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돌대가리
50대 초반의 한 남성분이 필자를 찾았다. 양복에 넥타이까지 단정히 멘 모습이었는데 머리에 기름까지 바르고 손에는 무척이나 알이 큰 반지를 끼고 있었고 손목엔 지나치게 화려해 보이는 큰 손목시계를 차고 있어 한껏 자신을 과시하는 모습이었다. 검게 탄 얼굴에 지나치게 걸걸한 저음의 사내였다. 필자를 위 아래로 훑어 내리더니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는 할아버지가 앉아 있을 줄 알았는데 젊은 분이시네! 어쨌든 내 사주나 한 번 풀어보슈!” 니 까짓게 뭘 알겠냐? 어디 재주껏 떠들어봐라! 하는 식이여서 순간 빈정이 상했지만 원체 다양한 이들을 접하는 필자인지라 그러려니 하고 생년월일시를 물으니 대뜸하는 말이 “내 생년월일도 맞춰야 도사 아닌가? 안그래요?” 라고 한다.
기가 막혀서 당장 내쫒으려다가 하는 꼴을 더 보려고 애써 참고 재차 물어 사주기둥을 세워보니 사주팔자 전체에 겁재(劫災) 투성이다. 겁재(劫災)는 비견(比肩)과 같이 형제, 이복형제 또는 남편의 첩을 표시하는 육신으로 그 특성을 교만불손하며 투쟁적인 것을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사주팔자 속 겁재가 많으면 자기를 앞세우며 타인을 무시하며 배우자를 극하고 쓸데없이 허황되어 투기와 요행을 바라는 기질이 많아 이로 인해 신세를 망치는 이가 많은 것이 일반적이다. 사주팔자와 이분의 운의 흐름을 대조해보니 인생자체가 파란만장했을 듯하다. 처를 지니고 살 팔자가 아니니 여러 여성과 파란을 겪었을 것이며 부모형제와도 불화하여 홀로 독불장군 행세를 하게 되고 자식들과도 충(沖)이 되어 애비노릇 제대로 한 번 못해 보았을 것이다.
여기에다가 허영심은 커서 ‘허공에 뜬 재물’을 바라는 마음이 강하니 횡재를 바라고 노름이나 복권에 매달렸을 것이라 추정되었다. 한마디로 바라만 보고 있어도 욕지기가 솟는 더러운 팔자를 지닌 사내였다. 사주팔자가 이렇게 생겨 먹었으니 하는 태도도 오만방자한 듯했다. 필자 왈 “팔자가 참 더럽게도 나오는군요! 애초부터 성격이 오만방자하니 부모형제와도 불화(不和)하여 거의 절연된 상태일 것이요, 결혼도 여러 번 하나 죄다 여자들이 도망치는 형국인데다가 자식들에게도 애비노릇 한 번 제대로 못하니 아들딸들로부터 애비대접 못받을 것이요, 일생을 한탕주의로사니 재물운은 마른 모래를 쥐는 손과 같아 안타깝습니다!” 라고 순식간에 말을 마치니 이 양반 눈이 왕방울 만해진데다가 얼굴 근육을 푸들푸들 떨리면서 이를 악다문다.
아마도 필자가 지 팔자를 그렇듯 경멸하듯 말하니 저도 기분이 무척 나빴을 것이나 어느 하나 틀린 말이 없으니 할 말도 없었으리라! 필자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직선적으로 말해준 것은 자신의 건방진 태도를 스스로 느껴보라는 뜻으로 한 것이다. 놀라고 분한 모양새로 앉아있더니 잠시 후 더듬거리는 소리로 “아이 참나! 아니... 남의 팔자를 두고 그렇게 막(?) 이야기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아저씨가 나를 어찌 안다고 그런 소리를 막합니까?” 라고 항의하는데 처음의 오만방자한 기세는 어디가고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한다.
이 사람은 강원도 속초 태생이다. 꽤나 큰 규모의 어선을 지니고 그 일대 땅도 무척이나 많은 부잣집 6형제 중 5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제들 모두 착하고 공부도 잘했는데 형제 중 오직 이 다섯째 아들만 성격이 광폭하고 머리도 돌대가리여서 공부도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특기가 있었으니 딱딱한 돌대가리를 무기로 싸움에는 져 본적이 없다는 거였다.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돌덩이처럼 딱딱한 돌대가리로 박치기를 하면 상대방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쓰러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리하여 어려서부터 불량배로 이름을 떨치면서 속초일대의 주먹왕초로 군림할 수 있었다. 80년대 초‧중반 경 ‘속초의 돌대가리’하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한다.
집에서는 완전히 ‘내놓은 자식’이여서 부모님은 물론 형제들과는 담쌓고 지내다시피 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언젠가 야단치는 아버지를 그 끔찍스런 무기인 돌대가리로 받아버리는 패륜을 저질렀고 작당하고 덤벼드는 형들마저 박살을 내놓았으니 집에 발 들여 놓을 처지도 아니었다. 중학교 중퇴인 학력으로 취직이 될 리도 없고 어려서부터 경제적으로는 어려움 없이 자라 험한 일을 할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었다. 이러다보니 건달 생활로 나이가 먹어간다. 학력미달로 군대는 가지도 못하고 방위시절 동네 다방레지와 눈이 맞아 첫 살림을 차렸고 딸을 하나 낳았으나 여자가 도망가는 바람에 핏덩이 갓난쟁이만 어머니 차지가 되었다. 그래도 피붙이라고 차마 내치지 못하고 손녀딸을 키우느라 노친내만 고생이었다.
20대 후반 무렵 무슨 바람이 불었던지 ‘속초의 돌대가리’는 LA에 나타난다. 미국에 와서도 옛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유유상종이라고 LA에서 건들거리는 건달들과 어울려 못된 짓만 일삼는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여자들을 꼬여서 미국에 소개비 받고 팔아먹는 장사를 하는 건달들과 한동안 어울리다가 한국에 계신 어머니를 졸라 돈을 타내서 타운에 가라오케를 열었다. 장사는 꽤나 잘되어 돈이 벌렸지만 노상 큰거 한탕을 노리고 카지노에서 밤 세워 가며 탕진하기 일쑤였다. 이때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되는데 자신의 가라오케에서 마담을 하는 여자였다. 여기서는 아들 하나를 두었고 돌대가리가 도박으로 돈을 다 날려 경제사정이 어려워지자 여자는 당연한 듯 떠났다. 또 하나 애가 생긴 것이다.
자기 손으로는 키울 수 없어 두 번째 아이도 한국에 계신 죄 없는 어머니 차지가 되었다. 늙어 꼬부라진 애미에게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었다. 노발대발 하는 아버지와 형들은 치를 떨었다. 원수보다도 더한 사이가 되버린거였다. 가라오케를 노름으로 다 말아먹고 멕시코와 LA를 오가며 밀입국을 돕는 범죄밥을 먹다가 감옥까지 다녀왔다. 이런 과정 중 나이가 먹어갔고 한국에 있는 딸과 아들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애들은 지애비를 보고도 멀뚱히 쳐다보기만 했다. 말도 섞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더니 딸년이 “낳아놓기만 하면 아빤 줄 알아요? 앞으로 찾아오지 마세요!” 하더니 획 돌아서더란다. 평생 애비노릇 한 번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이러면서도 못된 천성을 못 버리고 50넘도록 못된 짓만 꾸미고 다니다 필자와 연이 닿은 것이다. 이래서 ‘개 버릇 남 못준다’라는 말이 있나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