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망신
정광필(鄭光弼)은 중종 때의 명신이다. 연산군 때 연산의 무도함을 보고 사리를 따져 간하다가 노여움을 사서 아산으로 귀향을 갔고 그 곳에서 세월을 보내다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이 쫓겨나자 복권되어 그 지위가 영의정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이때는 김 안로 등의 간신 무리가 세력을 휘어잡고 죄 없는 선비들을 죽이려고 중종을 움직이던 때였다. 이 때 개혁 정치를 실현하려던 조 광조 무리를 김 안로가 모함하여 내치려는 것에 반대하다가 쫓겨나 김해로 내려가게 되었다. 가족들 중 부인만이 서울에 남아돌아가는 정세를 살펴보기로 하고 남았다.
여러 날이 지나도 좀처럼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없어 답답하던 차에 집에 있는 영리하고 충성스런 계집종이 이런 말을 하였다. “장안에 김 효명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주역에 능해 그가 집은 산통은 모든 것을 알려주는 지혜의 통이라고들 합니다. 이름이 높은 사람이니 마님이 한 번 불러 보심이 어떠하신지요” 하도 답답하던 참이라 계집종을 시켜 김 효명이를 집에 데려오게 하였다. 남편 정 광필의 생년월일시를 알려주고 운명을 물은 즉 한참동안 손가락을 꼽아가며 육갑(六甲)을 짚던 그는 “이 분은 운수 사나와 잠시 어려움에 처해 있기는 하나 아직도 누리셔야 할 부귀가 십년이나 남아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요”라고 하였다.
이때는 김 안로가 정 광필을 죽이려고 백방으로 모략하여 중종의 윤허가 내리기만을 기다리던 살얼음판 같은 시절이라 부인은 빈말이라도 반가왔다. 반가운 마음에 다시 한 번 재차 물으니 “마님! 틀림없습니다. 아무일 없을 것이니 안심하십시오. 제 쾌는 틀려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어느 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모모한 대가 댁들에서 저를 많이 찾습니다. 복채는 지금 주시지 말고 대감마님께서 높은 자리에 돌아오신 뒤 배로 쳐서 주십시요” 라는 기분 좋은 답을 하였다. 그러던 차에 소식을 들으러 밖에 나갔던 아랫사람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하는 말이 “마님 큰일났습니다. 대감님을 사사하라는 상감마마의 윤허가 내렸다하옵니다.” 정광필의 부인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쩍 벌리고 넋을 잃고 있는데 옆에 앉았던 계집종이 바르르 떨더니 김 효명의 멱살을 잡고서 소리쳤다.
“이놈아! 너도 귓구멍이 있으면 들었겠지? 뭐라고? 아직도 누리실 부귀가 십년이나 남아 있어? 금시에 드러날 거짓말을 하다니! 우리 댁이 아주 망하게 된 것이 부귀를 누리는 것이냐? 이놈의 돌팔이 점쟁이야!” 계집종이 멱살을 쥐고 흔드니 말을 할 수도 없고 숨을 쉬기도 어려워 켁켁 거리며 김 효명은 뜻하지 않은 봉변에 쩔쩔 매었다. 계집종의 화풀이가 김 효명에게 튄 것이다. 이렇게 한참을 시달리며 거의 사색이 되었을 때 또 한명의 아랫사람이 뛰어 들어오며 “새로운 소식입니다! 어명을 내리시고 난 잠시 후 상감마마께서 마음을 돌려 어명을 취소하고 대감마님을 복권시키라고 새로운 어명을 내렸다하옵니다. 이제는 살게 되었습니다!” 라고 소리친 뒤 감격에 겨워 눈물을 훌쩍 이는 것이었다.
얼마 후 김 안로 일파는 물리침을 받아 쫓겨났고 정 광필은 복권되어 편안히 살다 칠십 칠세로 죽었는데 김 효명이 예언한 그대로였다. 물론 계집종은 김 효명에게 백배 사죄하였고 김 효명은 너그러이 용서했다. 해서 훗날 사람들이 계집종의 주인을 섬기는 뜻이 대단하다고 해서 칭찬하였고 또 김 효명의 주역 실력이 실로 귀신같다고 평판이 자자했다한다. 이렇듯 최고의 수준에 도달한 역학 실력자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망신을 당하기도 하는데 필자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필자는 하루에도 수백 가지의 예측을 한다. 하루에 상담하는 인원이 많다보니 나오는 질문도 수백 가지 이상이여서 그러하다. 생각 없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다. 쾌를 짚어서 그 말에 대한 답을 끌어내야 한다. 수학문제를 푸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하루 종일 문제를 풀다보면 업무종료 시간쯤에는 머리가 멍할 정도로 피곤하다. 또한 하루 종일 하도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저녁 무렵에는 골이 흔들릴 정도다. 따라서 솔직히 말하자면 끝나는 무렵쯤에는 상담에 성실히 임하지 못하는 때도 가끔 있다.
필자도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쾌를 잘 못 짚는 실수가 어쩌다 있기도 하다. 얼마 전의 일이다. 필자와 자주 상담을 하시는 김 사장님께서 친구 분을 한 분 모시고 와서 필자에게 소개한 일이 있다. 김 사장님처럼 리커를 하시는 분이셨는데 자신의 가게를 내 놓으면 잘 팔리겠는가 여부를 알고 싶어 하던 차에 김 사장님 소개로 오시게 된 것이다. 하관이 빠르고 눈동자를 쉴 새 없이 굴리는 것이 관상학적으로 보아도 신뢰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사주팔자를 풀어보니 더욱 그러했다. 아무튼 이 분의 운을 주역상 쾌로 짚어보니 ‘가인지소륵’의 운이다. 즉 머리는 있고 꼬리는 없다! 급하면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는 쾌다. 이 쾌에 따라 필자 왈 “올해는 매매 운이 없으니 내년을 기약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라고 하니 이 분 자신이 원하는 답이 아니어서인지 하는 말이 “왜 매매 운이 없습니까? 아직 내놓지도 않은 가게에 재 뿌리는 것 아닙니까?” 라고 하며 기분 나쁜 듯 질문하더니 자기 가게는 매상이 좋아서 탐내는 사람이 많다고 하며 필자에게 한 번 내기해 보자는 식으로 나온다. 기가 막히고 기분이 상해서 아무 말 않고 돌려보냈다.
이후 김 선생님을 통해서 그 가게가 매매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필자가 틀린 것이다. 다시 한 번 운을 짚어보았지만 가게는 틀림없이 팔기 어려운 쾌상이다. 아주 망신을 당한 것 같고 무엇보다도 필자에게 이죽거리던 그 사람이 생각나서 더 참담했다. 그 후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김 사장님이 다시 찾아왔다. 와서 하는 말이 에스크로에서 문제가 생겨 거래가 깨졌다는 소식이었다. 왜 그리 고소했는지! 필자도 성숙해지려면 아직 멀은 것 같다. 소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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