯, 서정귀ㆍ황종률ㆍ고재필ㆍ이충환ㆍ김병화ㆍ안광호ㆍ정범석ㆍ김규인ㆍ김사수 등이 있다.

 

만주군관학교 1기생 조선인 중에는 이주일ㆍ김동하ㆍ윤태일ㆍ박임항ㆍ방원철 등 5명이 박정희가 주도한 5ㆍ16쿠데타에 가담하였다. 이들은 쿠데타에서 주로 병력 동원의 중요한 역할을 하여 큰 기여를 했지만, 쿠데타 성공 뒤에는 권력투쟁 과정에서 박정희ㆍ김종필 세력에게 거세되었다. 박정희의 동기생 중에는 이한림이 있었으나 그는 쿠데타 저지에 나섰다가 역시 제거되었다. 

 

신경군관학교 예과과정에 들어간 박정희는 제3련(連) 제3구대에 소속되어 군사훈련을 받고 1942년 3월 졸업했다. 졸업식에서 일계 2명, 만계 2명과 함께 우등생으로 선정되어 만주국 황제 부이의 금장 시계를 상으로 받았다. <만선일보>의 기사다. 이 신문은 당시 만주에서 발행된 한글신문이다. 

 

북변수호의 전위에 당하는 국군의 지도자가 되려고 호국의 열정에 타면서 2개년의 과정을 마친 금년도 육군군관학교 제2기 예과생도 강견상언 (岡見尙彦) 이하 OO명의 졸업식은 23일 국도교외 라라둔 동덕대 륙군군관학교에서 성대히 거행되엇다.……동 교정에서 우대신 집행의 관병식을 한 후 졸업생 일동은 동교 무도장에 정렬, 생도 대표 강견상언(岡見尙彦), 소산중가(小山重嘉) 양군의 강연, 유ㆍ검도의 연련, 측도작업의 실습 등을 하였다. 이리하야 열한시 50분부터 다시 교정에 정렬한 후 졸업증서 수여와 … 빛나는 우등생 강견상언(岡見尙彦) 일계(日系), 소산중가(小山重嘉) 일계(日系), 고목정웅 선계(高木正雄 鮮系) 등 5명에게 각각 은사상증의 전달이 잇고 폐식하였다. 


 수석 졸업하는 박정희 생도


이 기사에 나오는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가 창씨개명한 박정희다. 다카키 마사오는 대구사범의 꼴찌 수준에서 뛰어넘어 240명 졸업생 중에서 수석졸업의 우수성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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