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성현이 전하는 두 역술가 이야기

2020.10.16





             성현이 전하는 두 역술가 이야기


 조선조 세조 때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선 후 관례조판서까지 오른 성현(成俔)은 자신의 저서 <용재총화>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생원 박운손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관청에 근무하는 여자 노비와 눈이 맞았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여자노비는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다. 아무리 신분이 천하다 해도 관노비이며 유부녀인 이 여자를 자기 맘대로 어쩌지 못하고 남의 눈을 피해서 조심스레 간통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여자노비에게 남편만 없다면 이런 구차함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은밀히 본남편을 살해하였는바 주변의 의심을 사서 수사가 시작되었고 결국 범인으로 잡히고 말았다. 옥에 갇혀 여러 날 취조를 받으며 고생하였고 결국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고 재판을 받게된다. 


 재판(결초)날 모든 형조의 낭관들이 이 재판을 참관하였다. 마침 음양과의 한 분과인 명과(命課)에 근무하며 세상에 용하다고 소문난 김숙중이라는 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 당시 이조에는 국초 고려의 제도를 모방하여 관상감이라는 부서를 두고 천문, 지리, 역수, 점법 등의 일을 맡아보게 하였는데 이 중 점법을 맡은 곳이 음양과 이였으며, 국가시험(과거)을 통해 8명을 관리로 채용하여 임용하였다. 그 자리에 참석한 정랑 노희진은 당시 큰 부자로 유명했는데 김숙중을 바라보며 비웃듯이 희롱하였다. “박운손의 명줄이 조석에 달렸는데 이를 면할 도리가 있는가? 그대가 그리 용하다 하니 그 방법도 알고 있을 터이니 어서 그 길을 말해보시게! 껄껄껄!” 관상감 음양과의 하급관리이고 천시 받는 점서(占書)와 관련된 일을 한다 해도 엄연히 나라에서 선발 임용한 관리이기에 반말을 하지 못하고 하대하면서도 김숙중을 멸시하는 태도가 분명하였다. 


 이 자리에 같이 있던 성현이 자신의 저서 용재총화 8권에 상세히 기술한 내용이니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이런 도발적인 정랑 노희진의 질문에 분기를 참고 한참을 생각하던 김숙중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죄인은 단지 형을 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벼슬길에까지 오를 것이며 나이 70세까지 장수할 것입니다! 이 죄인을 걱정하실게 아니라 정랑의 명을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김숙중의 이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김숙중의 맹랑함을 소리 높여 비웃었다. 비록 정랑 노희진이 자신을 희롱했다고 하나 이렇게도 말도 안되는 맹랑한 소리를 하는가 싶어서였다. 모두가 생각했듯이 역시나 김숙중은 예언은 빗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재판결과 박운손이는 사형판결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되자 모두는 김숙중을 다시 한 번 힘껏 비웃어 주었으나 김숙중은 아무 말이 없었다. 헌데 이후 이변이 일어났다. 


 박운손이 형 집행 하는 날 도주해 버려 형 집행을 면했을 뿐만 아니라 어찌된 영문인지 나중에 사면을 받고 과거에 급제하여 관 3품의 벼슬에까지 올랐으며, 당시로는 어마어마하게 장수하여 70세 까지 살고 죽었다. 이와는 달리 거부였던 정랑 노희진은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재산이 모두 몰수되고 요절하고 말았다. 모든 것이 김숙중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성현의 어린 시절 성현의 아버지는 김숙중을 후이 대접하며 가깝게 지내왔는데 언젠가 김숙중을 불러 자신의 아들 3명에 대해 물었다. (성현은 삼형제중 막내였다) 김숙중은 이에 대해 세 아들의 사주팔자를 본 뒤 말하기를 “장자는 복록장구하여 오랫동안 부유하고 건강하게 장수할 것이며, 벼슬도 이조판서에 이를 것이요, 둘째는 위인이 너무 청빈하고 고귀하여 사람의 존경을 받을 수 있으나 벼슬에 오르지 못하고 그 명도 길지 않을 것이며, 어린아이(셋째인 성현)는 장자와 마찬가지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장수할 것이나 벼슬은 맏형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했는바 이 역시 김숙중의 말대로 그대로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이때에 김효순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이 역시 사주팔자를 잘 본다고 소문이 났다했다. 성현의 맏형이 아직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고 선비일 적에 친구인 생원 이관의와 함께 김효순을 불러 그 길흉을 점쳤다 한다. 그해에 큰 과거시험이 있어 합격여부가 궁금하던 차 이리된 것이다. 김효순이 두 사람의 사주팔자를 살핀 뒤 말하기를 금년에 성현의 형은 반드시 크게 이루는 운이니 귀하게 되리라 했고, 친구인 이관의에게는 점차 나이가 들수록 영락할 운이니 종신을 초야에 묻혀 지내는 선비일 뿐 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관운은 없으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문명(文名)을 떨쳐 만년에 임금과 만나는 경사가 있을 것이라 하였다. 과거 보기를 턱수염 뽑듯하였던(매번 빠지지 않고 응시) 생원 이관의는 이 소리를 듣고 절망하여 오열하였다. 


 결국 김효순의 말대로 성현의 백형(큰형)은 그해 과거에 급제하였고 생원 이관의는 역시 낙방하였다. 이후 이관의는 그래도 과거에 계속 응시하였으나 끝내 급제까지 못하고 낙향하여 70세에 이르도록 은둔생활을 하였다. 과거에 급제하지는 못했으나 꾸준히 공부하여 문명이 높아져 사사하려는 선비들이 많았고, 결국 성종이 편전에 인견하여 치도를 강론케하는 영광을 입게 되었다. 이 역시 김효순의 예언대로였다. 필자는 문득 그 옛날 김효순이 정반대의 길흉의 쾌를 잡고 흉쾌가 나온 생원 이관의에게 나온 흉쾌를 설명하면서 느꼈을 난감함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두명의 선비가 과거를 앞두고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들의 합격여부와 영달 여부를 묻는 그 자리에서 나온 쾌를 그대로 가감없이 설명해야 하는 그 스트레스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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