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창작

靈魂(영혼)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

2020.10.14




                靈魂(영혼)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


 옛말에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열악한 상태에서 살아도 살음이 죽음보다는 좋다는 뜻이다. 일부 노인네 중에서 “이제 살만치 살았으니 어서 가야지! 더 살아서 주위에 폐가 되느니 죽는게 낫지.”라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 진짜 마음속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저 체면치레로 그런 말씀들을 하시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예외적으로 질병으로 너무 고통스러워 회복되지 못할 거면 이 고통을 진정 끝내고 싶다는 분들의 경우 이 말이 진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독히도 사람이 가기 싫어하는 길이 저승길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꼭 가야만 하는 저승길, 이 길이 두려워 영생을 얻고자 하는 종교가 생긴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데 이 죽음에 대해 많은 이들이 두려움과 궁금증을 갖는다. “죽으면 끝인가? 죽고 난 후는 어떻게 되는가? 사후 세계가 존재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수많은 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이런저런 답을 수천 년에 걸쳐 내놓았다. 

 죽음에 대해 이 문제를 확실히 알려면 먼저 이 우주를 만든 창조자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즉, ‘하늘님’은 천지 부모님이요 절대자이시며 만 인류의 부모님이시다. 생사화복과 길흉선악을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시다. 주역에서 말하는 태극이 즉 하늘님이며 불교에서 보는 청정범신불(淸淨法身佛)이 곧 하늘이시며 예수님이 부르신 아버지가 곧 하늘님이시며 하나님이시다. 어쨌든 인간의 영혼을 낳아주신 천지 부모님이 곧 하늘이시다.

 종교에 따라 기독교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의 하나님이요 불가의 부처님이시며 카톨릭에서의 천주님이 곧 하늘님이시다. 종교에 따라 그 표현 방법이 조금씩 다를 뿐이지 결국은 한분의 하늘님이시다. 창조주이신 하늘님이 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 인간을 기본으로 창조하셨다. 따라서 인간을 연구해보면 이 우주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자연계를 대우주라 하고 인간을 소우주라 한다. 이는 인간의 몸이 대우주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이 우주가 아무리 광활하다 하여도 만일 이 우주에 인간이 없다면 이는 속된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다. 이 우주는 인간이 없다면 한낱 빈껍데기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된다. 영혼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육신이다. 영혼이 육신이라는 옷을 입고 사람으로 태어났다. 육체는 자동차요 영혼은 운전자인 셈이다.

 사람의 육신이야 우리가 늘 지겹도록 바라볼 수 있지만 영혼은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육신을 벗고 영혼은 저 세상으로 간다고 하는데 그 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이 우주는 전기(前記)한대로 인간을 기본으로 하여 만들어 졌기에 인간의 육신과 같은 세계로서의 자연계가 있고 인간의 마음이라 할 수 있는 영혼계 즉 영계(靈界)가 있다. 이처럼 이승세계와 저승세계 크게 두 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승세계를 지상세계 또는 현생(現生)이라 하고 저승세계를 천상세계 또는 내세(來世)라 한다. 

 예수 열심히 믿고 부처 열심히 믿는 것은 이 내세에 가서 잘살아 보려는 육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 보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이승세계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약이 있지만 저승세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세계다. 옛날이야 60만 살아도 장수했다고 환갑잔치를 열어 축하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100세 시대여서 다 고리짝 이야기가 되었다. 아무튼 인간의 육신은 고작해야 백년 안팍을 생존하다 육신이 노쇠하면 죽고 마는데 그 육신 속에 있던 사람의 마음 즉 영혼은 처음 자기가 왔던 저승세계로 ‘돌아가서’ 영원히 생존한다. ‘돌아가셨다’ ‘passed away' 라는 말은 이래서 나왔다. 

 하늘님이 인간을 만들 때 흙과 물과 공기와 태양빛을 섞어서 육신을 만들었고 그리고 하늘의 능력으로 영혼을 만들어 육신 속에 숨결로 영혼을 불어 넣은 것이 사람이다. 따라서 인간은 육신과 영혼의 이중구조로 되어있다. 

 원래 인간은 창조 되었을 때 죽게 되는 구조로 만들어진게 아니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하여 죄를 범하고 (에덴동산에서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인류의 조상인 아벨과 카인 형제간의 살육) 이로 인해 영안이 어두워지면서 영계를 모르게 되었고 육신의 죽음이 인생의 끝인 줄 알고 슬퍼하게 된다. 하지만 영혼을 중심으로 본다면 사실상 죽음이란 본래부터 없던 것이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영원한 죽음으로 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승에서 영혼은 육신 속에 거(居)하다가 육신이 죽으면 그 껍데기를 벗고 영계로 ‘돌아가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기에 동물과 분류하여 ‘만물의 영장’일 수 있는 것이다. 

 하늘님은 인간을 이승과 저승의 주체로 만들었기에 이 우주의 중심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 본래 인간은 영적인 오관과 육적인 오관을 하늘님으로부터 부여 받았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여 죄악의 구덩이에 빠지게 됨에 따라 인간의 영적인 오관은 어두워지고 오로지 육적인 오관에만 빠져 죄를 지으며 살아가게 된다. 영적인 오관 영이(靈耳), 영안(靈眼), 영구(靈口), 영비(靈鼻), 영의(靈意)가 어두워짐에 따라 영계와 영혼을 실감하지 못하고 살아가게 된다. 수도생활이란 이처럼 어두워진 영적인 오관을 다시 밝게 함으로써 하늘님을 알고 영계를 알고 영혼의 실존을 깨달아 영생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수도 생활의 목적인 것이다.


 ‘영혼의 크기나 모습은 어떠한가?’ 는 의문을 가지는 이도 있는바 영혼의 크기나 모습은 그 사람의 육신과 똑같으며 육신의 표준적인 모습 즉 사람의 모습이다. 육신의 경우 어린아이 때의 모습, 청년기의 모습, 중년기의 모습, 노년기의 모습이 모두 다르다. 영혼의 모습은 그 육신이 가장 잘 성장했을 때의 모습이다. 이 모습은 더 이상 늙거나 변하지 않는다. 임사 체험을 한 이들이 저승에 잠시 갔을 때 만난 부모님의 모습이 늙고 병들었을 때의 모습이 아닌 젊고 싱싱한 상태의 모습을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람들이 죽음이 끝이 아닌 삶의 시작으로 보고자하는 것은 이와 같이 육신 속에 영원성을 지닌 영혼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짐승에게는 영혼이 없다. 예를 들어 아무리 영리한 개라도 보신탕집에 끌려갈 때 자신의 사후를 염려하여 새끼들에게 유언을 하지는 않는다. 말이나 소도 영혼이 없으므로 영생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거나 도(道)를 닦을 필요가 없다. 개는 평생 집 잘 지키고 소는 열심히 밭을 갈고 말은 사람을 태우거나 수레를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끌면 그 임무를 다하는 것이다. 짐승은 죽으면 그것으로 일생은 끝나지만 사람은 다르다.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명함 뒤에는 “우리의 육체는 보잘 것 없이 잠깐의 순간에 스러지나 영혼은 영원합니다. 윤회와 인과응보를 깨달아 착한 생각, 착한 말, 착한 행동에 힘써야 윤회의 고리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라는 글이 써있다. 영혼에 대한 이야기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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