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백마탄 왕자님 김팔봉

2020.05.23




                  백마탄 왕자님 김팔봉

 

 김팔봉氏 의 별명은 ‘백마탄 왕자님’ 이였다. 김氏가 이런 별명을 얻게된 사연은 이렇다. 충청남도 서산 작은 포구에서 작은 통통배 한척을 가지고 생계를 이어가던 김氏는 나이30대 중반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못해 애가 타던중 국제결혼 중매 업소를 통하여 우즈베키스탄 촌구석에 살던 백인 아가씨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2세를 생각해서 한국 사람과 용모가 비슷한 베트남 아가씨를 얻어보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인형같이 예쁘게 생긴 백인 아가씨를 보고 홀딱반해 이것저것 생각않고 덜컥 결심을 해 버렸다. 어촌 노총각이 당시 흔치않던 백인 여자를 데리고 나타나자 인근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베트남 이나 태국등 동남아 출신 아가씨들이 시집온 경우는 있으나 백인 아가씨는 인근에 처음 이여서 화제가 된것이다. 김씨의 친구들은 김씨가 백인 미녀를 얻은것을 부러워 하며 “우리동네 남자중에 백마를 타(?)본것은 니가 처음일껴! 백마탄 왕자님이 됐은께, 한턱 쏘는겨?” 라고 하며 놀리기 일쑤였다. 이래서 김씨는 백마탄 왕자님이 되었다. 

나이 차가 15년이나 나는 어린신부는 이국(異國)의 어촌 생활이 어려웠는지 툭하면 울기 일쑤였고 말이 안통하니 동네 사람들 하고 어울리지도 못했다. 부지런 하고 성실한 김팔봉씨 에게 유일한 단점이 있었으니 음주벽 이였다. 술을 너무좋아 하고 한번 마셨다 하면 소주5 ~ 6병씩 폭음을 했다. 술을 먹고나면 주사를 부리기 일쑤 여서 이문제로 늘 말썽이 많았는데 어린 신부가 동네 남자 얼굴을 처다보고 미소만 지으면 외간남자 홀린다 면서 어린신부 에게 손찌검을 하곤했다. 동네에서 신고가 들어가서 지서 순경이 나오는 일도 여러번 이였다. 하지만 지역 사회이고 경찰서 순경들도 다 동향 선후배 들이여서 문제가 커지지는 않았다. 한번은 중학교 후배인 지서 순경이 신고를 받고 나와선 “팔봉이 성! 이게 뭐유 ~ ~ 백마탄 왕자님이 왕자답게 살아야 쥬 ~ ! 왜 맨날루 ~ 시끄럽게 난리유 ~ “ 

아무튼 시간이 흘러 팔봉씨는 1남1녀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애들이 모두다 한국사람 이미지는 없고 한결같이 영락없는 백인 순종처럼 생겼다. 심지어 머리카락 색갈 까지도 외국인 모습 이였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였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 특이한 외모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자 생할 하는게 모든 면에서 불편했다. 이때, 아내가 외국으로 이민을 가자고 졸라대기 시작했다. 애들이 커 가는데 외모 때문에 점점 따돌림을 당하니 미국에 이민 가서살면 전혀 외모에 신경쓰지 않고 잘 자라주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김팔봉씨도 애들 때문에 이런저런 신경이 쓰이던 판이여서 어렵게 이민 결심을 하게된다. 작은어선 이지만 팔아서 목돈을 만들고 아버지 에게서 물려받은 크지않은 산을 팔아서 (있는것 없는것 빡빡 긁어서) 겨우, 투자 이민을 할수있는 돈을 만들었다. 이리하여 서산 작은포구에 사나이 김팔봉씨는 미국에 이민 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민을 가게된 그 지역이 한인이 거의 안사는 미국의 오지 동네였다. 투자 이민할 돈이 부족해서 50萬佛 조금 넘는 돈으로 투자 이민을 하려니 이렇게 오지에 투자하고 오는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민을 와서 김팔봉씨 말을 빌리자면 ‘얼굴이 반반한 백인 여편네’ 가 미국에 와서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필자 에게도 전화 상담을 하면서 이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하곤했다. 한국에 살때는 고분고분 하고 김팔봉씨 에게 꼼짝 못하던 여편네가 영어학교 다닌다는 핑계로 바깥 바람을 쐬고 다니더니 지네나라 사람 (우즈베키스탄 과 러시아) 들과 어울리며 파티에 나다니고 파티장 에서 남자들과 춤까지 추고 지랄발광 (김팔봉씨의 표현임) 을 해서 눈이 안 돌아갈수가 없었다 한다. 마누라와 애새끼 들이 점점 팔봉씨 말을 안듣기 시작 하더니 이제는 지들 끼리만 어울리고 영어를 전혀 못하는 팔봉씨 앞에서 영어로만 지들끼리 떠드니 속이 안 뒤집힐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어느날 속이상해 마누라 에게 손찌검을 하게 되었다. 이를 본 딸애가 즉시 911에 신고를 했다 너무흥분 했기에 이날은 좀 과한 행동을 했다. 평소보다 조금더 심하게 뒤지게 패 버렸고 (팔봉씨표현) 겁을 좀 주려고 부엌에서 칼을 꺼내 허공에 휘둘렀다. 악을쓰며 우는 마누라와 애새끼들을 보면서 ‘이제는 좀 겁을 먹었겠지?’ 하고 있는데 경찰이 들이 닥쳤다. 즉시 칼을 내려놓고 손을 바짝 안 들었으면 바로 총을 맞을상황 이였다. 그길로 구치소로 들어가게 되었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겨우 보석금 내고 풀려나기는 했으나 접근금지 명령 때문에 집에 갈수도 없었다. “변호사 말로는 재판을 받고 꽤 오랜시간 형무소 생활을 한뒤에 결국 한국으로 추방될 것이라고 하는디유, 법사님 워쩌면 좋아유?” 필자왈 “왜 그랬시유 ~ ? 미국이 어떤 나란디 ~ 칼을 든단 말이유 ~ ?” 충남 천안이 고향인 필자도 저절로 충청도 말이 나온다. 쾌를 짚어보니 최악의 쾌가 짚힌다. 복지곤의 쾌 (卦) 다! ‘좋은시절 다 지나가고 낙옆이 되어 뒹굴게 되는운’ 이다. 석방되면 늙은이가 되어 있을텐데, 그 나이에 추방 당하면 워쪈디야 ~ ?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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