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40회] 하우스먼의 역할 주목

2019.03.07

박정희와 제임스 하우스먼


하우스먼은 한국군부와 미국(미군) 사이에 조정역할을 한 핵심 실력자였다. 


이승만-장면정권에서 국군의 인사와 주요 보직이 그의 영향력에서 좌우된 경우가 적지않았다. 5ㆍ16직후 박정희가 하우스먼을 찾아왔다. 


“5ㆍ16이 있은 바로 그 다음다음 날이었다. 박정희 장군이 5월 18일 나를 만나러 8군 캠퍼스 안의 우리집에 오겠다고 통보해 왔다. 우리집은 아래쪽으로 긴 계단이 놓여 있었다. 대문 앞에 지프 소리가 난 후 레이밴 안경을 걸친 박정희가 나의 오랜 친구이자 ‘한국의 지장’으로 알려진 강문봉을 통역자로 대동하고 문간을 들어섰다.” 


지미(아들)가 박의 휘발유 떨어진 라이터를 채우고 있는 동안 박은 강문봉의 무릎을 쓰다듬으며 “이 사람이 참모총장이 돼야 하는데……”라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는 나에게 강 장군은 위대한 군인이며 이 사람이야말로 한국 육군참모총장이 돼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해 오기도 했다. 


이날 박정희가 나를 찾아온 것은 그의 공산당 전력을 새삼 설명하러 온 듯 했다. 


박정희가 만난 하우스먼은 쿠데타의 주동자답게 실질적인 위치에 올라야 한다고 하는 등 ‘조언’을 하고, 다음 날 ‘공무 반 휴가 반’의 목적으로 본국으로 돌아가 육군참모총장, 미중앙정보국장, 국무부, 그 외 여러 요로 찾아 한국사태를 설명했다.


“이때는 박의 쿠데타군을 무력으로 진압할 것인가 어쩔 것인가, 그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킬 것인가 어쩔 것인가를 두고 국무부와 국방부의 견해가 일치하지 않았고, 국방부ㆍ육군ㆍ합참 안에서 상당한 견해 차이가 있을 때여서 나의 보고는 그들의 한국사태 진단에 상당한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우스먼이 미국으로 하여금 박정희의 쿠데타를 인정하게 하는 쪽으로 물꼬를 돌렸다. 그는 얼마 후 이 역할로 미국방장관으로부터 장문의 공적서와 장관 공로 표창장을 받았다. 


5ㆍ16쿠데타를 가장 반긴 나라는 일본이다. 


5ㆍ16이 일어나 주동자의 이름과 사진이 일본 각 신문 제1면에 보도되자, “만군 출신의 박정희라 - 그렇다면 그가 ‘도꾸또오 니뽄징(특등 일본인)’ 다카키 마사오가 아니겠느냐.” 한편으로 놀라고 한편으론 무릎을 치며 환호성을 울린 일본사람들이 적잖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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