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gudowon님의 다른글 더 보기 :: 총 1043
목록 닫기목록닫기 목록 열기목록열기
문화/창작

돈이 짐이 되어버린 할머니

2020.09.14


 

             돈이 짐이 되어버린 할머니


 필자의 고객이신 김할머니는 90이 다되신 연세이시건만 지금도 매우 건강하시다. 언젠가 필자가 건강 비결을 물으니 “비결은 무슨 비결이 있어요. 그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 종일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일을 하면 따로 운동하지 않아도 저절로 운동이 되고 밥맛이 있고 단잠을 푹 자게 되지요.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일까?” 라고 하신다. 여기에 한 가지 더한다면 이런저런 일에 머리 복잡하게 쓰지 않고 단순하고 낙천적으로 일이 되어 가는대로 순종하며 사시는 성격이 건강을 주지 않았나 하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김할머니는 경기도 이천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셨다. 그리 부유하지도 빈한하지도 않은 중농의 살림살이여서 그리 어렵게 지내지는 않았다 한다. 당시는 배만 곪지 않으면 행복하던 시절이니 자라면서 특히 어려움은 없었다. 18세 때 이웃에 사는 총각과 연을 맺었고 슬하에 6남매를 두었다. 남편도 농사를 짓는 농부였고 머리가 좀 깨어 있는 분이여서 집 앞 공터에 큰 막사를 지어 축산을 겸하고 있어 생활은 넉넉한 편이었다. 예전에는 황소 값이 무척이나 비싸서 소를 키우는게 농사짓는 것보다 몇 곱절 이익이 되었다 한다. 유아 사망률이 높은 시절임에도 김할머니 내외분은 자식을 하나도 잃지 않고 모두 키워냈다. 이 또한 김할머니의 복이다. 김할머니가 미국에 오신 것은 남편분이 환갑을 막 지나서 돌아가시고 미국에서 의사로 일하던 큰 아들이 불러서였다. 6남매중 큰 아들과 둘째, 셋째 딸이 미국에 이민 왔고 둘째 아들과 큰딸 그리고 막내 아들은 한국에서 살고 있었다.

 자식 농사도 나름 성공하셨다. 첫째 아들은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일하다 미국에 건너와서도 의사로 병원을 개업했고 큰 딸은 사업을 하는 남편을 만나 강남에서 떵떵거리고 사는데 형제중 제일 부자라 했다. 둘째 딸은 남편이 미국법대 졸업 후 검사 생활을 하다 퇴직하고 변호사로 일하고 있고 셋째 딸은 남편이 CPA였고 자신은 간호사로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 둘째 아들은 고등학교 선생으로 평범하게 살며 막내 아들만 자리를 못 잡고 이런 사업 저런 사업 한답시고 매번 돈만 까먹고 마누라마저 도망가서 홀아비 신세로 집안의 근심거리라고 했다. 아무튼 이정도면 자식농사도 성공했다 할 수 있었다.


 오래전 언젠가 한국에 있는 땅 처분 문제로 필자와 의논하신 적이 있는데 막내 아들 빼고는 다들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으니 도와줄 자식은 없지만 그래도 당신 생전에 재산을 처분해서 분배를 해주어야 요즘 흔하게 벌어지는 형제간 재산 싸움이라는 흉(凶)한 일을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게 상담의 요지였다. 하지만 필자는 만류했다. 필자가 김할머니의 사주팔자로 보니 아마도 100세 가까이 장수하실 것 같아 시간적 여유가 아직 많이 있었고 설사 재산을 정리 한다고 해도 이놈저놈에게 나눠주지 마시고 돌아가실 때까지 꼭 쥐고 계시는게 분배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자식들의 불평불만을 막는 길이고 할머니 돈이니까 돌아가시지 전까지 실컷 쓰시고 그리고 남는 것은 유언장을 공증해 놓으시라고 충고해 드린바 있었다. 

 필자도 놀란 사실은 경기도 이천 지역의 땅값이 그동안 엄청나게 올라 할머니가 가지고 계신 땅을 처분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그 땅은 고향의 조카가 관리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했다. 논, 밭과 여기에 더하여 임야도 꽤나 큰 면적을 가지고 계셨다. 필자가 웃으며 “아이고 아주 큰 거부셨군요! 미처 몰라 뵀습니다!” 라고 하니 “거부는 무슨…….” 이라고 하시며 쑥스러우신지 입을 가리고 웃으셨다.


 그런데 언젠가 다시 찾아와 이 문제로 또 다시 의논을 하신다. “아무래도 땅을 팔아야겠어요! 복덕방 이야기로는 땅이 덩어리가 커서 한꺼번에 처분하기 어려운데 마침 모 기업에서 이 땅이 필요하다고 매매의사를 타진해 왔다지 뭐에요!” 라고 하시며 사뭇 심각한 표정이시다. 결국 김할머니는 땅을 처분하시고 어마어마하게 큰 세금을 내셨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하게 큰돈을 미국에 가져오실 수 있었다.

 그 돈을 은행에 예치해 놓고 계시자 살만큼 살고 있는 자식들이 더 그 돈에 눈독을 들였다. 큰 아들은 평소의 욕심 없는 성품대로 “어머니 돈이니 어머니 쓰시고 싶은 곳에 쓰세요. 저는 안주셔도 되요!” 라고 했는데 원장 싸모님인 며느리가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에요? 당신이 그래도 장남이고 우리가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무슨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해요?” 라고 했고 어느 날 평소와 다르게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애교를 부리며 근사한 식당에 모시고가 값비싼 음식을 대접하며 운을 뗐다. “어머니! 요번에 아범이 병원건물 신축하느라 힘든게 말이 아니에요. 이참에 한번 도와주시면 아범이 한시름 놓을 텐데 돈이 딸려서 너무 신경쓰는게 안타까워 죽겠어요. 저러다 덜컥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라고 하며 반위협을 하는데 뻔한 수작인줄 알면서도 엄마 마음에 진짜 아들이 건강이라도 헤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함께 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에 사는 큰 딸이 툭하면 전화질이더니 비행기 표를 끊어 미국에 건너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딸이어서 무척 반가웠는데 와서 하는 말이 “엄마! 배서방이 베트남에 큰 공장을 짓고 있는거 엄마도 알지 않우? 몇 년째 공사 중이잖아. 그런데 왜 몇 년씩이나 걸리냐하면 공사비 때문이야. 여윳돈 생기면 조금 공사하고 돈 떨어지면 쉬었다가 조금 여유 생기면 또 시작하고 고생이 말이 아니야. 엄마가 이참에 배서방 밀어주면 아마 평생 엄마를 고마워하고 업고 다닐꺼야! 배서방 한번만 밀어줘! 엄마 꼭 부탁이우!” 형제중 제일 부자인 큰 딸까지 이렇게 나올 줄 몰랐다.

 둘째 딸과 셋째 딸은 둘이 똘똘 뭉쳐 한편이 되어서는 “아이고~ 있는 사람들이 더 무서워! 큰 오빠나 큰 언니 형편에 무슨 돈이 아쉽다고 엄마 돈을 뺏어가려해? 진작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우리 둘인데!” 라고 쌍심지를 짚고 나섰다. 

 평범하게 사는 학교 선생인 둘째 아들만 아무소리 없었고 자식중 제일 예뻐하던 막내아들은 “엄마! 이번에 기가 막힌 사업을 하나 찾았어요! 지금까지 내가 경험이 없어서 엄마 실망시켰지만 이번 한번만 더 밀어줘! 꼭 성공해서 엄마 호강시켜 줄께!” 라고 했다. 이 말에 누이들은 막내에게 “얘! 니가 그동안 갖다 버린 돈이 얼만데 또 돈을 달래? 얘가 아주 양심도 없어!” 라고 하며 지네들 돈 달라고 한 것처럼 막내를 나무라고 욕을 했다. 


 이런저런 불화가 형제간에 생기고 시끄러워지자 김할머니는 돈이 있다는게 힘들어 졌다. 이런 문제가 없을 때는 별일 없이 조용하던 형제간에 불화가 심화되자 할머니는 “법사님! 차라리 돈이 없는게 신상 편할 것 같아요!” 하신 뒤 그 돈의 1/10만 당신 몫으로 남겨두고 6등분해서 자식들에게 나눠줘 버렸다. 이러면 공평해서 싸움이 없을 듯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예전에 누가 집에서 이런저런 일로 돈을 지원받았고 자신은 그런 지원을 한 번도 안 받았는데 똑같이 나누는 것은 부당하다느니 등등 시끄러웠다. 할머니는 생애 처음으로 자식들에게 크게 실망하셨다. 

 김할머니는 콘도 하나를 사서 그곳에서 혼자 사시면서 절에 열심히 다니시는데 돈을 분배해 주고 나서는 자식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인생사 이렇듯 다 허무한 것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좋아요
태그
인기 포스팅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