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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자식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2020.08.27




              자식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자바 시장에서 의류 도매업을 하시는 송 여사님은 주위에서 알아주는 여장부다. 팔자에 남자복 없어 결혼에 몇 번 실패하고 이제는 남자라면 넌더리가 나서 혼자 지낸지 10여년이다. 처음 필자가 송 여사님의 팔자를 보았을 때 첫마디가 “남자복도 없는데 자식마저 없으니 이를 어쩔꼬!”였다. 이분은 1959년 5월 1일생으로 오후 2시에 서울 변두리 왕십리에서 태어났다. 따라서 사주팔자는 己亥年, 庚午月, 己未日, 辛未時가 되었고 운은 순행하여 辛未, 壬申, 癸酉, 甲戌, 乙亥, 丙子로 흐르고 있다. 己土일주가 火土가 강하고 사주에 비견이 많이 있으며 庚金과 辛金이 투출된 사주구성이다. 


사주에 물기 있는 습토가 없어 土가 金을 생조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람에게 金은 자식운이니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월간(月干) 庚金과 시간(時干) 辛金은 지지에 뿌리가 없고 더군다나 왕성한 월령 午火에 극 당하고 있다. 년지에 亥水(해수)가 있으나 이것마저 강한 土의 기운에 극을 당하는데다 월지 午火에 의해 설기되었다. 따라서 이 팔자는 자식 덕도 없는데다 남편복도 없는 팔자가 되어버렸다. 이런 연유로 이 팔자를 처음 대면했을 때 필자의 그런 탄식이 나온 것이다. 송 여사님은 술주정뱅이 아버지에 주변머리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고지식하고 답답한 어머니에게서 6남매 중 세 번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주렁주렁 달린 자식 생계는 아랑곳하지 않고 술 먹는데만 열과 성을 다했다. 남들이 ‘송목수’라고 불러 주었지만 이른바 솜씨 없는 ‘후루꾸 목수’여서 불러주는 이도 별로 없었고 본인도 일하기 싫어 불러주기를 바라지도 않았으니, 가뭄에 콩 나듯 며칠에 한 번씩 일을 다녀오는 것이 고작이요, 그나마 일당 받은 돈은 술 마시기에 급급했다. 어머니는 동네 농사일 돕거나 파출부 등의 일을 했는데 일솜씨도 없고 주변머리가 없어서 환영받지 못했고 돈도 조금밖에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6남매는 하나도 굶어 죽지 않고 다 성장했다. ‘산 입에 거미줄 치지는 않는다’는 진리가 통한 셈이다. 이러다보니 교육을 받을 기회는 거의 없었고, 초등학교 몇 년 다니다만다. 


다행히도 기숙사 있는 메리야스 공장에 취직이 되어 허기는 면하고 돈도 조금씩 모을 수 있었다. 돈을 모아 시집가려는 목표가 있었는데 19세 때 만난 첫사랑 동네 건달 놈에게 몸 뺏기고 돈 뺏기고 마음마저 뺏기고 만다. 남자복 없는 팔자의 시작이었다. 그 후 이곳저곳 건전치 못한 업소를 전진하다 돈을 모아 조그마한 다방을 차렸고 여기서 돈을 조금 모으게 된다. 주변 지인의 소개로 만난 첫 남편은 참으로 성실하고 송 여사를 끔찍이 위해 주었는데 결혼하고 채 1년이 못되어 바다에서 익사하고 만다. 물놀이 중 일어난 참사였다. 과부가 된 송 여사님은 망연자실해 있다 다시 기운을 차리고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다시 전통찻집을 차려 돈도 어느 정도 벌고 생활이 안정되어갈 때 두 번째 남편을 만나게 되는데 인근에서 알아주는 주먹패였다. 깡패이긴 해도 남자답고 점잖은 사람이었는데 결혼하고 1년이 못 돼 폭력사건에 연류되어 감옥을 가게 되고 감옥에 가 있던 중 다쳤던 사람이 사망하자 중형을 선고받고 긴 감옥살이 시작된다. 


이래서 또 이별하게 된다. 세 번째 남편은 미국에 와서 만나게 되었는데 결혼하고 나서 보니 지독한 약쟁이에다가 노름쟁이였다고 한다. 평소에 뻔지르하게 하고 다니는데다가 매너도 깨끗하고 무역업인가를 하고 있다고 해서 점잖고 괜찮은 사업가쯤으로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민사기와 금융사기를 전문으로 하는 집단에 속해 있었다. 세 번째 남편과 헤어지기위해 무척이나 큰 희생을 치뤘다. 어찌나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악랄하게 구는지 있는 것 다주고 심지어 남에게 꾸어다가 요구하는 돈 다 대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 겨우 빠져나왔다한다. 치사하고 간교한 이놈이 송여사 처음 만날 때부터 자기가 쓴 돈 전부와 정신적 피해(?) 뭐 어쩌구 저쩌구 하며 말도 안되는 명목으로 요구한 돈이 엄청났다. 


아무튼 헤어져 주는 것 만도 Thank you 라고 겨우 살아나왔다. 이러고 보니 남자라면 말 그대로 신물이 났다. 이제 다시는 내 평생에 남자는 없다고 몇 백번 몇 천 번이나 스스로에게 맹세하고 살아온 세월이 십여 년이다. 그런데 세 번의 결혼생활과 수없이 많은 남자와 관계를 가졌음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아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그 아이에게 의지하고 외로움을 견뎌 나갈 수도 있으련만 팔자 속 없는 아이가 생길리 만무였다. 이런저런 인생의 파란을 겪다보니 한국에서부터 용하다는 이런저런 곳을 수도없 이 다녀 보았지만 서울의 OO선생님과 필자가 그 중에 제일이신 것 같다고 과찬도 해주셨다. 송 여사님은 다행히도 재물운은 따라주어 열심히 하는 것만큼 돈은 따라주었다. 


오랫동안 필자와 상담을 해오다보니 필자에게 우스개소리도 곧잘 하신다. 업무상 중국에 일년에도 몇 차례 씩이나 출장을 다녀오는데 갈 때마다 젊은 남자 영계친구를 바꿔가며 다니신다했다. 그래서 더 자주 중국에 갔다 오고 싶다고 하며 혼자서 배꼽을 잡는다. 필자 왈 “아무튼 아무리 외로워도 다시는 결혼하지 마세요! 남자를 사귀어도 오래 사귀지 마세요! 정들면 큰일입니다” 이렇게 충고를 해 드리곤 했는데 이러다보니 필자가 스스로 생각해봐도 꼭 무슨 저질 뚜쟁이 같이 느껴져 피식 웃게 된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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