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여행

LA 관광회사의 변천사와 바스토우의 역할

2020.06.20

LA 한인 관광회사들의 발자취는 미국 서부 한인들의 이민 역사의 한 획을 긋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결과, 이제는 한국및 세계 각국에서 LA 로 찾아 오는 한인관광객을 맞이하면서 제대로 된 관광을 실행하는 관광사들로 자리 잡았다.

LA 한인 관광회사의 역사는 한인타운이 형성되면서 시작되었지만 초기에는 대부분 관광사들이 10인승 밴으로 손님들을 모시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1988년 1월달을 깃점으로 한 단계 업그래이드가 되었다. 이전까지는 10인승 밴으로 드라이브와 가이드를 겸한 소형차 투어를 실행해 왔었는데 1988년 1월달 LA 로칼 관광사들이 의기투합해서 각 관광사에서 모객을 하되 실행단계에서는 고객분들을 한 관광사로 몰아주어서 10인승 밴 대신에 대형버스로 투어를 실행하자는데 십시일반 동의를 해서 대망의 시험 투어가 시작되었다. 그때 처음 실험적으로 charter 를 했던 버스는 55인승이 아닌 45인승으로 흑인 오너 아저씨가 직접 모는 낡은 버스였다.

그당시 LA 로칼 여행사로는 새로나관광, 파라다이스관광, 매일관광, 한국관광, 서부관광등의 관광사가 있었다. 실험투어에는 다섯 회사의 가이드 분(김순웅 가이드를 비롯한 8명)들이 모두 참여를 해서 첫 버스투어를 시도했는데 우연히 그 역사적인 첫시도의 페키지 투어에 우리가족이 참여를 하게되었다.  각회사에서 모객을 한 손님들을 비롯하여서 각 관광사를 대표한 가이드 분들이 모두 한차에 타고서 진행된 이색 여행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가이드 분들을 포함하여서 가이드 분들만 8분이었다. 여행 도중에 입담이 걸죽한 가이드 분들이 경쟁적으로 우스개 소리를 해대니 여행 기간 내내 박장 대소를 했던 기억이 있다.

시험 첫 투어라 진풍경도 여기저기서 볼수 있었다. 식사때와 숙박 때마다 각사의 가이드분들이 깃대를 들고 무슨 여행사 분들 여기모이세요 하면 그곳으로 옹기종기 쫒아가서 지침에 따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만 해도 첫날 점심은 당연히 휴계소에서 먹는 김밥이였으며 저녁 식사는 여행사에서 공수해온 전기밥솥으로 가이드분들이 직접 쿡을 해서 모텔방에서 함께 식사를 하던 시절이었다. 여행때의 고생은 추억으로 평생 남는다고 누군가가 얘기했듯이 김치와 불고기 반찬으로 함께모여서 먹었던 그때의 저녁식사를 난 아직도 잊지못하고 있다. 실험적으로 실행되었던 첫 대형버스 투어때에는 다섯 여행사에서 저녁을 따로 준비를 해왔었다. 어떤이는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각 여행사가 제공한 저녁반찬을 맛보고는 모여행사의 반찬이 제일 맛있다는 결과를 발표하는 이도 있었기에 소풍을 온것처럼 깔깔대며 여행을 하던 시절이었다. 참 정겨웠고 재미도 있었다. 첫날 점심은 김밥이지만 둘째날 부터는 주로 맥도날이 점심이 였으며 저녁은 양식 혹은 운이 좋으면 중국식 음식이였는데 미국손님들의 입맛에 맞게 한 중국요리였기에 음식들이 우리의 입에 맞을리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때만 해도 고추장을 조그만 병에 담아서 투어시 필수품으로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초창기 관광회사의 주 고객들은 힘든 이민생활을 하면서 몇년만에 어렵게 마련한 가족 여행에서 부터 한국의 부모님을 초청을 해서 미국 관광을 시켜드리는 경우, 미국 회사에 상담차 들린 회사 중역내지는 중소기업 사장님들과 사모님들, 닥터 부부들 등 한국의 상류층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렇게 시작된 시험투어를 계기로 LA 관광사들은 1988년 1월달을 깃점으로 본격적인 대형버스 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각 관광회사들은 살아남기 위한 출혈 경쟁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오늘날의 LA 한인관광회사의 역사를 만들었다.

새로나관광, 파라다이스관광, 매일관광, 한국관광, 서부관광 외에 그 후에 런칭한 회사로는 한인관광, 호돌이관광, 아주관광 그리고 버스 Charter 회사인 해바라기에서 운영하던 해바라기관광을 인수해서 상호를 변경한 삼호관광을 비롯하여서 조은관광등 수많은 관광사들이 오픈을 하였으나 많은 회사들이 출혈경쟁으로 인한 얕은 이문으로 오래 견디지를 못하고 문을 닫았다. 이들 회사중 요즘까지도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회사로는 삼호관광, 아주관광이 있다. 그리고 티켓팅업을 중점으로 하다가 관광업에 진출한 춘추관광 그리고 몇년전 동부에서 LA로 진출한 푸른투어등이 현존하고 있다. 이외에도 인바운드 전문 여행사와 인센티브 전문 여행사들이 다수있다. 한때 한국에서 미주지사형식으로 진출한 하나투어USA가 오픈하였으나 오래 견디지를 못하고 폐업을 하였다.


가이드님들과 여행사간의 분쟁

가이드를 하시는 분이 정식 직원이냐 아니면 프리랜스냐는 문제로 로칼 여행사들은 한때 몸살을 앓았다. 

가이드 분들과의 송사에 휘말려 문을 닫은 업소도 있었다. 예를 들면 모 관광회사는 가이드를 정식 직원으로 인정하여서 밀린 임금을 지불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자 스스로 문을 닫아버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민감한 사안이라서 더이상 여기에서 거론하지 않겠다.


LA 한인 관광회사는 경쟁이 심한 편이다. 그러다 보니 때론 울며겨자먹기식으로 페키지를 진행하게되고 어떤 경우에는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또한 가이드분들은 회사의 Loss 된 부분을 메꾸기 위해서 관광상품중의 옵션을 권하게 되고 이러한 옵션 강요(?)는 고객분들과 언쟁이 오가기 마련이다. 지금이야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이 팁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지만 초창기에는 팁으로 티격태격하기가 일쑤였다.

한국에서 여행자유화가 시작되고부터는 각회사별로 버스를 Charter 해서 실행을 할 정도로 모객이 가능했기에 그때부터 각회사 페키지별로 자체 운영을 하고있다. 하지만 항상 손님들이 버스 1대 수준으로 자체 실행 할만큼 모객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엔 부득이 실행이 가능한 상대 회사로 손님들을 인계하기도 한다. 이래 저래 경쟁때문에 티격태격 하면서도 서로 도와야만 하는 LA 관광회사의 실태이다.



바스토우

LA에서 라스베가스나 그랜드캐년쪽으로 여행을 하다보면 꼭 거쳐가야하는 곳이 바스토우이다. 이곳에서 라스베가스로 가는 15번을 타고 곧장 가거나 아니면 그랜드캐년 사우스림, 세도나 혹은 라플린으로 향하는 분들은 40번으로 갈아타야하는 곳이기도 하다.

바스토우는 역사적으로 교통의 요지였다. 말을 타고 달리던 1880년대부터 이곳은 인근지역에서 몰려오는 물류들을 구분하여서 목적지로 향하게 하는 디스트리뷰션을 주선하던 곳이였다. 

얼마전 중앙일보 기사에 의하면 1800년대초에 개척이 되었던 올드 스패니쉬 트래일을 바스토우시에서 역사적 상징성과 경제적 자원으로 보존하는 재개발을 계획하고 있다한다. 

올드 스패니시 트레일은 1800년대 초에 캘리포니아주 LA 부터 뉴멕시코주 산타페까지 물류유통의 통로였다. 그런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서 현재에도 LA를 비롯한 미서부의 물류들을 바스토우에 결집을 시켜서 목적지인 미 내륙지역으로 각각 분류를 해서 기차로 운송을 해주는 물류센타가 되고 있다. 


마일즈 기차 


바스토우 인근지역으로 여행을 하다보면 셀수 없을 정도의 화차들을 싣고 달리는 긴 기차의 모습을 볼수 있다. 이 기차들은 바스토우로 오고가는 기차들이다. 워낙 많은 열차량들을 끌고가기에 그길이가 몇마일에 달한다해서 일명 마일즈 기차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마일즈기차에는 앞쪽, 중간쪽, 뒷쪽에 기관차가 연결되어서 당기고 밀어주는 역할을 한다. 기관차가 앞쪽, 중간쪽, 뒷쪽에 위치해 있는 또다른 이유는 분류지점에서 화차들이 목적지 별로 쉽게 분리되기 위해서 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목적지로 분류되는 지점에서 동부쪽으로 가는 화차들을 실은 앞쪽부분은 분리가 되어서 앞쪽에 위치한 기관차에 의해서 동부로 출발을 하고 중부지역으로 가는 중간쯤에 실려있는 화차들은 분리되어서 중간에 위치한 기관차에 의해서 중부지역 목적지까지, 남부지역으로 향하는 나머지 화차들은 뒷쪽에 있는 기관차에 의해서 남부지역까지 갈수 있도록  미리부터 앞쪽과 중간쪽 뒷쪽에 기관차를 배열 하고 있다.

도무지 셀수가 없는 숫자이지만 대충 몇량정도의 화차를 끌고가는 지를 가름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기차 앞쪽과 뒤쪽 혹은 중간쪽에 자리해 있는 기관차가 몇대인지를 보면 대충 몇량의 화차를 끌고가는 지를 알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관차 1대당 25개의 열차를 끌고 갈수 있기에 기관차가 4대면 100대의 화차를 끌고 달린다는 의미이다. 열차 한량의 길이가 16미터 정도되는데 100대의 열차면 1600미터 즉 1마일 가량의 기차길이가 된다는 계산이다. 이런 연유로 바스토우 인근지역에서 볼수 있는 긴 길이의 기차를 마일즈 기차라고 일컫기도 한다.


아래는 기관차 10대에 화차 296대인 마일즈 기차인데 계산대로라면 길이가 3마일 정도되며 지나가는데만 9분씩이나 걸린다.


기차의 화차들은 로칼 물량을 타주로 이동하는 운송수단으로 사용이 되지만 가끔보면 수많은 컨테이너들이 실려서 가는 모습을 볼수 있다. 이 컨테이너들은 로칼의 물량이 아니고 세계 각국에서 배를 이용하여서 미서부 항구에 도착된 물량으로 목적지가 내륙 혹은 동부지역인 물량들을 기차로 수송을 하는 경우이다. 즉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하역 항구인 롱비치에 하역된 컨테이너들을 기차를 이용하여서 내륙까지 수송하고 있는 시스템인데 이런 시스템을 무역용어로는 MLB 즉 미니랜드브리지(Mini-Land Bridge)서비스라 부르고 있다. 예를 들어서 뉴욕으로 가는 선적들은 대부분 배를 이용하여서 바로 뉴욕으로 운송을 하지만 때로는 서부지역 롱비치항이나 북가주 지역의 오크랜드 항에 하역한후 기차를 이용하여서 뉴욕까지 운송해주기도 한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한국에서 구라파로 보내는 물량의 경우, 부산이나 인천에서 블라드보스톡항까지 선적을 하면 블라드보스톡에서 부터 유럽 각지역까지는 기차로 운반하는 시스템이 대표적인 복합운송 방식인데 블라디보스톡에서 부터 시베리아 철로를 이용하여서 구라파까지 연결된 이 복합운송 루트가 세계에서 가장 긴 거리의 미니랜드 브리지 서비스(Mini-Land Bridge, MLB)로 일컬어 졌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만 해도 운송 도구로 컨테이너가 유입된 초창기였으며 이시기에 복합운송으로 이름을 날렸던 회사로는 바다와 육지를 연결시켜서 서비스를 시도했던 시랜드(Sea-Land) 사가 세계적인 회사였다. 미국에 오기전에 한때 해운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기에 아직도 그 기억이 새롭다. 


이렇듯 바스토우 지역은 물량 분류센타(디스트리뷰션)지역으로 불려지고 있는데 한인 관광회사들은 바스토우를 고객분류센타로 이용하고 있다. 이는 탁월한 아이디어이다.

버스 한대를 출발시킬려면 최소 인원이 있어야지 적자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때로는 최소인원의 모객이 되지 않을때도 있다. 이런때는 타회사로 손님을 인계해주기도 하고 반대로 타회사의 손님을 인계 받아서 실행을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버스에 빈자리가 많을 경우에는 다수의 페키지 손님들을 같은차에 합승을 시켜서 페키지를 실행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서 월요일에 출발하는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 요세미티 4박5일 페키지일 경우, 당 페키지 예약 손님은 물론이거니와 당일 출발하는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 2박3일 손님도 한차로 함께 출발을 한다. 그리고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 2박3일 일정을 마치고 요세미티로 가는 길목인 바스토우에서 점심 식사를 한다. 식사후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 2박3일 일정을 이미 마친 손님들은 바스토우에서 내리고 요세밋 2박3일의 새로운 손님들이 바스토우에서 합승을 하며 빈자리를 메꾼다. 빈자리를 메꾼 손님은 LA 에서 수요일 출발하는 요세미티 2박3일 페키지를 예약한 손님들이며 이 손님들은 LA 에서 바스토우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가서 다시 바스토우에서 요세밋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는 형식이다. 라스베가스 그랜드캐년 2박3일 일정을 마치고 바스토우에서 내린 손님들은 LA에서 바스토우까지 요세밋 손님들을 태우고 간 차를 타고 LA로 돌아오게 된다. 이런 손님 분류 시스템을 이용하여서 관광사 나름대로의 노하우로 페키지 상품들을 지혜롭게 이끌어간다. 모 관광사에서는 바스토우에서 LA로 오는 차량을 성수기 때에는 항시 대기시켜 놓기도 한다. 때문에 바스토우는 서부의 물량을 분류해서 목적지까지 운송해주는 물류센타뿐아니라 한인 관광사들의 손님분류센타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바스토우에 한국식당이 생기기 전까지인 초기에는 주로 휴게소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대체했지만 바스토우에 한인 식당이 생기고 부터는 이런 불편함은 없어졌다. 초창기 한인 관광사들이 주로 이용하던 식당은 Chung's Market 간판으로 운영되던 식당이었다. 이 식당을 송모씨가 인수하면서 송스마켓 간판으로 바꾸어서 한때 운영했는데 송스마켓에 관한 일화는 신문에도 소개가 되었으며 기사 내용은 아래와 같다.


엄마 돕는 수재 웨이터에 '공부안하면 저런 꼴...'
라스베이거스를 찾는 관광객들이 경유하는 바스토 지역에서 한국 음식점 겸 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송모(여)씨는 얼마전 한국 관광객 부자가 나누는 대화에 울화가 치밀었다.
방학을 맞아 부모를 돕기 위해 음식서빙을 자청한 송씨의 아들을 가리키며 한국 관광객은 자신의 아들에게 "봐라. 너 공부 안하고 놀기 좋아하면 저기 저 형처럼 웨이터 된다"고 했던 것. 송씨는 단박에 항의하고 싶었지만 손님이라서 속으로 삭이고 말았다.


실상 송씨의 아들은 중.고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명문 '웨스트 포인트'에 입학, 아시아계 학생들 중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수재로 이날 방학을 맞아 부모를 돕고 있었던 것.
송씨가 자랑스런 아들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현지 단골손님과 관광 가이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 본국 관광객에게 주의를 주고 사과를 받아냈다.
여행사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다는 김모(37)씨는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본국 관광객들의 헛소리(?)에 자주 오해가 생긴다"며 "본국 관광객들의 거들먹거리는 듯한 언행은 열심히 사는 미국 현지 한인들의 속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줬으면 한다"고 조언.
미주 중앙일보 2006년 2월 11일자
서우석 기자 


송스마켓 식당을 운영하던 분들은 은퇴를 하였으며 그 후 몇몇 분들이 해당 식당을 운영하였으나 몇번 주인이 바뀌었는데 요즘엔 엠플이라는 간판으로 딴분이 인수를 해서 운영하고 있다. 바스토우에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들은 엠플을 비롯하여서 대호, 에덴식당등 몇몇개 업소가 더 있지만 고객분들이 주로 관광회사의 점심식사 고객이기 때문에 관광사나 가이드분들의 권한으로 이용하는 식당이 자주 바뀌다 보니 경영이 어려워 자주 주인이 바뀌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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