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고려장
예전에 있었던 일이다. 한 할머니께서 어렵고도 어렵게 필자를 찾았다. 중풍을 맞으셔서 몸 반쪽이 자유롭지 못하셔서 겨우겨우 한 걸음 한 걸음 떼 놓으실 정도였고 LA에서 꽤나 떨어진 지역에 거주하고 계셔서 차도 없고, 물론 운전도 하지 못하는 할머니 입장에서는 누군가가 데려다 주지 않으면 오실 수가 없는 입장이여서 필자를 한 번 만나보려고 벼르고 벼르다 근3년의 망설임 끝에 필자와 마주하게 되었노라고 하시며 선하게 웃으신다. 그 선한 웃음이 어쩐지 슬퍼 보인다. 필자 왈 "이렇게 불편하신 몸으로 어떻게 예까지 오셨어요? 전화로 상담하셔도 될 텐데..." 라고 하니 "전화 상담을 해 보려고 물론 몇 차례 문의도 해 보았지요! 헌데 카드가 있어야 된다고 하는데 나는 카드가 없어요!" 라고 말씀하신다. 크레딧 카드가 없어서 돈을 결제할 방법이 없으니 부득이 오게 되셨다는 말씀이셔서 매우 송구스러웠다. 생년월일시를 물어 기본적인 내용 등을 쭉 설명해 드리고 지금 현재의 할머니 운을 짚어보니 '복지곤'의 쾌가 나온다. '록록부생 불지안분'의 운이다! 이는 ‘좋은 시절 다지나가고 가을 들판에 혼자 뒹구는 낙엽 신세라! 낙엽처럼 쓸모없이 천대받는 서러운 세월이다!’ 라고 해석 될 수 있다. 이 쾌를 설명하니 할머니 주름진 눈에 물기가 번지며 휴!~ 하고 긴 한숨을 내쉬신다.
이 분은 경남 통영이 고향이시다. 어려서 가난한 어부의 팔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고 그 시절 어려운집이 그랬듯 여자라는 이유로 초등학교 중퇴로 학업은 끝났고 어려서부터 인근 공단지역에서 직공생활을 시작했다. 어렵게 어렵게 돈을 모아 놓으면 이런저런 이유로 아버지나 오빠들에게 빼앗기고만다. 돈을 어떻하든 모아서 학교를 다시 다녀보고 싶었으나 말 그대로 꿈으로 끝난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 청년역시 같은 공장에서 근무하는 처지로 가정환경이 비슷해서 서로 말이 잘 통했고 우선 성실하고 착한 사람 같아서 몇 번 만나다 보니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사글세 셋방에서 시작한 신혼살림이지만 꿀맛 같았고 세상에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고 하신다. 아들 둘에 끝으로 딸 하나를 두었고 성실한 남편과 함께 살림 늘려가는 재미로 사셨다. 남편은 매우 자상한 성격이여서 살림하느라 얼마나 피곤하냐며 틈만 나면 팔다리, 어깨, 등을 주물러주며 다독거려 주었고 과일 한쪽이라도 맛있는게 생기면 몰래 주머니 속에 숨겨서 가지고와서 먹일 정도였다. 아이들도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살림도 점점 형편이 피어가니 부족함이 없는 행복이였다.
이러다가 미국에 살고 있던 시동생이 강하게 권해서 미국에 오게 되었다. 새로운 땅으로의 이주가 두려웠지만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살게 해 주고 싶어서' 결심을 하고 이곳에 온 것이다. 처음 와서 남편이 한 일은 시동생을 따라 다니며 건축일을 하는 것이었다. 시동생에게 남편은 기술을 쉽게 익혔고 솜씨가 좋아 수입도 꽤나 좋았다. 아이들도 쉽게 환경에 적응하며 "쏼라 쏼라' 영어도 제법들이었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좋았다. 음식이 풍성한 것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고 하신다. 미국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들었고 시동생이 고마웠다. 행복한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미국온지 3년쯤 되는 시점이었다. 불행이 갑자기 닥쳤다. 건축현장에서 일하던 남편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곧바로 숨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 이었다. 이유도 정확히 없었다. 그냥 '돌연사' 라는 것이다. 남편의 죽음과 함께 현실의 문제가 들이닥쳤다.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어린 새끼들과 살아가는 문제가 관건이었다. 시동생이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도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누라 눈치보느라 발걸음을 점차 멀리했다. 정말 미친 듯이 일했다. 투 잡, 뜨리 잡까지 뛰면서 몸부림쳤다. 이런 지옥 같은 환경에서도 낙이 된 것은 아이들 모두 영특해서 공부도 잘하고 말썽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이었다. 아들 둘은 의사가 되었고 딸은 전문회계사가 되었다. 모두 성공한 것이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했다. 모두들 부러워하고 축하해주었다. 자녀들 모두 결혼시키고 손자손녀도 주렁주렁 늘어났다. 정말 행복했다. 헌데 두 번째 불행도 갑자기 닥쳤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몸 반쪽을 쓸 수 없게 되었고 반신불구가 되어 누워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을 대하는 며느리의 눈치가 싸늘해져서 둘째 아들 집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거기서는 한 달도 채 있지 못하였다. 큰 며느리는 대놓고 구박을 하지는 않았는데 작은 며느리는 대놓고 자신을 구박하면서 아들하고 매일 싸움질이었다. "이혼을 하든지 당신 어머니를 나가라고 하던지 양단간에 결정하라" 고 하며 악다구였다. 자식을 이혼 시킬수는 없어서 이번에는 딸집으로 갔다. 딸집에서 이번에는 할머니 스스로 나오셨다. 사위 눈치 보면서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딸이 안쓰러워 서였다. 양로병원을 수소문해서 들어가셨다. 죽으러 가는것도 아닌데 아들놈 두 놈과 딸년은 할머니를 붙들고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매주말이면 찾아오곤 하더니 조금씩 조금씩 뜸해지다가 이제는 어느 누구하나 발 길 조차 안한다고 하신다.
원통하고 괴씸해서 서럽게 울고불고 하며 전화도 해보았지만 처음에는 반응이 있더니 이제는 '노망난 노인네' 취급을 하며 상대조차 안 해주니 이제는 전화조차 할 수 없게 되었노라 하신다. 필자에게 찾아오고 싶어 3년을 별렸지만 어느 자식하나 협조해 주지 않아서 어렵게 돈을 장만하여 택시 기사를 부르고 큰 채비를 하여 길을 나서게 되신 거였다. 현대판 고려장을 당한 처지임에도 아들들과 딸의 사주팔자를 봐 달라하시면서 다들 잘 살거라고 필자가 진단하자 어린애 마냥 기뻐하셨다. 늙는다는거 정말 슬픈 일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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