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에서 온 편지
예전 어느 날 인가 낯선이로 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살인죄로 40년형을 받은 박군으로부터 이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또박또박 정성껏 써 내려간 편지는 편지를 쓰던 박군의 정성을 보여주는 듯 했다. 편지의 내용인 즉 자신은 이곳 미국에 의지할 곳이 한군데도 없는 홀홀단신 이며 어쩌다 우연히 필자의 소식을 그곳에서 접하게 되었고 자신의 앞날이 너무도 절망 스러웠던 차에 필자에게 자신의 인생 앞날에 대해 묻고 싶었으나 돈을 마련할 길이 전혀 없고 누구에게도 상담료를 부탁할 곳이 없어 염치 무릅쓰고 이렇게 편지를 보내니 부디 자신을 불쌍히 여겨 편지로 상담을 해 주십사하는 내용이었다.
박군이 미국에 오게 된 것은 한국에서 중학교 2학년에 막 올랐을 때였다 한다. 홀어머니와 어릴 때부터 생활해 왔는데 자신이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어머니가 재가하면서 노동을 하던 홀아비였던 새아버지 집에 들어가면서 부터 박군의 고난은 시작된다. 심한 술주정뱅이 였던 새아버지는 술만 취하면 어머니와 박군을 두둘겨 팼다고 한다. 처음 시작은 박군에게 트집을 잡아 폭력을 휘둘렀고 이를 말리는 어머니에게 폭행이 이어지는 식이였다. 밥알을 흘렸다고 밥상을 뒤엎은 뒤 폭행을 하거나 사내새끼가 슬금슬금 눈치를 본다고 팼다. 어머니가 박군을 조금만 귀여워하는 내색을 보이면 ‘지새끼라고 끼고도니까 버릇이 없어져서 저새끼가 저렇게 버르장머리가 없어졌다’고 박군과 박군의 어머니를 때렸다. 폭행은 손바닥이나 주먹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흥분하면 다듬이방망이, 연탄집게, 도마 등등을 가리지 않고 사용했다. 이러다가 어머니나 박군의 머리가 터지거나 뼈가 부러지기를 수 차례였다. 이런 환경이다 보니 박군의 성정도 빗나가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가기 싫으니 동네 만화방이나 게임장에 살다 시피했고 학교도 툭하면 빼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박군을 불러 앞에 앉혀놓고 한참동안 눈물을 쏟은 뒤 “내 욕심에 내새끼 내가 키워보겠다고 끼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니 새아버지도 저렇고 너도 이 못난애미 때문에 고생이 심하고 점점 삐뚤어지니 이곳에 더 있으면 안되겠다. 니 애비가 있는 미국으로 가라” 라고 했다. 박군이 걸음마 겨우하던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하고 친구가 이민가서 살고 있던 LA로 떠났고 그 후로 서로 연락을 끊고 지냈는데 어머니가 어렵게 수소문해서 연락이 닿았고 그래도 지새끼 인지라 아버지가 사정을 들은 뒤 보내라고 해서 결국 박군의 미국행이 결정되었다. 미국에 와서 보니 모든 것이 낯설었다. 처음보는 아버지는 무척이나 무뚝뚝한 사람이었고 말이 없었다. 노상 피곤한 얼굴로 아침에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왔다. 페인트를 하러 다닌다고 했는데 야간에도 일이 많은지 어쩐지 노상 밤늦은 시간에 들어오니 박군과 얼굴 마주치기도 쉽지 않았다. 새엄마는 식당에서 일한다고 했는데 노상 바쁘다보니 새엄마의 딸이자 자신의 의붓누이 손에 밥을 얻어먹으며 학교를 다녔다.
자신보다 4살 위였던 의붓누이는 매우 쌀쌀맞은 성격이어서 박군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고 박군 역시 누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대학만 가면 이 지긋지긋한 집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 이것이 의붓 누이의 꿈이였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희망인것 같았다. 미국에왔지만 어느 누구하나 박군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학교 ESL반에서 만난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되는 친구들이 유일한 낙이였다. 우선 말이 통해서 좋았다. 이중에는 한국에서 유학 차 온 부유한 집 애들도 있어서 박군의 ‘봉’이 되어주었다. 박군은 어려서부터 험한 환경에서 자라왔기에 ‘깡다구’가 좋았고 겁이 없어서 친구들을 휘어잡을 수 있었고 대장노릇을 했다. 집에 가봐야 아무도 없고 공부도 하기 싫으니 밖에서 친구들과 나돌게 된다. 친구들 중에는 박군의 집과 마찬가지로 부모 모두 일하러나가서 집이 비어있는 곳이 많았고 이런 집에서 어른들 간섭 없이 담배도 피고 홈리스시켜서 산술도 마시고 가끔 마리화나도 피웠다.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이런짓 외에도 함께 음란한 영상도 보고하며 탈선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다가 나이가 좀 더 많은 불량 선배들을 따라 다니게 되고 자연스럽게 ‘갱’이 되었다. 이제는 마약도 하고 청부 폭력에도 개입되고 하면서 학교는 그만 두게 되었다. 이렇게 타락한 생활을 해도 참견하는 식구는 아무도 없었다. 무대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다는 것과 이제는 스스로 나이가 들어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는 위험한 아이가 되었다는 차이 뿐이었다. 이러한 험한 생활을 하다가 친구의 급한 연락을 받고 백업(위세 과시하기, 도와주기)나갔다가 갱들간의 집단 패싸움에 끼게 된다. 먼저 상대방 갱 중에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총을 꺼내 발사했고 옆에 서 있던 박군 친구가 총을 쏜 갱을 발로차서 넘어뜨렸는데 이때 총이 떨어지면서 발사되어 상대방 깽의 가슴을 관통했고 떨어진 총을 서로 뺏으려고 박군과 상대방 깽 한명이 옥신각신하다 다시 한발이 더 발사되어 상대방 깽의 다리에 맞고 총은 박군의 손에 들어왔는데 모두가 놀라서 혼비백산한 상태에서 도망쳐 왔는데 총을 든 채였다. 결국 박군이 총을 쏴서 상대방 깽1명을 죽이고 또 발사해서 한명을 중태에 빠뜨렸다는 죄를 모두 뒤집어쓰게 되었다.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박군의 친구들도 의리없게 자신들은 죄가 없고 박군 혼자서 모두 저지른 죄라고 발뺌하는 바람에 꼼짝없이 모든 죄를 뒤집어 섰다.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도 집에서는 누구하나 한번 와 보는 사람이 없었고 오랜 세월 감옥살이를 하는 중에도 마찬가지 였다고 한다. 아무튼 박군은 이제 철이들어 어린시절 철없던 행동들을 깊이 뉘우치고 있었다. 나이가 이제 30대 중반에 이르렀지만 나이 60이 넘어야 세상에 나갈 수 있으니 그 세월이 까마득해서 아득하다고 했다. 박군이 궁금해 하는 것은 오직하나였다. 자신이 과연 걸어서 바깥 세상을 구경 할 수 있는가 여부였다. 필자의 운명감정을 간절히 애원한 박군의 간절한 부탁에 필자는 응하지 않았다. 그것은 필자가 박군의 운을 풀어보니 60이전에 벌써 끝날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필자는 여러날을 고심했다. 거짓말로 박군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감정이 나온 그대로 이야기해 주는 것이 옳을까? 희망이냐 펙트인 실체적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나? 어느 것이 과연 옳을까? 필자 입장에서는 거짓으로 이야기해 주기도 싫고 박군의 희망을 깨기도 싫었다. 결국 답장을 보내지 않는 것이 박군에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허무한 것이 인생이다. 공수래공수거다! 가슴 아픈 일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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