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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현대판 흥부놀부 형제

2021.05.18



                현대판 흥부놀부 형제 


 50대 초반의 이 선생이 몇 년 전 필자와 처음 마주했을 때 이이의 사주팔자를 유심히 들여다 본 뒤 필자가 처음 한 말이 “형제 복이 지지리도 없으시군요!”였다. 이분의 사주팔자 속에 나타나는 점은 이이를 그냥 내버려 두면 분명히 자수성가 할 수 있는 운이었는데 사주팔자 구성과 운의 흐름상 형제들이 이이를 가만두지 않고 괴롭혀서 좌절시키는 운이어서 그리 이야기했던 것이다. 이분은 사주팔자 속에 관살이 경미하고 식신상관이 왕성한 사주인데 비겁이 식신상관을 생하는 구조여서 형제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는 사주구성 이었다. 필자의 첫말에 흠짓 놀라는 표정이더니 이내 얼굴이 일그러지며 분기가 나타난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며 체념하듯이 한숨을 내쉬며 왈 “다 제 팔자였군요! 지난 모든 일들이 다 제 팔자소관이군요!” 한 뒤 눈물이 그렁그렁 해지며 애써 하늘을 본다. 


이분은 충청도 천안 사람이다. 쌍룡동 양반동네 에서 똥구멍 째지게 가난한 부모 밑에서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씨 왕가의 자손이라는 허울만을 들먹이는 무능력하고 책임감 없는 가장이어서 이분의 어머님만 고생이 유독 심하셨다 한다. 3남 3녀 올망졸망 줄줄이 사탕마냥 걸려있는 새끼들을 먹이느라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남의 집에 품을 팔아 겨우겨우 연명하는 삶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아버지는 늘 술타령만 하였고 툭하면 돈 벌어 온다는 명목으로 2-3년씩 가출 했다가는 잊을만 하면 집에 돌아와 머물다 또 떠나곤 했다. 한 번도 돈을 벌어온 일은 없었다 한다. 이러다보니 6남매 터울이 정확히 2-3년 터울이 되었다. 잊을만하면 와서 애만 만들어주고 가는 애비였던 거다. 


입만 늘려놓고 떠나니 어머니의 고생은 더더욱 가중 되었으나 다행히 하나도 실패하지 않고 (죽지 않고)다 키워냈다. 이집의 전통이 된 것은 나이가 들어 머리가 좀 크면 다 객지로 가출인지 출가인지를 하는 것이었다.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으니 제 입 건사할 나이가 되면 객지로 떠나고 그것이 먹을 입을 줄여주니 어머니 노고를 덜어드리는 방법이기도 했다고 한다. 어렵게 자라다보니 형제애가 없었다고 했다. 옛 말에 가난한 집 자식들이 우애가 좋다고 하나 이 집은 반대였다. 부족한 먹을것을 두고 다투니 서로가 빨리 없어져 주기를 바랐다. 이런저런 지긋지긋한 사연을 거쳐 막내인 이 선생이 드디어 출세를 했다.


건축 노가다 현장에서 목공 데모도를 하다 기술을 익혀 정식 목수가 되었고 알뜰히 돈을 모아 이 돈을 종자돈 삼아 집장사를 시작했는데 마침 불어 닥친 부동산 호경기로 승승장구해서 어엿한 건축회사 사장이 되셨다. 이때부터 형제들의 벌떼 같은 파상공격이 시작된다. 이런저런 핑계로 누이와 형들이 뻔질나게 드나들며 이런저런 것을 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마음씨 착한 이 선생은 그때마다 성심껏 돈을 주고 정성을 다했지만 노상 욕을 먹었다. 한 형제가 와서 돈을 왕창 뜯어가면 이게 소문이 나고 다른 형제들이 들이닥쳐 “너는 개자식이다 왜 그놈만 잔뜩 해주고 나는 이리 괄시하냐? 나는 형제도 아니냐? 이 개자식아!” 이런 식으로 해 주고도 노상 욕먹고 시달림을 당했다한다. 그러나 압권은 큰 형이었다. 어려서부터 심술퉁이로 소문난 형은 그래서 별명이‘놀부’였다. 별명이 흥부는 아니었지만 이에 반해서 무조건 착한 막내 동생은 사람들이‘흥부’같다고 했다. 나이차이도 13살이나 나는 동생을 어려서 부터 무던히도 괴롭히더니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러던 참에 막내 동생이 성공을 하자 무척이나 성질이 났다. 배가 아팠던 거였다. 막내에게 어거지를 써서 막내 회사에 입사를 했다. 막내가 사장이니 자기는 회장 해먹어야 겠다며 자기스스로 회장직함을 갖다 부쳤다. 출근해서 하는 일이라곤 경리 서랍 뒤져 있는 돈 다 꺼내다가 싸우나나 안마 시술소 가서 뒹구는게 일이었다. 그리고 월급도 자기스스로 정했다. 사장인 막내 동생보다 훨씬 많이... 이렇게 노는 것도 지겨웠던지 동생을 괴롭혀서 드디어 자기 주제도 모르고 직접 건축을 해서 집장사를 해보겠다고 목돈을 뜯어내 건축을 시작해 놓고는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엄청난 돈을 빼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는 “도저히 더 이상 고생(?)못하겠다”고 하고선 벌렁 자빠져 버렸다. 


회사 이름으로 모든 계약이 되어 있으니 덤터기는 모두 착하고 순해빠진 이 선생이 뒤집어 써야했다. 제일 큰 카운트 펀치를 터트린 것은 놀부인 큰 형이었지만 다른 네 명의 누이, 형들도 나름 최선을 다하여 막내인 이 선생을 괴롭혔다. 그러면서 저희들끼리도 ‘박 터지게’ 싸워댔다. 결국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형제들의 괴롭힘과 경기부진으로 이 선생은 부도를 내고 말았다. 부도가 터지자 제일먼저 회사에 뛰어든 것은 형제였다. 그래도 피를 나눈 형제라고 동생을 보호해서가 아니라 혹시라도 회사에 남아있는 돈이 없나? 값나가는 물건 하나라도 집어가기 위함이었다. 그러면서 서로 집어가겠다고 지들끼리 또‘박 터지게’싸웠다. 놀부인 큰 형은 회사 도장과 어음을 몰래 빼내 지 마음대로 어음 장을 자신명의로 발행해 놓고는 채권자가 되어 사무실에서 다른 채권자보다 제일 앞장서서 “이놈아 내 돈 내놔라!”하며 악을 써댔다. 결국 채권단의 대표가 돼서 남은 회사 재산을 다 처분해서‘마지막 남은 피 한방을’까지 쪽 빨아 드셨다. 


이 선생은 결국 교도소를 다녀오게 되었고 이런 형제들이 있는 한국이 싫어 한국을 떠났고 LA 인근 하와이언 가든 이라는 소도시에 살고계시다.“이곳에는 웬수같은 형제들이 없으니 외롭기는 해도 마음은 참 편합니다.”라고 하며 씩~ 웃는 이 선생의 웃음이 안쓰럽다. 이 선생이 하시는 실내 인테리어 사업이 쑥쑥 번창해서 괴로운 과거는 잊고 행복 하시기를 기원해본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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