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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너무 강직해도 일생이 시끄럽다.

2020.09.10




          너무 강직해도 일생이 시끄럽다.


 필자의 오랜 고객이신 김여사님은 매우 강직하신 분이다. 명문여대 출신으로 총동창회장을 지냈을 정도로 매사 의욕적이며 활동이 많으시다. 남편분도 유명한 의사이시고 아들딸 남매도 모두 의사로 키워서 의사집안이 되었다. 여사님은 일생에 특별한 직업은 가진바 없으나 언제나 사회활동으로 분주한 세월을 보냈다. 남들 보기에 김여사님처럼 팔자 좋은 사람도 없을듯했지만 문제는 김여사님의 지나친 강직함에 있었다. 불의(不義)를 보고는 절대로 지나치지 못했다. 누가 길에다 휴지나 담배꽁초를 그냥 버리거나 함부로 침을 뱉는 것을 보기만하면 즉시 쫓아가서 이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지나치게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 있으면 참지 못하고 즉시 다가가서 이를 지적하곤 했다. 이러다보니 지적당한 상대방 측에서 ‘당신이 뭔데 참견이냐?’식으로 반발하면 크게 시끄러워졌다. 


이 다툼이 커져 경찰이 온 것도 벌써 여러번이였다. 이런 김여사님의 성격을 아는지라 친구분들도 같이 있다가 주위에 김여사님에게 지적당할 부당한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또 김여사님이 나설까봐 전전긍긍하며 불안해했다. 한국인이던 외국인이던 가릴것 없이 김여사님 눈에 거슬리는 옳지 못한 행동을 하면 즉시 지적당하곤 했다. 한번은 동창분들과 모여 점심식사를 하는데 식당 한쪽에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식사하는 젊은 내외가 아이들이 식당 이곳저곳 뛰며 시끄럽게 구는데도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자 즉시 그 테이블로 가서 “아이들 이렇게 키우면 안돼요! 어려서부터 남에게 피해주면 안된다는 것을 부모가 철저히 가르켜야지 이런 식으로 애를 키우는거 아니예요! 어쩌구~ 저쩌구~” 잔소리가 늘어지자 처음에는 다소곳이 듣던 젊은 부부도 잔소리가 길어지자 “이제 그만 좀 하세요! 에이 재수없어!” 라고 한 뒤 김여사님을 째려본 뒤 자리를 뜨기도 했다. 


아무튼 그냥 넘어가는 적이 없었다. 예전에 처음 김여사님이 필자를 찾았을 때 사주팔자와 관상을 보니 태양인의 체질을 지닌 것으로 판명했는바 태양인 체질을 지닌이는 대체적으로 지나치게 정의감이 강하고 분기를 억누르는 힘이 약하다. 태양인은 앞날을 내다보는 식견이 뛰어난 반면 자존심이 너무 강해 독선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김여사님 체질이 전형적인 태양인체질이여서 그런듯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이런 기질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듯했다. 역사적인 인물가운데 주자나 정조임금, 연암 박지원 등이 대표적인 태양인이라 할 수 있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당대조선의 최고문학가였다. 문장이 뛰어나 20세를 전후하여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렸으며 모두들 그의 앞길이 화려할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의 예측과는 달리 그는 과거에 적극적으로 응시하여 출세를 도모하지 않았다. 과거를 통한 출세를 단념한 듯했는데 집안이 한미했다면 그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그는 조선 최고 가문 가운데 하나인 반남 박씨 출신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손을 잡을 수 있는 영화를 뒤로한 것은 당시 과거 시험의 부당성을 크게 한탄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는 당시 세계의 어느 관리임용 시험과 비교해도 매우 수준 높고 품격있는 시험제도였다. 


식년시는 초시와 복시 전시로 나뉘어 치르게 되는데 초시는 인구비례에 따라 경상도 30명 등으로 할당하여 선발했으며 복시에서 33명의 최종합격자를 뽑은 후 전시에서 합격자의 등수를 정했다. 일종의 인재할당제를 당시에 이미 실행했다는 것이다. 또 응시생들의 글씨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서리들이 동원되어 답안을 옮겨 적게 하는 등 시험을 엄격하게 관리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체계적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품위있는 시험제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과 돈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난장판으로 바뀌어갔다. 온갖 편법과 부정이 난무하니 거벽(巨擘)이라하여 답안지를 대신 써주는 사람이 있었으며 사수(寫手)라고 하여 글씨를 대신 써주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였다. 돈만 있으면 이런 사람 중 능력있는 사람을 고용하면 그만이었다. 이렇다보니 과거가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능력 있는 사수와 거벽을 구하느라 난리였다. 


형식적으로라도 시험장에 나가면 성실한 축에 속했고 아예 시험장에 나가지도 않고 집에서 답안지를 써내는 이도 적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시험장 밖에서 답안지를 작성하는 것을 외장(外場)이라 했다. 과거시험장은 난장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욕설과 싸움질이 난무했고 공공연하게 컨닝이 이루어졌다. 더욱이 19세기에 들어가면서는 돈으로 관직을 사고파는 매관매직이 관행처럼 되어 그나마 과거시험은 유명무실해졌다. 태양인 연암 박지원은 자신이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한들 이런 엉터리시험에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으며 설령 합격한다고 해도 타락한 관리들이 득실대는 오염된 조정에서 자신의 포부를 펼치는 것이 어렵고도 더러운 짓이라고 여겼다. 


연암 박지원이 어린 시절 연암집안의 한 어른이 중국에 갔다가 ‘집안의 신동’인 연암의 사주팔자를 가지고 유명하다는 술사에게 문복한 일이 있었다. 당시 중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술사는 박지원의 사주를 말없이 지켜본 뒤 왈 “이 사주팔자는 마갈궁(磨蝎宮) 별자리에 해당되는 사주팔자인데 옛날 사람 한유와 소식이 이런 마갈궁 사주를 타고나 일생에 고생이 많았다. 이 사주팔자의 주인공은 반고와 사마천 같은 큰 문장가가 되겠지만 일생에 벼슬하고는 거리가 멀고 지나치게 고상하고 강직하여 불의를 지나치게 미워하니 일생에 사람들의 비방을 불러들이게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한다. 술사의 이야기대로 연암은 일생을 살며 끊임없이 많은 비난비평을 받았다. 문제는 타협을 모르는 기질때문이였다. 


연암 박지원은 명문가 출신의 사족이었지만 아랫사람이나 신분이 낮은 이들과도 스스럼없이 교류하였고 타고난 성격이 자유분방했다. 하지만 성격이 너무도 강직하여 사람들과 타협하지 못해 늘 시끄러운 논쟁을 만들었다. 전형적인 태양인 기질이였던 것이다. 김여사님도 역시나 이런 태양인 기질이 강해 일생이 시끄러울 것이니 심히 걱정스러웠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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