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 공무원에서 회장님으로!
이민 초창기 LA 동부지역에서 샌드위치 가게를 하셨던 김씨 부부는 50대 초반의 잉꼬부부이시다. 10여 년 전 처음 필자와 인연이 된 이후 지금까지 다정한 부부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한국에서 구청 공무원으로 오랫동안 일하셨고 예전에 LA에 살고 계신 형님의 권유로 신청해 놓은 형제초청 영주권이 십여 년의 긴 세월이 흐른 끝에 나왔고 마침 아이들도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도 돼서 이리저리 생각 끝에 아이들 교육문제로 이민을 결심하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안정된 공무원 생활을 접고 이민을 결심한 것에 대해 이민 초창기에는 무척이나 많이 후회도 되었고 형제 초청을 해준 형님까지 원망스러웠다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사업이 번성하자 마음이 바뀌었다.
당시 형님은 샌프란시스코와 LA두 곳에서 미국 비디오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비디오 가게가 꽤 큰 규모여서 수입이 상당히 좋았고 당시는 DVD는 커녕 비디오 테잎도 막 시작된 단계여서 사업은 무척이나 번성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했는가? 김씨 부부도 지긋지긋하게 고생만 하던 샌드위치 가게를 때려치우고 '형님 따라 비디오로 갔다' LA 에다가 비디오 가게를 차렸다. 영어가 안 되는 미국 비디오 가게는 할 수 없었고 한인을 상대로 하는 비디오 가게를 열었다. 한 번 한국에 나갔다 올 때마다 이민가방 두 개에다 가방이 터질 정도로 꽉꽉 비디오 테잎을 넣어서 끌고 지고 왔다. DVD가 발달한 지금 입장에서 보면 말 그대로 원시인들의 모습 이지만 당시는 그랬다. 그렇게 들여온 비디오를 밤새도록 복사해서 지방 소도시에 있는 비디오 업자들에게 넘겼다.
꽤 큰돈을 여기서 벌었다. 그래서 그 다음에 손을 댄 사업이 그로서리 마켓 이었다. 한인을 상대로 하는 종합 마켓을 어떤 지역에 처음으로 크게 열자 말 그대로 '열화와 같은 성황' 이었다. 당시 그 지역에는 한인 마켓이 몇 개 있었지만 규모가 소규모 여서 한인들의 욕구를 채우지 못해 정식으로 한 번 장을 보려면 LA 한인 타운 까지 나와야 했는데 그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사업을 벌렸고 예상대로 적중했다. 그래서 같은 방식으로 비슷한 상황에 있는 지역에 마켓을 또 하나 차렸다. 여기서도 꽤 큰돈을 벌게 된다. 마켓 2곳에서 말 그대로 떼돈을 벌어들이던 어느 시점 갑자기 마켓 2곳을 처분했다. 다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사업을 왜 파냐며 만류 했지만 김씨 부부는 과감하게 처분하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든다.
이때 필자와 처음 만나게 된다. 자신들의 판단이 옳은가에 대해 문의하기 위함 이였는데 당시 필자가 잡은 쾌가 '천문광개 외진북주' 의 쾌였다. 즉 '환지관' 의 쾌인 것이다. 이 쾌를 해석하면“하잘 것 없는 문서가 귀한 문서로 바뀐다. 과감하게 변동하고 도전하라. 때를 놓치면 큰돈을 놓친다”로 볼 수 있었기에 이들의 판단은 옳은 것이라 보였다. 필자 왈 "과감하게 도전하세요. 귀한 문서를 잡는 운입니다." 라고 하니 "고맙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한 뒤 인사를 꾸벅하고 돌아갔었다. 당시 마켓은 임대를 해서 운영중이여서 왠지 불안한 마음이 있었고 내 건물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도 상승중 이여서 가게를 판돈으로 꽤나 큰 면적의 어떤 지역 사거리 요지에 땅을 사고 주유소와 세차장 건물을 짓고 허가를 받았다. 이 판단은 꽤나 시기적절한 판단이었다.
당시 부동산 붐이 서서히 일기 시작하고 있었고 그 지역의 상권도 커지는 중인데다가 경기가 좋아지고 부동산 값이 자고나면 뛰는 추세라 모두들 허파에 바람이 들어 에퀴티 융자받아 벤츠나 렉서스 등 고급차 사는 게 유행이었고 고급시설을 갖춘 세차장에서 시원한 음료까지 대접받으며 럭셔리하게 자신의 차가 세차되어 나오는 과정을 지켜보니 옛날처럼 지루 하지도 않고 좋았다. 이러니 주변의 고급차들이 몰려 들었다. 직원들도 밝은 색상의 고급 유니폼을 입히고 고객들 에게 VIP 대접을 하게하니 이곳에 들어서면 자신이 VIP가 된 것 같아 비싼 세차비도 마다않고 지불했다. 더군다나 세차의 등급을 차별화 시켜서 레귤러 기계 세차가 있는가 하면 완전 100% 손 세차 파트, 기계식과 손세차 병합방식 등으로 구별하여 가격도 차등화 시켰다. 세차장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꿰죄죄한 영세 세차장 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급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 사업에서 진짜 대박이 났다. 사업을 통해서 번 돈도 돈이지만 사거리 요지에 있는 이곳의 땅값이 미친 듯이 뛰었다. 주변이 번화가로 바뀌면서 부동산 가치가 몇 배나 뛴 것이다. 처음 180만불 투자해서 벌인 이 사업이 700-800만 불의 가치가 된 것이다. 더군다나 은행돈 한 푼 안 쓰고 산 물건이니 오리지널 100% 내 사업, 내 부동산인 것이다. 그 후 김씨 부부가 손댄 사업은 호텔업 이었다. 미국의 모 유명 호텔 체인업체를 인수했다. LA와 오렌지카운티, SD, SF 등 총 4곳에 투자해서 호텔 사업을 벌렸고 성공했다. 한 번 자기네 호텔에 오시면 꼭 대접하고 싶다고 몇 번 필자에게 요청 했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가보지는 않았다. 두 분의 계속적인 건승을 빈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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