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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개과천선에 성공한 공사장님!

2020.12.26




                     개과천선에 성공한 공사장님!  


 필자와 가끔 상담을 하는 공사장님은 50대 중반의 사업가이시다. 8~9년 전부터 필자와 인연이 있었고 그 분의 중요한 인생결정에 필자가 조언해 왔음으로 해서 그 집안의 속사정을 손바닥 보듯 훤한 처지이다. 공사장님은 미국에 이민 오신지 20년 정도 되시는 분인데 삼십대 중반까지의 한국생활은 아주 거칠고 허망한 세월이었음을 그분의 이야기를 통해 들은바 있다. 


전남 목포 출신인 이분은 어려서 아버님을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남보다 기골이 장대하고 도무지 겁이 없는 성격이어서 중·고교시절부터 학교를 평정해온 학생주먹이었다. 고교 졸업 후 집안 형편이나 학교 성적상 대학 진학을 엄두도 내지 못했고 당연한 수순처럼 조직폭력배 꼬봉 생활이 시작되었다. 집이 삼학도 인근이어서 자연스럽게 ‘삼학도파’에 가담하여 집단 패싸움도 여러 차례 벌렸고 사설 노름장 경비, 꿔준 돈 못 받는 사람의 의뢰를 받아 채권해결사 노릇 등 거친 일을 거치면서 점차 조직의 중견으로 커나가다 급기야 두목급에 까지 오르게 되는데 신기 하고도 운 좋게 한 번도 감옥 생활은 하지 않았다. 


필자가 보기에 아마도 이분 사주 속에 월덕귀인이 있어서 그러하지않았나 라고 추측해 볼수 있었다. 명리학상 ‘사주속에 월덕귀인이 있고 형·충·파 되지 아니하면 한평생 형벌이나 재앙을 당하지 않는다’ 는논리가 있는데 이분이 이에 해당되는 사주여서 그러했다. 아무튼 그런 거친 생활을 하던 중 자신의 조직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아주 큰 조직과 갈등이 생겨 생명의 위험을 느낀 나머지 도망치다가 결국 미국에 까지 오게 되었다. 


미국에 와서 방황하다가 오 목사라는 개척교회 목사를 만나게 되는데 이 만남이 이분의 삶을 180⁰ 전환시키는 계기가 된다. 오 목사님은 공사장님의 고향 선배 뻘 되는 분이신데 젊은 시절 공 사장님처럼 거친 생활을 하다가 어떤 계기로 회개하고 신학대학에 진학 뒤늦게 목사안수를 받으신 분이다. 이분이 어떤 뜻을 세우고 미국에 이민 와서 개척교회 목사로서 헌신의 삶을 살고 있는 분으로 공 사장님과 뜻이 잘 맞았고 같은 바닥 경험이 있는 처지라 깊은 대화로써 공사장님에게 감화를 주어 자신의 교회에 나오게 하였고 깊은 사랑으로 공 사장님을 감싸 주고 힘이 되어 주었다. 


공사장님이 미국에 와서 처음 시작한 일은 자바시장의 딜리버리 일이였다. 쥐꼬리만한 급여였지만 일생 처음으로 성실하게 일했고 땀의 보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한다. 예전에는 여기저기 협박하여 공돈을 챙겼고 남의 빚 받아 주며 수고비로 큰돈을 챙기다 보니 돈이 우습게 보였고 씀씀이도 헤퍼 하루 저녁에 수 백 만원 쓰기가 우스웠는데 이제는 한 달에 돈 백 만원 남짓 되는 돈을 벌고자 땀 뻘 뻘 흘리고 돌아다니는 것이 한심하기도 했지만 인생 공부하는 셈치고 매우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주일에 신앙 생활도 철저히 했고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성경 공부 시간에도 열심히였다. 이렇게 하느님을 알고 나니 예전의 쓰레기 같은 삶이 너무도 부끄러워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고 자신에게 피해를 보았던 이들에게 깊이 참회 하는 마음이 커졌다 한다. 이 모두가 오 목사님 덕분이였다. 한국에서 부인과 자식도 불러 들여서 집안도 안정되었고 딜리버리 경험을 바탕으로 의류사업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다행히도 망나니 생활 할 때 그래도 부인은 착하고 알뜰한 부인을 얻어 둔 것이 다행이였다. 부인이 알뜰하게 모아서 가져온 돈이 적지 않아서 사업을 시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다행히도 일이 잘 풀려 주어서 사업시작 몇 년 만에 더 큰 규모로 사업을 확장하였고 수입도 대폭 늘어났다. 이 돈의 상당 부분을 모두 장학 재단에 정기적으로 기부하였고 한국에 있는 소년 · 소녀 가장 돕기 성금도 빠지지 않고 큰돈을 기부했다. 이렇게 사는 것이 과거에 남들을 협박 · 폭행하고 강도짓 비슷하게 뺏은 돈을 돌려주는 길이요 자신의 회개라 여기고 정말 정성들여서 해오고 있다. 또한 주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두 발 벗고 나서서 선행을 베푸는 자선가가 되었다. 

‘베품의 기쁨’을 알게 된 것이다. 


언젠가 상담 자리에서 필자가 짐 짓 “공 사장님! 혹시 옛날의 화려했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없습니까?” 라고 물은 즉 공 사장님 손을 내 저으며 펄쩍 뛸 듯이 정색을 하며 “아이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지은 죄가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인데 그립다니요?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 마십시오” 라고 하시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또 이어서 하는 말이 “당시 애들이 어려서 지애비가 어떤 놈인지 몰라 다행이지 만약에 그 생활이 길어져서 아이들이 지애비가 깡패두목이라는 걸 알았다면 어쩔 뻔 했습니까? 천만 다행이지 뭡니까!” 라고 하며 한숨까지 내쉰다. 이런 공 사장님 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진정으로 그가 개과천선에 성공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사장님 말대로 ‘천만다행’이다. 그의 선행이 계속 되기를 하늘에 빌며 그의 앞날과 그 가족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해본다. 공사장님 파이팅!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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