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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아주 작은 용기가 살인왕국을 무너뜨리다.

2019.12.14



       아주 작은 용기가 살인왕국을 무너뜨리다. 


 사기를 쳐서 큰돈을 벌 수 있는 방법 중 그 최고봉은 사람들의 신앙심을 교묘히 이용하는 종교 사기일 것이다. 종교에 미치면 평상심을 유지하기 어렵고 이러한 심리상태를 이용하여 전 재산을 바치게 하고, 무료 노역을 시켜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은 사이비 종교집단의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비정상적인 광적인 신앙심은 전 재산을 갖다 바치는 정도를 넘어 부모형제, 배우자와 자식까지도 버리는 비인륜적인 모습까지도 보이고, 심지어 자살이나 살인까지도 불사하는 형태로까지 나가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미국이나 한국, 세계 어느 나라 인종 불문하고 예부터 사이비종교는 존재해왔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이와 같다. 우리나라 역사상 수없이 많은 사이비 종교가 생기고 소멸되고 해왔지만 재산을 갖다 바치게 하는 것은 물론 강제노역과 살인을 밥 먹듯이 시켜온 살인집단 종교의 최고봉은 백백교일 것이다. 백백교의 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민족종교인 동학에 뿌리를 둔 천도교에서 나왔다. 동학교도였던 전정예가 동학에서 나와 창립한 종교가 백도교이다. 전정예는 금강산에서 20년 수도 끝에 득도(得道)를 했다고 하며 무지몽매한 농민들을 신도로 끌어 들였다. 


1910년 한일합방으로 조선에서 일제의 수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일본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만들어 농지측량이라는 명목 하에 농민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아갔다. 조선의 농민들은 유랑걸식을 하거나 일본인이나 일본농업회사의 소작농으로 전략하고 말았다. 조선농민은 아무리 노력하여도 기아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전정예는 굶주리고 핍박받는 농민들에게 자신을 믿으면 농사를 고생하며 짓지 않아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병들거나 늙어 죽지 않는다고 속이며, 재산을 다 갖다 바치면 그 후부터는 교단에서 의식주 모든 것을 책임지고 호의호식하게 해주겠다고 감언이설로 회유하여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 무지한 백성들은 이에 속아 재산을 바치고 여자신도들은 몸을 바치며 또 다른이에게도 권유하여 1915년에서 1920년 사이에 백도교는 신도가 1만명이 넘는 사교집단이 되었다. 


백도교의 교주 전정예는 수십 명의 첩을 거느리고 살인도 밥 먹듯이 했으나 발각되지 않고 1920년 60세의 나이로 병들어 죽었다. 애비 하는 짓을 보며 자라온 새끼들이 지애비를 따라하는 것은 당연했다. 전정예가 죽자 백도교는 내분이 일어나 큰아들 전용주는 인천교를 창립하여 교주로 나섰고, 작은 아들 전용해는 백백교를 창립했는데 아직 어린 관계로 형식적으로 아버지 전정예의 친구 우봉현을 교주로 내세우고 교세확장에 나섰으나 여러 가지 불법행위와 살인 등이 경찰의 추적을 받게되자 증거인멸을 위해 우봉현을 살해 암장하고 강원도로 피신한다. 


사건이 잠잠해지자 전용해는 다시 교세확장에 나서 교세를 크게 확장하였는데 수법은 이러했다. 갖은 감언이설로 속여서 재산을 팔아 교단본부가 있는 신당동에 와서 교주에게 전 재산을 바치면 인적이 드문 양주나 양평, 강원도 산골짜기 평강 등에 보내 화전민 신앙촌을 만들어 그곳에서 매일매일 중노동 속에 노예생활을 하게하였고, 탈출하지 못하도록 식구들을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지게 배치하여 식구 한명이 배신하면 곳곳에 나뉘어져있는 식구들을 몰살시키는 수법으로 도망을 못 가게 하였다. 이런 생활에 조금이라도 불만을 보이면 벽력사라불리는 전용해의 심복들에게 목이 졸려 살해되어 암매장되었다. 


전용해는 수천만금을 희롱하며 황제처럼 수청 드는 수십 명의 신도첩 속에 주지육림 속에 살아갔다. 하지만 ‘달도차면 기우는 법’이라고 이렇듯 승승장구하던 살인귀들에게 종말이 오고 있었으니 아주 작은 계기였다. 유곤룡은 약방을 운영하여 성공한 젊은 사업가였는데 부유하던 할아버지 때부터 아버지인 유인호에 이르기까지 특별한 이유 없이 집안의 재산이 조금씩조금씩 시나브로 줄어드는 것을 이상이 여겨 자세히 내막을 알아보니 할아버지 때부터 백백교에 인연이 되어 아버지까지 열열한 신도가 되자 매달 큰돈을 갖다 바치느라 가세가 그리 기울었고, 아버지는 자신의 딸인 유정전까지 신도가 되게 하여 교주 전용해의 첩으로 바친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집안 재산도 모자라 누이까지 사이비 교주 놈의 첩으로 빼앗겼다는 사실을 안 오라비 유곤룡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복수를 위해 이런 감정을 속이고 크게 음식을 차린 뒤 교주를 접대하겠다고 속여 아버지와 누이가 교주 전용해를 청하게 하였다. 백백교 본부가 있는 신당동에서 유인호의 집이 있는 하왕십리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전용해는 의심치 않고 초대에 응했다. 술자리가 깊어지자 유곤룡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용해를 꾸짖고 싸움을 벌였다. 동행한 전용해의 부하도 몇 명 있었으나 다른 방에서 술을 많이 마셔서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건장한 유곤룡에게 얻어터졌다. 잔뜩 매를 맞고 도망간 전용해 일당이 살인귀들인 것을 안 유곤룡은 덜컥 겁이 났다. 


복수를 하러 놈들이 일당을 이끌고 자기를 잡으러 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유곤룡은 하왕십리 파출소에 달려가 신변보호를 요청하며 백백교를 고발하였다. 이 작은 사건이 오랜 세월 요행히 법망을 피해온 살인귀 왕국의 종말이 시작된 것이다. 후에 잡혀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 백백교 살인마들은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살인 기록을 남긴다. 1940년 5월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마츠모도 검사가 조사한 것을 말하는바 “살인숫자는 문봉조는 129명, 이경득 166명, 김서진 169명, 김군옥121명, 이한종 35명, 박달준 51명을 직접 살해하거나 살해하는데 가담했다.” 70년대의 살인마 김대두나 최근의 유영철 등 연쇄살인마들도 이들 앞에서면 말 그대로 ‘새발의 피’다. 결국 이들은 모두 사형 당했고, 교주인 전용해는 도망치다가 자살했는바 하두 희귀한 살인마여서 그 두개골은 지금도 국립과학 수사연구소에 흉측하게 웃는 표정으로 알코올 병속에 보관되어 있다.   


 자료제공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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