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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작

LA 의 로빈슨 크루스

2021.05.15




                         LA 의 로빈슨 크루스  


 

 필자와 가끔 상담을 하시는 강 선생님은 전직 교사이시다. 한국에서 30여년 교직에 근무하다 돌연 사직하고 도미, LA 인근에 있는 바닷가 도시에 살고 계신지 10년째다. 이분은 특이하게도 평생 혼자이신 분이다.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독신이어서 혼자라는 말이 아니다. 고아출신이니 부모, 형제도 없고, 결혼 안했으니 처자식도 당연히 없고, 더군다나 주변에 친구도 없다. 이분의 성정이 특별히 광폭하거나 변태적인 기질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항시 조용하시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매너를 지닌 분이다. 성격도 온순하고 유순하다. 평소에 독서도 많이 하시는 편이어서 상식도 높고 매우 지적인 분이다. 그렇다면 ‘얼굴이 흉측하게 생겼다거나 육체적인 장애 때문에 사람들이 이분을 꺼려서 혼자인가?’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역시 전혀 아니다. 


이분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빛나는 안광을 지닌 매우 단정한 용모를 지녔다. 키도 크고 기골이 장대하여 남성다운 외모여서 매우 호감이 가는 분이다. 그런데 왜 혼자일까? 왜 주변에 사람도 사귀지 않고 혼자서 고고히 생활을 하는 것일까? 이 모든 의문에 대한 답은 이분의 사주팔자 속에 답이 있었다. 처음 필자와 마주했을 때 이분이 내민 생년월일시를 보고 이 팔자는 전형적인 승려나 신부의 팔자로 보았다. ‘눈 덮인 넓은 들판위에 홀로서서 눈을 맞고 있는 소나무의 상’이었는데 처 궁이 비어있고 자식궁도 비어있는데다가 심지어 부모, 형제궁도 비었으니 세상천지에 혼자인 아주 특이해 보이는 사주여서 그러했다. 승려나 신부의 사주라하더라도 부모, 형제 궁까지 비어있는 경우는 흔치않은데 이것마저 비어있으니 이 넓은 세상 우주 속 한 점 떠있는 별처럼 고고해 보였다. 그런데 사주 속 문창성이 발달했으니 학령기 운이 좋아 공부는 많이 하신 분으로 보였고 문장력도 있으리라 짐작하였다.


 필자 왈 “혹시 성직에 계신분이나 도를 닦는 분이 아니십니까?”라고 물은 즉 “아닙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라고 되묻는다. “사주팔자 속에 처나 자식, 부모, 형제 어떤 이도 일점 눈에 띄지 않으니 그렇게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아서 묻는 겁니다.” 필자의 대답에 이분 씨~익 웃으시더니 “제가 신부나 스님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아왔다고 볼 수 있지요”라고 한 뒤 작은 한숨을 내 쉬신다. 이분은 전기한대로 고아출신으로 부산의 한 작은 고아원에서 자랐다.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바닷가에서 엄마가 소쿠리에 무엇을 캐 담는 것을 쫓아다닌 기억이 부분부분 날 뿐 기억이 없다했다. 머리는 좋아서 학교성적이 좋아 원장아버지로부터 항시 칭찬을 들었고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성격도 유순하여 친구들과도 잘 어울려 지냈고 고아라는 열등의식도 없이 편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선생님들의 권유로 학비면제를 받고 사범학교에 진학하여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부모, 형제 없는 고아인지라 군 면제혜택도 받고 하여 일찍부터 사회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듯 어려운 생활환경 속에서도 삐뚤어지지 않고 건전한 상식을 지닌 젊은 교육자로 성장한 이분에게 큰 시련이 닥친 것은 동료 교사였던 한 여선생을 사랑하면서 부터였는데 어려서부터 늘 깊은 정에 굶주려왔던 강 선생님에게 생애 처음으로 다가온 사랑은 이 세상 모든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진정 고귀한 것이었는데 세상은 순수히 강 선생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상했던대로 여선생님 집안에서 고아인 강 선생님과의 교재를 적극 반대했고 이런저런 가슴 아픈 사연 끝에 결국 두 사람은 이별 할 수밖에 없었다한다. 이때 남긴 큰 상처가 강 선생님에게 평생의 브레인 데미지, 즉 데쟈뷰가 되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을 적대시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문을 닫은 것이다. 


절대 평생 동안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결심은 그 여선생에 대한 사랑이라기보다는 그 여선생과 자기 자신에 대한 학대이자 보복 심리였고 사람들로부터 마음을 거둔 것은 상처받지 않으려고 하는 자기 자신의 방어벽이었다는 것이 나중 이분을 진단한 정신과 의사분의 진단 결과였다 한다. 아무튼 이분은 이때부터 자신의 업무 즉 교육자로서의 책임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자기 혼자만의 공간속에 웅크리고 만다. 이분의 당시 유일한 낙은 독서와 글쓰기였는데 책과의 대화에서는 결코 상처 받을 일이 없었기에 그랬고, 시를 쓰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으니 시가 강 선생님의 유일한 친구였던 것이다. 


이분이 이곳 LA에 오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는데 방학을 이용하여 우연히 들른 이곳에서 자기가 유아시절 본 듯한 유사한 바닷가 풍경을 이곳에서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그 옛날 바닷가 풍경이 문득 떠올랐고 어딘지 모르게 푸근하게 느껴지는 그 바닷가 풍경이 오랫동안 가슴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서 그리워지기에 결단을 내려 교직을 퇴직하고 이곳에 와서 살게 되었다. 주위에서는 너무 감상적이고 충동적이라 하며 말렸지만 무언지 모를 그리움이 결심을 촉구했다고 한다. 아무튼 이분은 이곳에 와서도 한국에서 사셨던것처럼 로빈슨크루스처럼 지낸다. 종일 책을 보고 바닷가를 거닐고, 시를 쓰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혼자서 너무 외로우면 어쩌다 한 번 한인 타운에 나와 사람들의 모습을 말없이 보고 그렇게 유유자적한 세상을 보내고 계시다. 이래서 필자가 이분에게 붙인 별명이‘LA의 로빈슨크루스’이다. 아무튼 인근에 생활패턴이 필자와 거의 유사한 종족(?)이 있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필자에게는 다소의 위안이 된다.

 


자료제공:  GU DO  WON  (철학원)

213-487-6295, 213-999-0640

주소: 2140 W. Olympic  Blvd #224

Los Angeles, CA 9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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