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

독일 드레스덴 마차타고 구경하기

2018.05.18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영 연합군 폭격기들의 대규모 폭격작전이

종전 직전인 1945년 2월 13일~2월 15일에 걸쳐 행해졌다 ,


드레스덴의 폭격은 

유럽 전선의 폭격 작전 중 

가장 큰 피해를 준 작전이자

 가장 크게 논란을 일으키는 작전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폭격기들은 

"독일인들은 누구든지, 제복을 입었든지 않았던지를 가리지 않고 모두 합법적인 표적이다" 

라는 명령을 받고 출격했다, 


"엘베 강의 피렌체"라던 드레스덴은 

그야말로 잿더미가 되었다. 

드레스덴 시가지 중 6.5㎢가 파괴되었으며 

15만 채 이상의 집들이 파괴되었다,

 

사망자 수는 약 35,000명으로 추정되지만 

아직까지 행방불명 상태의 인원까지 합치면

 100.000명까지 그 수가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 만들어 세운 건물

 95%가 불에 타고 파괴되었다, 


전쟁은 독일이 졌고 히틀러도 갔지만 , 

 드레스덴에서 중요한 교훈은 역시

 전쟁에 대한 큰 교훈이다


 

1시간 정도에 25 유로를 달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 자전거에 태워 구경하는 것도 25유로였다,



고풍이 물씬 풍기고 있는 건물 사이로

 노란색 버스 한 대가 지나간다,
왠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같이 붙어 있는듯했다,

 

과거에 도시 곳곳에 세워졌던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과 예술품들 덕분에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1711∼1722년에 건립된 바로크 양식의 츠빙거 궁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궁전들과

드레스덴 미술관 등 유명한 건축물과 회화 등 많은 문화재가 있고, 

드레스덴 국립 관현악단과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의 이름을 딴 

젬퍼오퍼(Semperoper)라는 오페라극장 등이 있어

 예술의 도시, 음악의 도시로서 알려져 있다.


현재 독일 남동부에 있어서의 

경제·교통·문화의 중심 도시이며,

 항공기 제조, 자동차 제조, 정밀 광학기기·기계·화학·담배 등 

각종 공업이 발달되어 있다. 

또 도기로도 알려져 있며 1828년에 창설된 공과대학과 

조형미술·음악·교통·의학 등의 대학이 있고, 

도서관·방송국·박물관 등의 문화 시설도 잘 정비되어 있으며, 

특히 베버, 실러, 슈트라우스, 에리히 케스트너등과도 

연고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드레스덴은 앞서 위에 본래 슬라브족의 취락지대였으나 

게르만의 식민에 의하여 1200년 이전에 성이 구축되고, 

1206년에 도시가 되었고 이후 마이센 변경백인

 하인리히가 거성울 구축했다. 

허나 그가 죽은 후 보헤미아령, 브란덴부르크령으로 전전하다가

 14세기 초에야 다시 마이센 변경백령으로 복귀했다.


15세기 후반 마이센 변경백의 베팅가문이 분열하였을 때,

 드레스덴은 알베르트계 베팅가에 속하고, 

17세기에 베팅가가 작센 선거후의 위치를 굳혔기 때문에 

그 수도가 되었다. 

그 무렵 1600년대 신성 로마 제국내에서 발생한 30년 전쟁과 

1685년의 대화재 등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거나 전소되자 

도시 주위에 성벽을 구축하고,

 18세기에 이르러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1세와 2세가

 각종 문화시설을 정비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들을 세우면서

 독일 유수의 도시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7년 전쟁 때 작센이 오스트리아에 

가담하였기 때문에

 프로이센군의 포격을 받아 도시는 파괴되었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 때 작센이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계기로 나폴레옹이

 이 도시를 작전기지로 삼고 동맹군과 싸웠기 때문에

 적지 않은 손상을 입었다. 

이후 19세기에 들어 산업화로 인한 경제 붐이 일어나면서

 초기 단계의 기계 엔지니어링, 자동차, 항공, 카메라, 초콜릿 산업 등이 발달하기 시작, 

1945년 이전 드레스덴은

 독일의 주요 도시 중 가장 활발한 산업도시 역할을 했다.


세계 2차 대전이 시작된 후

 드레스덴은 독일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후방에 위치해 큰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전쟁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2월 14일 영국군의 폭격(드레스덴 폭격)으로 

수많은 고(古)건축물들과

 공장시설이 파괴되는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고

 종전 후 동독령으로 들어가면서

 전쟁보상으로 주요 공장들이 해체되고, 

기업들은 본사를 서독으로 이전했다. 

그나마 많은 숙련된 전문 인력들은 동독에 남았다.

(독일 교포신문에서 참조 가져옴) 









광장에 앉아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주변의 분위기를 봤다,

관광객의 입장에서  전쟁 때 부서지고 죽어간 

많은 사람이 묻힌 곳이란것을 안다면  

 이곳이 조금은 괴로울 수도 있을 거란 생각도 가져봤다,

저 많은 관광객들은 

이 역사적인 사실을 알고 구경들을 하는것일까,,, 


하늘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며 

폭탄을 뿌려 되는 조종사들의 마음은 

어땠을까도 생각해 본다, 

어찌되었건  전쟁의 원흉인 

독일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도 없는 

이상 복잡한 마음이

 이곳 드레스덴을 구경 하는 동안

끊임없이 나왔다,

누구든 간에

한번쯤은 생각을 할수 있을거라고 본다,


광장의 아름답게 복원된 어느 건물에서

 아직 애티가 나는 어린 신랑 신부가 

즐겁고 행복한 미소를 띠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전쟁에서 얻어터져 수많은 사람이 희생된 이곳에선 

지금은 새하얀 드레스와 멎진 양복을 입고

 행복해 하는 두 젊은 신랑 신부에게 

주변 사람들은 환호를 보내주었고

 젊은 부부는 찬란하게 내려 찌는 햇빛처럼

 맑은 미소로 답을 주고 있었다,











강가를 거닐다 보면 군데군데 카페가 보이는데 

어김 없이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그룹은 꼭 있었다, 


이곳 강가 어디쯤 

어느 블로거가 올린 맞 좋은 

식당이 있는 곳이라는 정보를 올렸다고 한다, 


그곳을 찾아 몰려드는 젊은 한국인들이 많았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평범한 식당 중에 하나였는데

 굳이 이 강가 어디쯤 있는 그 식당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이 더 이상하게 보였다,







드레스덴 예술 아카데미 하우스





독일 드레스덴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도 요즘은 한인들이 

한인들을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를 해도 먹고 살 거 같았다, 

드레스덴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드레스덴을 검색하다

 한인이 운영하는 민박집도 여기저기 나타나는데 

3군 정도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대게 하루 민박 요금은 35유로 정도로 정해지지만,

 화장실이 포함된 독방을 쓰고 싶을 때는

 60유로 정도가 거의 일반화 되어 있는 것 같다, 


이번 여행 때 한 번도

 한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을 이용해 본 적은 없지만

맨 마지막 여행 때 크로아티아에서 

민박집의 도움을 받은 적은 있었다, 


자유여행을 하면서 근처 어딘가에

 한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유여행을 떠날 수 있는 용기가 나지 않을까,,







젬퍼 오페라 하우스

 엘베강을 옆에 낀 채 우뚝 서 있는 모습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고트프리드 젬퍼라는 설계자에 의해 

작센왕궁 극장으로 1831-1834년 3년 간 세워진 

첫번째 젬퍼 오페라 하우스다,


하지만 1861년 불에 타버리고 작센왕국에서 재건축을 시작해

 코트프리드 젬퍼의 큰아들인

 만프레드 젬퍼의 설계에 의해서 

오늘과 같은 모습의 더욱 멋진 오페라 하우스가 세워졌다,



 

 유명한 음악가들이 이곳을 많이 거쳐갔는데,

 특히 리하르트 바그너와 베버 등이 단연 유명하다,


 한국의 정명훈 지휘자도 자주 방문해서 연주하며

 많은 한국 음악가들이 찾고있는 꿈의 

오페라 하우스다,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며 세계적으로도 

유명 한곳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선언을 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드레스덴은 독일이 서로 

분단국가였던 당시에 서독의 총리가

통일은 독일 국민의 힘으로'라고 

선언했던 곳으로도 유명한곳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했던 발언 역시

 이 드레스덴 선언을 인용해서

이곳 드레스덴을 방문해 통일에 대한 구상의 디딤돌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안에 대해 제시했다,



...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제안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남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문제 해결  

모자패키지(1000days) 사업,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 남북의 동질성 회복

금융, 조세관리, 통계 등 교육훈련 지원

남북교류헙력사무소 설치

비무장지대(DMZ)에 세계평화공원 조성

역사연구 및 보전, 스포츠와 문화예술 교류 등 장려


-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교통, 통신 등 인프라 건설 투자

나진, 하산 물류사업 등 남북중러 협력사업 추진

복합농촌단지 조성







마차를 타고 기분 좋은 바람은 맞으면서 

돌아보고 있을 때 

 문득 드레스덴은 온갖 시련을 다 겪고  

비로소 성숙하고 어른이 된 도시 같이 느껴졌다, 


심한 폭격에 온통 부서지고 깨져버린 몸이

 치유되고 다시 꿋꿋하게 일어선 도시, 


절룩거리는 도시처럼 느껴지지만, 

그 절룩거림이 오히려 더 어른다워 보이는 도시 드레스덴, 


나는 우연히 하루의 일정으로 들러본 

드레스덴을 절대 잊지 않을 것 같다,



 

드레스덴 마차여행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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