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달픈 母情
김 씨 노부부는 오렌지카운티에 거주하시는 80이 넘은 분들이시다. 아주 오래전 김 할아버지가 미군부대와 연결된 일을 하고 계셨는데 이 인연이 얽히고 설켜 미국에 이민 와 살게 되었다. 처음 미국에 와서 이 시장 저 시장 떠돌며 물건을 파는 장사를 하셨다 한다. 저 북쪽 샌프란시스코에서 부터 남쪽 샌디에고 인근까지 일주일 중 물건을 준비하러 LA에 나오는 하루를 빼고는 개미 마냥 늘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장사를 했고 이 덕분에 얼마간의 목돈도 만들 수 있었다. 이 돈을 가지고 LA에서 봉제공장을 시작 하셨다. 당시는 경기가 초호황기 여서 여기저기 주문이 밀려들어왔고 미싱 폐달을 밟을수록 돈이 쌓여가니 밤, 낮 가리지 않고 ‘밟아라 삼천리’였다. 종업원 수도 100명 가까이 늘리고 이런 규모의 공장을 한 군데 더 차려 밤, 낮으로 부부가 뛰었다. 당시는 젊었고 돈 버는 재미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고 한다.
수금 한 돈을 세어야 하는데 지친 몸에 잠이 부족하여 돈을 셀 새도 없이 지쳐 곯아떨어지기 일쑤였을 정도라 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자바시장 인근에 가게를 몇 개사서 임대를 놓았다. 경기가 좋아서 가게세도 틀림없이 제날짜에 딱딱 들어왔고 이렇게 해서 모인 돈을 투자해서 가게를 늘려나갔다. 이렇게 돈 버는 재미에 푹~빠져 있을 때 소리 없이 암적인 문제가 자라고 있었으니 바로 하나뿐인 아들놈 이었다. 어려서부터 얌전하고 있는듯 없는듯 한아이 였다. 머리도 좋아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적도 늘 우수하게 받아왔다. 엄마, 아빠 입에서 큰 소리 한 번 나오게 하는 법이 없었다. 다만 너무 소심해서 주변에 친구가 없고 말 수가 너무 없이 얌전한 게 유일한 탈 이라면 탈이라 할 수 있었다. 대학교도 UC버클리에 진학해서 부모에게 기쁨을 준 아이였다. 이런 아이가 대학 졸업 무렵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학교 앞에 작은 APT를 얻어 친구 두 명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어 주말에 부부가 가끔 올라가서 반찬거리며 부식 거리를 냉장고에 채워주고 애를 데리고 외식 한 번 하고 그날로 부랴부랴 내려 오는게 이 부부의 유일한 낙 이였는데 엄마, 아빠가 가기만 하면 잔뜩 찌푸린 얼굴에 말 한마디 안하고서는 겨우 한다는 말이 “이제 제발 오지 말아요! 필요하면 내가 내려갈 테니까!” 라는 말 뿐이었다. 부모 마음과 자식 마음이 이렇게 다른 것이다. 애가 너무 침울해 보여서 혹시 마약 같은 걸 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덜컥 했는데 그건 아닌 듯 했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가 동성애가 유행인 도시라는데 혹시 우리아들이 그런 문제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 등 등 수 백 가지 수 만 가지 상상이 다 드는 것이었는데 아이가 그렇게 싫어하니 자주 들여다 볼 수도 없고 부부는 가슴만 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연락도 없이 갑자기 집에 돌아왔다.
와서 하는 말이 학교를 그만뒀다는 거였다. 사실 몇 달 전에 그만두었는데 엄마, 아빠가 난리를 칠까봐 그랬다고 하면서 지방에 틀어박혀 아무 말 없는지가 수 십 년째다. 아들의 병은 심한 우울증 이었는데 매우 침울 하다가도 갑자기 어떤 계기가 있으면 지나치게 명랑 해졌다가 조금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갑자기 광폭해 지는 등 종잡을 수 없는 해괴한 병 이었다 한다. 그동안 수도 없이 아들을 설득해서 병원을 데려가 진찰도 받고 약도 타 오고했는데 제일 심각한 문제는 ‘자신이 아무 이상 없는 사람’ 이라고 확신 하는데 있었다. 이러니 “왜?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나?” 라며 화를 내는 아들을 설득하고 달래고 달래서 병원에 한 번 데려가는 것도 큰 일이였고 타 온 약을 먹게 하는 것도 매일 큰 전쟁이었다. 미국법이 성인인 환자 자신이 거부하면 강제로 입원시킬 수도 없고 제제할 방법이 없으니 속수무책 이었다 한다.
아버지는 참다 참다 못해 “자식새끼 하나 없는 것으로 쳐!” 라고 하며 역정을 내지만 늙은 엄마 입장에서는 母情에 그럴 수도 없었다. “집에 돈이 많으면 뭐 합니까? 자식이 저 모양 저 꼴로 나이 50이 넘도록 장가도 못가고 사람노릇 못하고 사는데... 아이고~ 내 팔자가 왜 이 모양입니까?” 아들 때문에 눈가가 짓무른 노인네의 모정이 안타까웠다. 이 병이 참으로 희한한 것이 남이 보면 멀쩡하다는데 있다. 아들은 아침밥을 먹고 일찍이 집을 나선다. 그가 가는 곳은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이다. 이것저것 전문 자료들을 끄집어 내어놓고 꼼꼼하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술한다. 지금까지 기술해 놓은 노트만 해도 산더미 같다. 기분이 좋아 보일 때 엄마가 조심스럽게 “우리 아들 공부 열심히 하네! 무슨 공부하는거야?” 라고 하며 다정스레 물으면 아들은 엄마를 쳐다보고 씨~익 웃은 뒤 “엄마는 몰라도 돼! 가르쳐 줘도 몰라!” 한 뒤 말문을 닫는다.
여기서 귀찮게(?) 한 마디라도 더 물으면 불같이 화를 낸다. 이런 연구생활 외에 틈만 나면 벌레를 채집하는 취미인지 병인지가 있다. 곤충 채집통에 이런저런 벌레를 잡아다 놓고 열성으로 먹이를 구해 먹이면서 키운다. 80이 넘도록 어머니는 며느리도 못보고 매일 늙은 (?) 아들의 뒷바라지로 늙어간다. 아들의 머리는 20대 초반 대학생 그때 그 시절로 딱 굳어져있다. 이런 아들이건만 늙은 엄마는 그래도 욕심을 부려본다. “선생님 우리애가 결혼은 할 수 있을까요? 지 먹고 살 것은 다 준비돼 있으니까 어디 여자 구할 수 없을까요?” 애달픈 母情이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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